극 내용을 소개받고선 야 이거 좀 센 덩어린가 보다, 여차하면 얹힐라 하는 부담에 조금은 무거운 맘으로 찾아간 자리였다. 역시 극은 무지근한 질감으로 무대에서 객석으로 펼쳐져 갔다. 그러나 그것은 앞서 염려한 체증 같은 유는 아니었다. 그간 잊고, 아니 짐짓 잊으려 비켜 있던 사실에 대한 ‘휘슬 블로잉’이었다고 할까. 극 중 내레이터 역할을 하던 논문준비 대학원생 ‘하나’의 대사가 떠오른다. ‘우리 중 마지막 한 사람이라도 존재하는 한, 기록은 필요한 거’라 했던가.
생각해 보니 기지촌, 혼혈아, 해외 입양 등으로 상징되는 분단 잔혹사는 비단 60여 년 전 선대에 있었던 상잔의 비극에만 묶여 있던 것이 아니었다. 70년대 초를 전후해 세 번에 걸쳐, 특별히 한반도 남부 곡창지대를 덮친 혹독한 흉작은 아일랜드의 감자 기근 마냥 이십여 년 전의 전쟁 이래 다시 인구의 대이동을 가져왔다. 그것이 이번 연극 속 비극의 단초와 정확히 맞물려 있다는 것이 새삼 떠올랐다. 또 그것은 내가 유·소년기를 보낸 개발 년대의 이면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자신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 주겠노라 찾아왔다가 그 필요 채우면 언제였나 싶게 사라져 연락 끊던 그간의 수많은 군상 중 하나로 심드렁하게 ‘하나’를 대하던 양공주 출신 순영 할머니. 그의 닫힌 마음은 ‘하나’의 출생 연원도 어쩌면 자신들과 유사한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비로소 문을 연다.
실명으로 자신과 혼혈 아들 ‘마이클’의 입양 이야기를 기록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리고 순영 할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뜬다. 어쩌면 그의 진술은 그가 이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주체성을 피 울음 담아 쏟아낸 서러운 애가(哀歌), 백조의 노래였지 않았을까.
얼마의 세월이 흘러 입양된 아들 마이클을 암시하는 동명의, 아마 그도 혼혈이었을 미군 병사(아니, 그가 바로 순영 할머니의 아들이었을 수도)가 생전 순영 할머니의 거처를 찾아온다.
그런데 그곳은 우연하게도 그가 전날 클럽에서 연정을 느낀 필리핀 출신 양공주 ‘써니’의 숙소이기도 했다. 이렇게 전 세대의 비극은, 이제 우린 적어도 그 질곡에서만은 벗어났노라 안도하는 2/3세계의 다른 곳으로 다시 흘러들어 가는 것을 본다.
암울한 복선 속, 그 미군 병사 앞에는 꼭 순영 할머니가 서 있어야 할 것 같은 환영 속에 생전의 순영 할머니처럼 쇠잔해진 또 다른 양공주 출신 심씨 할머니가 순영 할머니의 현현인 양 대신해 서서, 이제는 예의 그 걸은 입에 침묵의 빗장을 걸고 그 청년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 심씨 할머니는 어릴 적 무작정 상경 길에 만난 순영 할머니를 통해 그 길로 접어들어 이후 삶을 함께하게 된 사연이 있었다. 그런데 훗날 마이클의 입양을 망설이는 순영 할머니는 심씨의 종용을 통해 입양을 결심한다.
이렇듯 서로의 운명에 서로가 맞물려 개입하면서 세대를 넘어, 민족과 국가의 지경을 뚫고 비극은 나선구조로 재생산돼 간다. 서로를 낯설게 응시하는 두 사람 위로 ‘캠프 험프리’의 미국 독립 기념일 불꽃놀이 섬광과 굉음은 포연 가득한 전장의 공황으로 그들을 덮친다.
누가 역사에는 투쟁과 변혁을 주창하기 위한 역사와 잠잠히 일들을 기록하는 역사가 있다고 했던가? 이런 점에서 이번 극의 동기는 어디에 속할까 궁금해진다. 온갖 저주와 자학, 냉소 그리고 지난 삶에 대한 애도를 술에 의지해 풀어내던 심씨 할머니의 말이 생각난다. 생부의 학대와 가난을 피해 가출했다가 집으로 찾아온 딸을 양갈보 년이라 내친 그 생부는 돈이 필요하면 딸을 찾아가, 아니 딸은 만나지도 않은 채 ‘일’을 마치기를 기다려 포주에게서 화대를 낚아채 가던 종자였다. 그런데 이제 그 딸은 그를 이렇게 기억한다.
“아버지도 힘들어 그랬을 거야.” 기막힌 욕설과 저주의 쓰레기 더미에서 뜬금없이 툭 튀어나 온 듯한 그 한마디가 내 속에서 무언가 말을 걸어온다. 딸의 화대를 갈취하던 아버지, 부쳐준 돈으로 대학공부를 한 남동생, 그러나 후일 자신을 투명인간처럼 외면했을 혈육들을 향해 그녀는 그렇게 그들을 감싸 안는다. 누굴 쉽게 용서 못 하는 위인인지라 몸도 마음도 썩어 문드러진 양공주 심씨 할머니의 취중 악 바친 울먹임 속에서 나는 그만 그런 용서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기지촌 공주들에게 당신들이 애국자라 부추기던 이들은 분명 존재했다. 극 중에서는 최고위층까지 암시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들은 심 할머니의 생부, 오라비들과 오버랩 된다. 그런데 혹시 이제 연극은 우리도 공동 정범이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어릴 적 기억 속, 그땐 누구랄 것도 없이 저마다의 내상들을 한두 개씩 가슴에 안고 신음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그게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조차 분간은 되지 않고, 그 고통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끔 애꿎은 이들끼리 할퀴고 물어뜯곤 했지 않은가. 중, 고등 교정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가 정확하게 고증해 낸 원본이었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 누군가에게 심씨 할머니의 생부가 되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양공주나 기생관광의 역사에 국가단위의 음모론적 혐의를 두려 한다면 미안하지만 나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그냥 온 나라가 아프고 배가 고팠었다. 결코 정당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용하고 착취한 죄악은 분명 있었다. 그러나 그 인간말종 생부도 그의 살아온 이야기 들을라치면 누구 말마따나 일제 강점기 때로 시작해 6·25를 거쳐 5·16 시절쯤 이르면 입 마르고 맘은 욱 바친 데다 날도 저물어 시팔, 그 담 얘긴 따로 날 잡자고 했을 사연 깊은 자 아니었을까?
사족 하나, 인류학을 비롯한 필시 사회학 관련 학도였을 ‘하나’는 자신의 출생 연원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캐릭터 설정을 통해 그들에게로 나아가는 데 성공한다. 이를테면 뭐랄까, 학인으로서 에틱(etic)과 이믹(emic)의 접근틀을 논문 작업에 구사하는 선을 넘어 원체험을 그들과 공유하는 동일시 모델을 아예 자기 안에 설정해 버리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하나’의 손에 이끌려 순영 할머니에게로 나아가려던 객석의 우리는 그 전환점에 이르러 그만 ‘하나’의 손을 놓치고는 다시 쾅, 순영 할머니의 맘 문 닫는 소리에 무대 밖으로 튕겨져나가고 만다. 여전히 우리는 ‘하나’와는 다르게 그들로부터 타자화의 좌절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쯤서 내 안에 똬리 틀려는 더러운 생각 하나, “그니까 결국 쏘우 왓?” 아, 이 비겁이여. 그리고 어느 책 제목처럼 치열하지도 못한 이 무력을. 순영 할머니, 심씨 할머니, 참 미안합니다. 그대들 구술과 절규가 이런 놈에게서 이따위 기막힌 막말 듣자고 그러신 것 아님을 압니다. 저 역시 제 몰골에 스스로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어찌 알겠습니까? 어쩜 이것이 나름 또 다른 시작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저 어느 저녁 시간 한때, 당신들 이야기에 잠시 몰입도 해보고 다가가려 찔끔 시도도 해보았다는 것으로 면피하려는 비릿한 마스터베이션 질만은 아닐 수도 있음을. 먹을 것 족해진 연후에 비로소 예를 찾게 된다고 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이제부터라도 당신들께 마땅히 갖추어야 할 ‘예’는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보려 합니다. 그래 당분간은 심씨 할머니와 병사 마이클 사이에 주고받던 무언의 응시에 귀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그래요, 거기서 뭔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가 다시 말 걸어오기까지.
추신
OOO 선생님.
그날 비슷한 시간, 아마도 광화문서 제 고향 옆 동네 예산 아조씨, 장사익 님의 구성진 ‘봄날은 간다’를 듣고 계셨겠습니다. 이곳 종로 5가서도 연분홍 치마 봄날에 휘날리던 열아홉 시절 ‘봄날은 간다’가 순영 할머니 달래는 진혼곡인양, 부르는 초혼 가처럼 섧게 섧게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김진태 여의도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