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보건소에 언제 다녀오셨나요? 공중보건치과의사로서 보건소 혹은 보건지소에 근무한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개원을 하면서 의료기관 개설신고를 할 때는 대부분 보건소를 방문합니다. 사실 그 외에는 치과의사가 보건소를 갈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귀찮은 공문들이 가끔 보건소로부터 날라오고, 무슨 검사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는 것 외에 개원치과의사가 보건소에 관심을 두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보건소는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하여, 지역의 공중보건 향상 및 증진을 도모하기 위해 모든 시·군·구 단위에 설치되어 있는 기관으로 기본 의료 업무도 보고 있습니다. 우리 치과와 연계된 구강보건사업에는 노인틀니사업, 불소도포 및 스켈링, 학교나 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구강교육 등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위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치과의사는 어떤 분들일까요? 현실을 살펴보면 안타깝게도 ‘업무대행’이나 ‘임기제’ 등 계약직(비정규직) 형태의 고용계약으로 불안한 위치일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지속성 있고 효율적인 지역 구강보건사업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합니다. 2015년 한 신문에 실린 20년 차의 보건소장의 인터뷰는 다음과 같습니
인간에게 있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행복하게 사는 것” 다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전적 체계에서부터 행복(Eudaemonia)은 궁극의 목적이었습니다. 행복은 기쁨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시험을 잘 보거나 맛있는 것을 먹었거나 혹은 무언가 사고 싶었던 것을 산 것과 같은 일들에서 느끼는 일시적인 감정이 기쁨, 즐거움일 것입니다. 이러한 즐거운 일이 매일매일 반복된다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기쁨과 즐거움을 계속 느끼려면 즐거움을 야기하는 자극이 더욱 커져야 합니다. 저희 이전 세대는 대부분 신혼을 소위 단칸방에서 시작하였습니다. 해외여행은 꿈이었고, 중년이 지나서야 처음 해외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많은 수의 젊은 세대가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일반화되었고 차가 있으며 주말을 즐깁니다. 그런데 왜 예전보다 더 사는 것이 힘들고 우울한 것일까요? 무언가 지속적으로 부족한 것 같은 공허함과 불만, 불안을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순간의 기쁨과 즐거움은 행복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성공을 하면 행복할까요? 선생님들의 주변은 어떤가요? 다들 비슷해 보이지 않나요
경제가 바닥이다.’ ‘최저임금인상이 나라의 경제를 흔들고 있다.’ ‘일본방사능식품이 우리 밥상에 암을 만들고 있다.’ 광우병 때도 그랬고 신종독감과 메르스 때도 그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예전보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어느 것이 진짜 정보인지 사실인지 판단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내 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만을 수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수집하는 것 즉, 정보의 객관성과는 상관없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현상을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합니다. 믿고 싶은 이야기라면 우리는 대개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또한 반대되는 증거들을 무시합니다. 가끔 TV에는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암을 고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운동과 식이요법이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일까요? 그 외에도 스스로 암을 고쳤다는 사람들은 꽤 많이 있습니다. 산에 들어가 명상을 한 사람, 생식을 한 사람, 특정 약초를 다린 물을 먹은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보고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하며 특정 제품을 구매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증례들이 존재한다면 암을 스스로 고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일까요? 하지만, 검증과정
나찌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은 2차 대전이 종전되고 긴 세월이 흐른 뒤 1961년 이스라엘의 법정에 서게 된다. 15년의 도피생활 후 체포된 그는 50대 중반의 너무나도 평범한 아저씨의 모습으로 법정에 서 있다. 유죄를 인정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맡겨진 일을 열심히 잘 한 것 외에는 나는 잘못한 일이 없다’ 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이동 중에 혹은 수용소에 도착해서 효율적으로 유태인을 학살하기 위해 가스실이 설치된 열차를 만든 사람이 바로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나는 잘못이 없다 단 한 사람도 내 손으로 죽이지 않았다. 죽이라고 명령하지도 않았다. 시키는 것을 그대로 실천한 직원이었을 뿐이다.’ 이러한 주장으로 8개월 동안 재판은 지속된다. 지루한 8개월간의 재판을 꾸준히 지켜본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에서 이렇게 말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커다란 악을 저지를 수 있다. 아이히만은 아주 근면한 사람이다. 물론 근면성은 범죄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양심의 가책은 없었나?’라는 법정에서의 질문에 대해 그
현아라는 어린 여가수의 새로운 노래 제목이 ‘빨개요’ 라고 한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면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뮤직비디오도 덩달아 화제이다. 그런데 그 수준이.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몸을 판다’고 평론가가 적었을 정도이다.이야기 하나, 내가 어렸을 때 동네에 있는 작은 치과들, 우리 아버지 시대의 치과들은 환자들을 진료하는데 초점을 둔 의사들이었다. 치과의사의 수가 늘어나고 서로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진료만으로 환자를 보기 어려워지자 인테리어 등 외적인 것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이제 병원대기실에는 커피숍에나 있는 값비싼 커피 머신이 있고 바리스타까지 근무하고 있다. 대기시간 동안 머리를 해준다던가 발 마사지를 해주는 곳도 있다. 도서관이나 전시장을 꾸며놓은 곳도 있다. 통기타 하나를 들고도 노래와 노랫말로 청중을 사로잡는 것이 가수였다. 가수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노래로는 시선을 끌기 어렵다고 판단한 일부는 춤을 추거나 의상에 신경을 쓰는 등 외적인 것에 치중하기 시작했다.이야기 둘, 치과의사들은 혼자서는 안 되겠다는 심정으로 하나 둘 모여 소위 중대형 치과병원을 만들고 광고를 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부족한 진료파트를 보완하여 보다 나은 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