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에서 보면 동물들도 냄새로 영역 표시를 하고 다른 동물의 침입을 경계한다. 남지나해의 대부분은 이미 중국이 영역표시를 더욱 확대 해둔 상태다. 그리고 외교적 다툼을 하고 있다. 지금 G-2에 오른 중국은 G-1을 겨냥하고 있다. 그러기위해서는 태평양을 뚫고 지나가야하는데 미국과 일본에 의해 그 길이 막혀있다. 미국은 한국, 일본과 더불어 이를 막으려 하는데 정서상 한국과 일본은 공조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요즘 미국은 한국을 못 마땅해 하고 있다. 한국은 지형학적인 문제로 한손은 미국을 다른 한손으로는 중국을 잡고 고민하고 있다. 옛날 강태공이 낚시를 한 것은 고기잡이가 목적이 아니었던 것처럼 이런 국가적인 문제에 우리도 같은 고민을 한번쯤 해 보아야 할 시기 인 것 같다. 올해는 일본이 1895년 대한제국의 국권찬탈에 방해되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의 해이다. 작년 홋카이도에서 개최된 아시아 임플란트학회때 삿보로 맥주공장 대형홀에서 기념만찬을 갖게 됐다. 구 공장 벽에는 1905년에 준공되었다는 동판이 붙어 있었다. 그 해라면 국권을 빼앗긴 치욕의 을사조약이 맺어진 해이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는 우리는 막걸리도 마시기 어려웠던
항상 12월이 되면 “금년은 다사다난했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2014년도 예외는 아닌 듯 세월호 사건으로 국민들에게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전체뿐만 아니라 치과계에도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단한 사건이 되었습니다.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비정상적인 시스템에 기인한 총체적인 난국으로 대한민국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중대한 사건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었고 이를 계기로 어떤 일을 하던지 원칙과 정도를 걸어야 한다는 다짐을 마음속으로 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책임자 또는 어느 단체 대표자의 위치 및 사고가 가져다주는 파급효과가 어떤 방식으로 귀결되는지를 알게 해준 사건이었다고 봅니다.치과계에서 요즘 심심찮게 거론되고 실제적으로 판결이 되고 있는 사건들이 있는데 치과원장 및 직능 대표자들은 좀 더 자신의 솔선수범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진료가 요구됩니다. 현재 의료기사법에 문제가 있는 조항이 있기도 합니다만 발치나 수술 후 봉합을 하고 난후에 봉합사 제거를 치과위생사에게 위임을 한 것은 위법이 되고, 간호조무사에게 위임진료를 하게 하는 것은 위법이 아니다 라는 것은 정말 우스꽝스러운 조항일 수밖에 없습니다.실제로 모 원장이 치과위생사에
올해 겨울은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유난하다. 더욱이 치과계는 ‘1인 1개소 규정’을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을 추진한 것을 “입법 로비”라고 호도하며, 검찰의 중복된 압수수색과 잇따른 소환조사 소식을 들으며 비통한 마음이 더해져, 이 겨울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진다. 불법 입법로비를 했다는 어버이연합의 고발과 주간조선의 보도,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이어진 검찰수사는 각본을 맞춘 듯이 진행되었다. 이후 보수 언론에서는 “치협이 반값 임플란트를 내세운 특정네트워크치과와 밥그릇 싸움을 하다가 이 네트워크치과를 죽이기 위한 방법으로 의료법 제33조 8항(1인1개소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불법로비를 했다”는 어이없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서울지부가 주관하는 서울국제치과기자재전시회(SIDEX)를 통해 대한치과의사협회가 비자금을 조성하고, 국회의원들에게 로비 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지르고 보자’는 식의-최소한의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보도로, 세계 8대 국제치과기자재전시회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SIDEX와 서울지부 나아가 치과계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실추된 치과계 이미지에 불이라도 지피듯 최근 ‘청년의사’라는 의과전문지에서는 ‘유디치과만 빼
지난호에 이어 계속함석태 선생님은 일제강점기 중요 수장가의 한사람으로 꼽힐 만큼 좋은 고미술품을 많이 소장했던 사람이다. 고미술품에 대한 수장벽이 취미 때문이기도 했지만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 문화재를 수집해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이 여겨 민족 유산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으리라.함석태 선생님은 서화 골동품 외에도 분재, 꽃꽂이 특히 煎茶(전다)를 좋아해서 이런 류의 취미가 고미술품 수장 활동에 중요 계기가 되었을 가능성도 크다.1930년초 고미술품 수장가들과 깊은 교류를 가졌다. 장택상을 중심으로 당대 최고의 수집가들 모임에 참석했던 것은 함 선생님의 고미술품에 대한 열정과 감식안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장택상의 집에서 이루어진 모임은 한국 근대 고미술품 소장과 유통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함석태 선생님은 ‘小物眞品大王’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많은 고미술품을 소장한 일제 강점기 굴지의 고미술품 소장가 가운데 한분이다. 일제 강점기 말인 1944년 9월 또는 10월경 함석태 선생님은 일제의 소개령에 따라 자신의 소장품을 모두 세대의 차에 싣고 고향인 평안북도 영변으로 가서 광복을 맞이하였다. 황해도 해주를 거쳐 월남하려다 실패한 함석태 선생님의 이후 소식은
■ 조갑주 원장 올해의 수필상 수 상 소 감오늘도 어제와 같은 하루지만매일 조금씩 성장하길 기대뒤쪽 어디쯤 있겠거니 생각했던 동장군이 내 앞을 성큼 앞질러 고개 돌려 나에게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나는 별로 친하지 않아 손을 내밀고 싶진 않았지만 그래도 일 년에 한번씩 오는 친구이고 세상일이 어찌 좋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있겠냐 싶고 게다가 작년엔 왔다가 여행 간다고 바로 인사만 하고 갔던지라 움츠렸던 어깨를 펴들고 한번 웃어 주었더니 반갑다고 발을 구르며 마지막 남아있던 은행닢 하나를 나에게 선물해 주었다.‘그래! 오늘 좋은 일이 있을려나? 큰 신환이 오려나 보다’ 생각하면서 출근했다.“안녕하세요. 치의신보입니다. 원장님께서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로 당선되셨으니 수상소감문 부탁드립니다.” 출근하자마자 받은 전화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였다. ‘허어! 내가? 나에게 이런 일이? 글 재주도 없는 나에게? 그래! 조금 더 열심히 하라고 장려상을 주는가보네.’ 생각하면서 문득 어린 시절 ‘콩나물 시루’가 생각이 났다. 어머니께서 콩나물 시루에 시간 날 때마다 물을 붓는데 밑으로 전부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매일 커가는 콩나물을 보며 신기하다 생각
한 달 후면 드디어 2015호를 탄 그대들이 이 행성에 도착하겠군요. 레이더에 그대들의 존재가 잡히기 시작하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번잡 무미하던 이곳의 일상에 이내 잔잔한 흥분이 일기 시작하죠.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친구들과 뛰놀던 동네, 떠날 때 염려와 격려의 손을 흔들어주던 부모님 얼굴, 또 우주선 안에서 가족보다도 오랜 시간 부대끼며 미운 정 고운 정 들어버린 동료들… 아마 지금쯤이면 한 달 후엔 그들과도 헤어진다는 시큰함이 마음에 부딪혀 올 겁니다. 생각보다 파동이 커요. 뭐랄까 전우애 같은 거니까요. 커피 한잔 마시다 문득 서로 눈이 마주치며 센치해 지는 순간들 하나하나 부디 기억하시길. 그 커피 향이 뜬금없이 불어 와서는 알 수 없는 힘을 주곤 합니다.호기심과 걱정들로 착륙 전 마지막 테스트 준비에 집중하기 힘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통은 상황 그 자체보다 그 상황에 저항하느라 쏟는 마음의 에너지 때문에 배가되곤 하죠. 어쩔 수 없는 것들이라면 어쩔 수 없는 채로 품고 견디어냅시다. 담백하고 우아하게. 대신 긴 시간 전적인 몰두로 지쳤을 그대들을 위로 할 작은 자리가 마련되어 있답니다. 뭐, 곡강연에 비한다면야 한참 초라하지만, 어느덧 연례행사가 되
환자를 많이 보는 날보다 더 피곤한 날은 어떤 날일까요? 바로 환자 트러블이 발생하는 날입니다. 사고의 수준은 가벼운 접촉 사고도 발생할 수 있지만 대형 사고도 발생하곤 합니다. 똑 같은 실수에 너그러이 넘어가 주시는 환자분도 있고 별 것 아니라고 생각되는 일에 치과를 쑥대 밭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개원 횟수가 늘어날수록 비례해서 사고 횟수도 늘어납니다. 물론 사고는 운전과도 같아서 무사고 몇 년도 나올 수도 있는 것이고 반대로 다반사의 불명예도 가질 수 있습니다. 치과에서 발생하는 트러블의 대부분이 진료와 관계된 것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것과 상관없는 곳에서도 많이 발생합니다. 진료와 무관한 사각지대와 그 곳에서의 환자 접점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트러블 발생 시 나오는 의사소통에서의 불만의 증가는 클레임 자체보다 상황이 악화되는 2차 클레임으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만을 줄이거나 없애기 위해 어떠한 대처를 해야 할까요?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사고 시 어떻게 처리를 하는가와 그 후로 똑 같은 사고를 내지 않도록 하는 것에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철저한 사후 약방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기법)시행령 계도기간이 내년 2월로 종료됨에 따라 치과위생사를 구하지 못한 많은 개원의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채용광고도 내보고 지인들을 통해 알아보는가 하면, 높은 복지혜택을 제시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구할 수 없다는 하소연들이 개원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구인난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치과위생사 없이 간호조무사만 근무하는 치과의원이 3418개소로 전체 치과 의료기관의 5분의 1에 해당된다고 한다.지방의 경우 간호조무사만 근무하는 치과가 56%나 되는 지역도 있다고 하니 ‘치과위생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은 실정이다. 이같이 개원가의 치과위생사 구인난이 계속되는 것은 치과위생사 면허자수는 6만여 명 이지만 실제 개원가 활동 치과위생사 수는 절반도 못 미치고 있어, 가용인력이 풍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 사회현상을 반영하듯 치과계 대기업으로 불리 우는 규모 큰 서울소재 치과병원 급을 선호하는 데다, 기업형 사무장치과나 네트워크형 치과병원이 우수인력을 싹쓸이 하는 현상도 동네치과 구인난을 부채질 하는 주범 중에 하나다. 구인난이 오죽 심각했으면 서울지부와 25개 구회장협의회에서
지난호에 이어 계속최초의 치과의사 咸錫泰는 1889년 평안북도 영변군 오리면 세죽동에서 부유한 집안의 독자로 태어났다. 부친은 咸泳澤으로 成均館 進士와 醫官을 지냈다고 전해진다. 미루어보아 그 지방의 鄕班 계층이었음이 분명하다.함석태는 외아들 哲薰과 두딸 순정과 문을 두었고 양녀로 姜英材가 있었다. 함석태의 손자로는 완(玩), 순(珣) 어렸을때 죽은 珍과 玉 그리고 막내 각(珏)이 있었다. 그의 다섯 손자이름은 함석태가 지었으며 각자마다 ‘玉’변이 들어가 있다. 玩은 1965년 사망했고 珣은 경관으로 근무하다 6·25때 실종되었다. 아들 哲薰은 부부가 6·25때 폭격으로 사망했다. 실로 불행한 가족사였다. 珏은 살아남아 1985년 치과임상(신종호)과 인터뷰에서 증언하고 있다. “대단한 부호였음에 틀림없다. 소작을 주는 전토도 많아서 고향에서는 남의 땅을 밟지 않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증조부 함진사(咸泳澤)는 재산도 많은 만큼 학교도 세우고 교회도 세우는 등 소위 사회사업도 많이 하셨다고 들었다. 조부(咸錫泰)가 일본유학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라고 증언했다.咸錫泰 선생님이 당시로 생소한 분야의 치과의사라는 직업이 없었던 시
2014년이 다 지나간다. 오래 기다렸던 치과의사로서의 1년. 난 어떠했나? 그토록 꿈꾸던 행복이 왔는가. 아니면 아직도 행복을 기다리고 있는가. 과연 많은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도움이 된 적은 있었는가. 그 어느 질문에도 난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다. 인턴으로서 1년을 바쁘게 보내고, 당연한 과정으로 여겨지는 레지던트로의 과정을 포기하였다. 더 이상 행복을 기약하기 싫었다. 대학교를 졸업 하면… 취업을 하면… 치전원 시험에 합격을 하면… 치과의사가 되면… 수많은 가정 속에서 나의 행복은 항상 미루어졌다. 치과의사로서 학문의 깊이를 높이는 과정도 의미가 있지만, 이제는 나의 삶의 방식을 조금 바꿔보고 싶었다.나의 자기소개서의 가장 첫줄을 차지해 온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장 좋은 영향을 주는 삶을 살자”라는 나의 좌우명은 항상 실천 없는 구호에 불과하였다. 지난 34년이란 시간은 철저히 나만을 위해 살아온 시간이었다. 자리가 잡히면 언젠가 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해 왔는데 34년동안 그런 순간은 오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이대로 계속 걸어가도 그런 순간은 오지 않을 것이다. 내가 선택한 길이 아닌 앞에 주어진 길로만 계속 간다면, 또다시 3년 이후로 행복을
2014년도 10여일 남았지만, 조용하기만 하다.흩날리는 눈발처럼 신문 머릿기사나, 뉴스속보나 온통 어지럽기만 하다.“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의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의혹, 재벌3세의 땅콩리턴, 권한 있는 사람과 책임을 지는 사람들, 떠나보낸 사람들….가수 신해철씨의 죽음은 생전에 고인이 우리사회에 남긴 메시지와 함께 의료사고 문제라는 심각한 현안을 부각시켰고, 생활고 때문에 세상을 등진 세 모녀사건은 우리사회의 안전망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보여줬다. 4·16 세월호참사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새로 부임한 슈틸리케 축구감독의 키워드는 “배고픔.” 열정을 가지고 맡은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하는 배고픈 선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절실함’을 배고픔으로 표현한 감각이 참 신선하다는 느낌인데, 어느새 우리는 배고픔의 절실함도 초등학교때 할아버님과 선생님에게서 배운 온돌방의 도덕도 잊어버렸다. 물질의 풍요와 정신의 배고픔을 맞바꾼 세월이랄까? 기억하기조차도 싫은 올초 부산외대 사고나 세월호참사 등에서도 교훈하나 얻지 못하고 있다. 일부 재벌과 그 자녀들이 “땅콩리턴”같은 살벌하고 황당한 사건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도 배고픔과 가난한 마음의 겸양을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