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수업 시간에 제일 쉽게 외운 문장이 있다. 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공자님 말씀이다. 뜻도 쉽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부모(父母)는 부모답게 자식(子息)은 자식답게 하라.” 앞글자는 역할이나 신분을 나타내고, 뒷글자는 ‘답게 하다’라고 풀이된다. 야, 참 쉽고도 좋은 말씀이로구나 하고 감탄했던 이 문장이 지금은 그 반대다. 내가 어떻게 나 아닌 다른것 다울 수가 있을까. ‘~답게’ 살라는 것이 대체 뭐란 말인가. 임금다운 임금은 어떤 임금이며, 신하다운 신하는 어떠하며, 부모다운 부모는 어떠해야 한다는 걸까? 한번 물어보라. 임금다운 임금이 있으면 손들어보라고, 부모답게 산다고 생각되는 부모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없다! 정확히 ~다운 것에 적합한 사람은 없다. 똑같은 논리로 남자답다, 아내답다, 남편답다, 어른답다, 아랫사람답다…이런 식으로 대입하고 ~답게 사는 사람이 있느냐 물어보라. 누구도 ~다움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움’이란 사실 실체가 없는 허구다. 내가 아닌, 다른것 답게 살라는, 실체도 없는 이 주문은 자책과 우울함을 낳고, ~답지 못한 상대를 비난하게 만들면서 심각한 갈등을 불러온다. 남자답고, 여자답고, 아버지답고,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 사회를 행복과 웃음이 넘치는 건강한 낙원으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울타리 없는 종합병원이 되어버렸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배울 것, 살 곳이 다 갖춰졌지만 여전히 배고프고 여기저기 아픕니다. 우울감이나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자살충동을 느끼거나, 그것을 단행하거나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 지금 이순간도 얼마나 많을까? 불안, 분노, 따돌림, 신체적·언어적 폭력, 성폭력, 절도, 방화, 각종 중독, 살인, 나태, 의뢰, 잘난척, 열등감, 탓, 원망, 탐욕, 이기심, 책임전가, 비난, 모함, 상납, 특혜… 개인도 사회도 병이 참 많고 병증도 깊습니다. 마음이든 몸이든 병들어 아파하는 여러분들과 우리 아픈 사회를 다 치료하고 건강한 유기체로 만들어놓을 방법이 제겐 있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이것부터 단행할 것입니다. 그 핵심은 교육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이렇습니다. 아이들이 말을 배우고 익히는 시기부터 고등학교까지 교과목의 절반 이상을 공존하는 법, 상생하는 법, 대화하는 법, 인간관계, 행복, 문제해결 등 ‘인간과 행복한 삶’에 관련한 과정으로 편성하겠습니다.생각
당신은 착한 사람입니까? 선뜻 답하기가 망설여집니다. 착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것 같지요. 착함을 한문으로 善이라고 보면, 착함은 좋은 것, 옳은 것이 될테고, 그 반대는 나쁜 것, 잘못된 것, 惡한 것이 되겠네요. 그렇담 옳고 그름의 기준을 무엇으로 삼는 것일까요?지금 계절이 무엇이냐 물으면 여름이라 할테지요. 입추가 지났으니 가을이라고 제법 주밀한 답을 하는 이도 있을겁니다. 정말 그래요? 내가 옳다고 알고 있는 그 답이 맞나요? 6~8월은 다 여름인가요? 지금 남반구의 나라들은 겨울이 한창입니다. 크리스마스는 겨울에 맞이한다고 하는 것은 어디에서는 맞고 다른 어느 곳에서는 틀립니다. 여름에 산타를 만나는 곳도 있습니다. 방향도 그렇습니다. 그가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 입장에서 동쪽이라고 말하고 있는 그 지점이 누군가에게는 서쪽이거나 북쪽일수 있습니다. 기준을 자신에게 놓고 그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 기준점은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합니다. 사실 모든 지역, 모든 시대, 모든 세대, 모든 단체를 망라하여 무엇은 절대적으로 옳고, 무엇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요? 우리는 살인은 절대적으로 악한
요즘 제가 사는 집에 가을이 왔습니다. 가을이는 토끼입니다. 털색이 가을빛이어서 붙여준 이름이지요. 올해 초, 공원 테니스장에서 태어났습니다. 작년쯤부터 공원에 나타난 몇 마리 토끼들로 인해 공원 가는 즐거움이 무량했습니다. 가을이의 엄마는 유독 저를 따랐습니다. 그런 엄마가 4월 어느날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하루 이틀 지날때마다 함께 지내던 토끼들도 한 마리씩 없어지고 급기야 그 어린 가을이만 달랑 남았습니다. 그들을 보는 기쁨에 공원을 즐겨찾던 누구도 행방을 아는 이 없었습니다. 공원에 돌아다니는 오소리나 너구리의 소행일 거라는 추측만 무성할 뿐이었습니다. 이제 가을이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어린 가을이는 밤이면 테니스장 밖으로 나왔다가 사람들을 보면 겁에 질려 재빠르게 도망쳤습니다. 먹이를 주며 다가가도 경계하느라 가까이 오지 않았습니다. 가을이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공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몇걸음 떨어진 위치에서 진심으로 마음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엄마 아빠를 잃고 얼마나 슬프고 두렵고 막막할 것인지를 읽어주었습니다. 몇일간 홀로 용감하게 살아남아준 것을 칭찬하고 격려했고 앞으로 잘 보살펴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런 연후에 조심스
피카소의 그림은 어렵다. 보면 바로 이해가 되는 그림이 아니다.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피카소 그림과 같이 난해한 머릿속 그림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자기 머리에 떠오른 그림, 즉 생각을 중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말을 하고 행동한다.휠체어에 의지하시는 연로한 부모님께 추억을 쌓아드리자고 우리 자매들은 서로 맞추기 힘든 시간을 내어 효도여행을 다녀왔다. 두 분의 병수발과 함께 먹고 자는 일에 관련된 일들이며 유익한 프로그램이며 운전 등 신경써야 할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만나면 서로 알아서 척척 일이 될 것이라 여겼던 내 생각은 그냥 내생각이었다. 내 눈에는 이 상황에서는, 그리고 다음엔 무엇을 해야할지가 훤히 보이는데 다른 자매님들은 그냥 여행 온 사람들처럼 대접만 받는것 같았다. 눈짓을 해도 굼뜨게 움직이거나 왜 하냐고 반문할 때는 답답함에 인상이 일그러졌다. 내게 생각이, 그림이 떠오르는 순간 그것이 저 사람의 머리에 같이 그려져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거나 그래야 한다고 여긴 것이다. 이것 정도는 보여져야 하는것 아닌가? 왜 안보여? 하는 비난의 마음이 섞여서 말이다. 내게 떠오른 생각은, 내게만 보이는, 다른 사람의 머리에는 전혀 없는 미지의 세
살다보면 몸에 상처가 나거나 몸이 아픈 경우보다 마음이 다치고 아프고 상하고 상처받는 일이 훨씬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몸이 아프거나 다치면 약을 바르거나 약을 먹거나 의사를 찾아 치료를 해서 낫게 하려고 갖은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더 자주 다치고 상하고 아프게 되는 마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치료하는지를 몰라서 그냥 방치해 두고 삽니다. 그것들이 누적되다보면 합병증으로 이어집니다. 우울증과 자포자기와 혹은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그것입니다. 마음의 상처는 심혈관계 질환이나 각종 장기의 약화를 가져옵니다. 몸의 아픔을 돌보는 것보다 마음의 아픔을 돌보는 일이 우선입니다.몸에 상처가 날 때 새살이 돋게 하는 연고를 바르듯이 우리 마음에 상처가 날 때 바르는 약효 좋은 연고가 있습니다. 10이라는 숫자와 0이라는 숫자로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10이라는 것은 10년 후를 말합니다. 그 어떤 상처받는 말을 들었어도, 어떤 힘겨운 상황에 처했어도, 모든 마음의 상처를 당할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과연 이 일이, 이 감정이, 10년 후에도 그렇게 중요할까?’ 하고 물으면서 10년 후로 훌쩍 뛰어넘어서 그 일을 바라보는 치료법입니다. 아마도 10년 후에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반칠환님의 시입니다. 그래요.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어도 새해는 기적처럼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졌군요. 기적같이 맞이한 이 새해를 모든 존재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며 살면 참 좋겠습니다.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은 사이 間자가 들어간 낱말들, 시와 시 사이 時間, 곳과 곳 사이 空間, 사람과 사람 사이 人間과 잘 지낸다는 뜻이 있습니다. 시간과 사이좋게 잘 지내는 사람은 모든 시간에 대해 차별하지 않습니다. 시간과 사이가 나쁘면, 어떤 시간은 하찮고 쓸모없다고 여기면서, 더 중요하거나 더 좋아하는 시간에만 매달려 삽니다. 지나버린 시간이나 앞으로의 시간에 마음이 뺏겨 있게 됩니다. 실상, 시간이란 지금 순간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데 말이죠. 있지도 않은 시간, 즉 허상에 속아서 삶을 괴롭게 만듭니다. 걸음걸음마다 더 중요한 움직임과 하찮은 움직임을 계교하지 않고 온전히 집중하면 근심걱정이 거짓말처럼 사라집니다. 공간과 사이가 좋은 사람은 어떤 공간이든 간택하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어디 살 때는 참 좋았는데
‘장자’에 나오는 빈배 이야기다. ‘어부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반대방향에서 배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부는 상대가 이쪽을 보고 노를 저으리라 여기고 자기 일에만 집중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불행히도 두 배는 크게 충돌하고 말았다. 상대방의 배도 부서지고 어부의 배도 많이 다쳤다. 화가 잔뜩 난 어부가 한바탕 따지려고 고개를 들어보니 이게 웬 일인가! 상대 배에는 사람이 없었다!’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너 눈을 어디 두고 다니냐, 누가 잘했네 못했네, 물어내라’ 하며 큰 싸움이 났을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몇날 몇일 잠도 못 이루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질 것이다. 온 가족과 친척들을 끌어들여 싸움을 키우고, 그래도 뜻대로 풀리지 않을땐 법정으로까지 갈수도 있다. 때론 그 일로 인해 상대방이나 자신이 억울하여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단지 그것이 빈배였기 때문에’ 사공은 다른 감정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부주의로 충돌을 일으킨 것을 부끄러워하며 빈배를 보고 허허 웃어 넘길 뿐이었다. 배는 몇푼을 들여 수리하면 된다. 그 일은 그저 그것으로 끝이었다! 똑같은 일이 일어나도 ‘생각의 장난’이 일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결정한
고속도로에서 차를 운전하다 보면 느린 속도로 추월차선을 차지하고는 흐름을 방해하는 차량들이 있다. 그럴때 비켜달라는 뜻으로 가까이 따라붙으면 대개는 옆차선으로 비켜 준다. 그러나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앞을 가로막고 달리는 차가 있으면 화가 날 때가 많다. 그럴때는 얼른 2차선으로 이동했다가 보란듯이 그 느림보 차량 바로 앞에 끼어드는 방식으로 내 화난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향해서 마음으로 싸움을 걸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다툼이 많으면 늘 지는 법인데…. 도덕경에는 ‘적을 잘 이기는 자는 적과 싸우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싸우려는 마음 자체가 없기 때문에 누구도 그와 싸우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면서 자발적인 복종을 이끌어낸다’라는 말이 나온다. 가장 잘 싸우는 사람의 경지이다. 어떤 왕이 훌륭한 싸움닭을 선물로 받았다. 왕은 싸움닭을 길들이는 사람에게 가져가서 최고의 싸움닭으로 만들어달라 명을 내렸다. 시간이 좀 흐른뒤 왕이 다 되었느냐 물으니, ‘아직 덜 됐습니다. 저 닭이 약한 닭이나 강한 닭이나 무조건 싸워서 이기려고만 합니다’ 하고 길들이는 이가 말했다. ‘그러면 잘싸우는 것 아니냐?’ ‘아닙니다. 아무하고나 싸우
‘기러기 울어 예는’ 가을 하늘은 숙연한 인생 학습장이다. 얼핏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풍경이지만 기러기가 행렬을 이뤄 비행하는 그 깊은 철학을 알고 난 후, 기러기의 행렬을 보면 울컥 눈물이 솟기도 한다. 기러기는 겨울을 나기 위해 추운 지방에서 따뜻한 남쪽으로 기나긴 여행을 시작한다. 무려 4만킬로미터가 넘는 엄청난 거리를 거친 바람속을 가르며 목숨을 건 비행을 감행한다. 이들은 흔히 시옷자 대형으로 무리를 형성해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러기 비행의 철학과 과학이 바로 여기에 숨겨 있다. 앞에서 날고 있는 동료의 날갯짓으로 인해 뒤따르는 기러기들은 70%이상 날아오르는 힘을 쉽게 할수 있단다. 그래서 당연히 제일 힘든 이는 선두기러기이다. 많든 적든 일행을 인도해야만 하는 책임을 진 그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중력을 온몸으로 받으며 외롭고 힘겨운 비행을 하는 존재다. 그런 선두를 위해 기러기들이 합창하듯 내는 소리가 있다. 끼룩끼룩 끼룩끼룩~ 이것이 바로 선두에서 날고있는 대장에게 지치지 말라고, 당신의 수고로움으로 인해 수많은 기러기가 뒤따라 날고 있다고, 힘을 내라고 응원하는 소리란다. 때때로 지친 선두를 위해 바로 뒤따라 날고 있는 기러기가
우주의 비밀 하나를 누설할까 싶다. 이 세상에 있는 무엇이든 그것을 소유하고 싶다면, 주인이 되고 싶다면 ‘원하는 그것’을 ‘사랑’하면 된다! 무조건 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물질이든 기운이든 무엇이어도 그렇다. 원하는 대상을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히 여기면 바로 내것이 된다는 엄청난 비밀, 이것이 사실일까? 정말 맘에 안드는, 심지어 내 옆에서 사라져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내게 딱 붙어서 끈질기게 챙기고 온통 위해준다면 지겹고 더 싫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그가 애정표현의 대상을 다른 쪽으로 옮겨버린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왠지 울적하고 허전하고 자꾸 신경 쓰이고 결국 이상하게도 좋은 감정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때 만약 그가 다시 나를 향해 다가온다면 달콤한 관계가 형성되기 쉽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밀당’이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숱한 인연들이 이 밀당의 원리에 의해 맺어져 왔을 것이다. 우주적 비밀이 적용되는 증거다.무엇인가를, 누군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게 되면 사랑을 받는 존재의 에너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을 주는 존재에게 의존하는 형태로 기울어진다. 그러다 갑자기 사랑을 걷어버리면 기대어있던 에너
자기 사는 동네와 사랑에 빠져 본 일이 있는가. 송도는 내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애틋한 도시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에게 그가 무엇이 좋더냐 물으면 뭐 이쁘고 잘생기고 성격 좋고 어쩌고 그러다가 ‘모르겠어 그냥 괜히 좋아’ 하듯이 나도 그렇다. 그냥 괜히 좋다.멀리 길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낯익은 건물들이 하나둘 희뿌옇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내 가슴은 연인 만나러 가는 사람처럼 설렌다. 에너지도 자동 충전된다.짧지 않은 시간 이곳저곳에 인연 되어 교역생활을 해왔지만 이런 느낌을 주는 곳은 처음이다. 언뜻 들으면 그동안 이사람 저사람 만나봤지만 당신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은 처음이야 하는 무슨 바람둥이들의 고정멘트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이다.자식자랑 배우자자랑 하는 이를 팔불출이라 부른다면 자기 동네 자랑하는 사람도 팔불출 명단에 추가해야 할 듯하다. 남들은 듣고 싶어하지도 않는 동네 자랑을 혼자서만 신나게 떠들어대니 말이다. 그곳 어떠냐고 누가 물어주기만을 기다리거나, 때론 질문을 유도해서라도 자랑을 시작한다. 이쯤되면 병이 깊다. 상사병이다. 건물들, 공원들과 시원한 도로, 심지어 풀 한포기까지 꼭 있어야 할 곳에 군더더기 없이 가장 적절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