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치과의사이자 최초의 개원의는 함석태(咸錫泰)이다. 1914년 6월 19일 서울 삼각정 1번지 옛 濟蒼局(제창국)자리 동쪽에 3층 목조건물을 신축 개업하였다. 금년이 개원 100주년 되는 해이다. 그때 나이 25세였다. 당시 그 위치에 그 규모의 개원이라면 부모님의 경제적 뒷받침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으리라.치과의사로서의 함석태(咸錫泰). 고미술 수장가로서의 함석태, 애국자로서의 함석태 등 3회에 걸쳐 선생님을 회고하고자 한다.초겨울 바람이 쌀쌀한 11월 15일 토요일 오후 선생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개원 위치를 먼저 확인하기 위해 답사의 길을 나섰다. 답사 순서는 먼저 최초의 개원자리 현재 위치 확인과 함석태 선생님과의 사연이 얽힌 종각, 서울역 광장의 강우규 의사 동상 순으로 탐방키로 했다.치협 박영섭 부회장, 이병태 치과의사학회장, 김평일 서치 협회사편찬위원장, 이재윤 서치 공보이사, 치의신보 안정미 기자, 치과신문 편집장 최학주, 치협직원 권남학 씨 등이 함께 했고 탐방을 위해 몇 가지 자료를 수집했다. 안산, 인왕산이 보이고 제창국(濟蒼局) 간판과 그 아래 ‘치과’라고 선명하게 나온 청계천 다리와 함께 찍힌 1930년대 사진 한 장사진 1,
1. 올 봄이었던가. 낮에 한창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단다. 웬일인가 하여 진료 중간에 잠깐 짬을 내어 전화를 걸어보았더니, 다짜고짜 “여보, 여자 치과의사라는데… 혹시 이름이 OOO인 분이 치과의사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어요?”순간 책장을 흘낏 올려다보니 마침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원명부’ 최신판이 보이기에 시간 날 때 확인해 주겠노라며 전화를 끊었다. 특정 지역에 병원을 하고 있지 않는 사람이기에 찾는 데 다소 까다롭긴 했지만 이리저리 뒤적거려서 결국은 그녀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퇴근 후 집에서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나서는 무의식중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아내 옛 고교 동창의 지인의 부탁이었다는 것이다. 그 지인의 오빠가 결혼을 하였는데 상대여자(올케)가 W치대를 졸업한 치과의사라고 해서 부모님이 너무 흡족해 하셨다고 한다. 사실 지인네는 상당한 재력을 지닌 집안이었기에 치과의사 며느리만 들이면 당장이라도 좋은 자리에다 병원 하나쯤은 너끈히 차려줄 태세였다. 하지만 그 며느리는 결혼하고 나서도 치과를 차린다고 하기는 커녕 남의 치과에 취직할 생각조차도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집안 친지들이 이상하게 생각다 못해 혹시
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닙니다만 재미있다고 하는 드라마 중에 내 취향이다 싶으면 챙겨 보는 편입니다. 최근 드라마 ‘미생’이 재미있다고 해서 다시 보기로 보고 있는데 재미가 솔솔 하더군요. 직장 생활을 해 보지 않은 치과의사들 입장에서 치열한 종합상사의 모습은 낯설지만 그 속에도 역시 사람 사는 곳이고 각종 알력과 힘겨루기가 있고 무엇보다 의사소통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드라마 에피소드 중 기억 나는 장면으로 상사가 지시한 업무를 신입 사원이 호기 있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나옵니다. 본인은 기존의 방식에 불합리한 점을 발견하고 그것에 수정을 과감히 가하여 업그레이드를 한다고 판단하고 일 처리를 끝내지만 도리어 상사에게 꾸지람을 듣게 되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기존의 시스템 매뉴얼의 중요성에 있습니다. 몇 가지 문제점과 허점이 있는 시스템 매뉴얼이라도 그것은 그 조직과 회사의 체계이며 프로세스이기 때문에 일종의 약속과 가이드 역할을 해 주는 셈이지요. 그것을 지키지 않고 불편하다고 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꿔 버리면 조직에 혼란을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조직에는 정해진 규칙이 있고 일단은 불합리 하더라
치의신보가 창간 48주년을 맞았다. 1966년 12월15일 칫과월보로 출발한 치의신보는 2014년 현재 월 8회 평균 50면 발행의 보건 의료계 최대 신문으로 성장했다. 돌이켜보면 치의신보 48년은 도전과 변화의 연속이었다.1984년 12월부터 월 4회 발간을 시작해 주간신문 시대를 열고, 1994년에는 자체 광고수주로 제작비와 치의신보 운영비를 충당하는 완전 독립채산제로 전환했다. 경제적 자립시스템을 갖춘 것이다.이후 1997년 치과계 및 보건의료계 전문지 처음으로 가로쓰기 편집을 단행했는가 하면, 2003년 치과계 언론 최초로 월 8회 즉 주 2회 발간을 시작했다. 비록 늦기는 했으나 지난해 11월 치의신보 인터넷신문인 데일리덴탈을 론칭 해 젊은 치과의사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신문으로도 발돋움 했다. 지난 48년간 치의신보는 수많은 치과의사들의 ‘우리 신문’ 이었다. 우리 치과계는 치의신보를 통해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그 사이에 희망을 봤다. 하지만 집행부 위주의 홍보기사 비중이 높아지고 개원가 트렌드 반영이 늦어질 때마다 일부 독자들의 혀끝 차는 소리도 들어야만 했다. 창간 48년을 맞는 치의신보는 현재 개원가의 시대정신을 읽고 개원환경을 개선하는데 앞장
‘장자’에 나오는 빈배 이야기다. ‘어부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반대방향에서 배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부는 상대가 이쪽을 보고 노를 저으리라 여기고 자기 일에만 집중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불행히도 두 배는 크게 충돌하고 말았다. 상대방의 배도 부서지고 어부의 배도 많이 다쳤다. 화가 잔뜩 난 어부가 한바탕 따지려고 고개를 들어보니 이게 웬 일인가! 상대 배에는 사람이 없었다!’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너 눈을 어디 두고 다니냐, 누가 잘했네 못했네, 물어내라’ 하며 큰 싸움이 났을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몇날 몇일 잠도 못 이루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질 것이다. 온 가족과 친척들을 끌어들여 싸움을 키우고, 그래도 뜻대로 풀리지 않을땐 법정으로까지 갈수도 있다. 때론 그 일로 인해 상대방이나 자신이 억울하여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단지 그것이 빈배였기 때문에’ 사공은 다른 감정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부주의로 충돌을 일으킨 것을 부끄러워하며 빈배를 보고 허허 웃어 넘길 뿐이었다. 배는 몇푼을 들여 수리하면 된다. 그 일은 그저 그것으로 끝이었다! 똑같은 일이 일어나도 ‘생각의 장난’이 일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결정한
연말이 다가오면서 각종 공연 예술이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도 점차 뮤지컬, 연극 등이 인기를 끌며 이제 인기 있는 공연은 몇 달 전에 미리 예매하지 않으면 좋은 자리에서 관람하기 힘들어지는 추세다. 작년에 뮤지컬을 보러 갔다가 공연장에 외국인이 너무 많아서 놀란 적이 있다. 공연 시작하기 전 라운지에서 기다리는데 여기가 브로드웨이라도 되나 싶을 만큼 외국인들이 많고 그 국적도 다양했다. 심지어 공연 중에 영어 자막 뿐만 아니라 일본어, 중국어 자막도 함께 나오는 걸 보니 이제 K-POP, 한국 드라마 뿐 만 아니라 뮤지컬도 한류열풍인가 보다. 미국이나 유럽여행을 가면 빼놓을 수 없는 장소 중 하나가 바로 뮤지컬 극장인데 이제 우리나라도 외국인들이 여행을 와서 공연장을 찾는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하다.이렇게 멀리까지 일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몇 년에 한번 올까말까 한 내한공연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아도 영국 런던의 오리지날 팀이 공연한 뮤지컬을 우리나라 극장에서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상영하는 것을 알게 되어 많은 분들께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사실 이 글이 나갈 때 이미 극장에서 막을 내린 것은 아닌지가 조금 걱정된다.) ‘빌리 엘리어트’라는
‘중국식 경영’ 이해하기(HBR2014.9데이비드 마이클 (David Michael), 토머스 하우트 (Thomas Hout) 보스턴컨설팅그룹 파트너)중국과 오랜 진통끝에 FTA가 체결됐다는 소식이다. 최근에 만나는 원장님들이 부쩍 중국이야기를 많이 화두에 올리신다. 중국의료관광객이 많은 돈을 쓰고 간다. 중국에 가서 진료하면 어떨까 등등. 이런 요즘 중국식 경영을 엿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지난호에 이어 중국식경영이야기를 회를 나누어 소개하고자 한다.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s)의 현지화 : 중국의 대부분 지역은 아직 경제 개발 단계에 있다. 이는 소비자들이 아직 구매 경험이 많지 않음을 의미한다. 또 자본이 부족한 기업,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 현지만의 독특한 사업 관습과 전통들이 존재함을 뜻한다. 품질은 현지 요구에 따라 맞춰진다. 건설회사들은 최단기에 공사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 비교적 빨리 굳고 강추위에도 쓸 수 있는 시멘트를 구입하는데 기꺼이 웃돈을 지불하는 반면, 30~50년 이상 지탱할 수 있는 내구성 강한 시멘트에는 돈을 쓰지 않는다.비슷한 예로, 한 유통 체인 브랜드는 매장을 꾸밀 때 내구성 있는 기자재를 사지
나의 고향은 대단한 시골이다. 누군가가 그 곳을 ‘깡촌’이라고 표현한다면 나는 순간 발끈하겠지만 반박할 지혜는 없다.지금에 비한다면 그래도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절의 내 고향은 꽤나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이른 아침이면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가려고 버스 정류장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던 교복 입은 언니, 오빠들…5일마다 돌아오던 장날이면 서로 먼저 버스에 타려고 악을 쓰시던 할머니들과 고함치던 버스 기사 아저씨…국민학교에 다니던 나는 항상 그 버스 정류장을 지나 옆마을에 있던 학교로 통학했다. 그나마 나는 통학거리가 가까운 편이었다. 14명이었던 우리 반 친구들은 4km에 달하는 거리를 걸어다니거나, 누군가가 태워주는 자전거의 뒷자리를 빌려 학교를 다녔다. 요즘 아이들처럼 방과 후에 누구네 집에 놀러가고 함께 누워서 숙제하고…그런 즐거움은 언감생심 꿈도 꾸기 힘든 환경이었다.그렇게 심심하게(?) 국민학교 고학년생이 된 나의 유일한 설렘은 읍내의 중학교에 다니던 언니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우리 집 툇마루에서 까치발을 들고 담장 너머를 바라보면 산모퉁이 사이의 찻길이 보였는데, 빨간 버스의 뒷꽁무니가 보이기 무섭게 신발을 후다닥 신고 언니를 마중가곤 했다. 밭
열악한 개원 환경과 어려워져만 가는 사회적 환경에 젊은 치과의사들이 신음하고 있다. 학업을 하면서는 학자금 대출, 사회에 나와서는 개원자금 대출, 페이닥터를 한다 해도 기대에 못 미치는 급여, 주위에서 들리는 암울한 치과계 소식에 치과의사로서 자긍심과 보람을 갖고 잘 해 낼 수 있을지 괴로운 심정이 들기도 한다.이런 젊은 치과의사들의 아픔을 해결하고 미래에 밝은 길을 제시하고자 치협이 나섰다니 반갑다. 치협이 최근 ‘덴탈 시니어 오블리제’ 사업을 펼쳐 젊은 치과의사들의 미래를 여는데 총대를 메고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로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됐다. 근대와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도덕의식은 계층 간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이에 치협이 나눔이라는 공통분모를 갖는 ‘시니어 오블리제’를 선언하고 이를 위한 사업에 매진하겠다는 것이다.최근 시도지부 임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젊은 회원들의 회무에 대한 관심도와 참여도가 예전에 비해 많이 낮아졌을 뿐만 아니라 보수교육을 들으러 와도 젊은 회원들끼리 교
치료(治療)란 ‘병이나 상처를 다스려서 낫게 함’ 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다. 영어로는 treatment, cure, therapy, care 등으로 표현 가능하다. Treatment는 질병을 낫게 하기 위한 일련의 의료과정이나 시술을 말한다. Cure는 treatment를 통해 병이 완치되는 것을 의미한다. 완치라는 표현은 아마도 질병이 생기기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매일의 임상에서 하고 있는 의료 행위는 과연 어디에 해당되는 것일까? 매일 매일 환자를 ‘치료’하고 있지만 사실 치과질환에 대한 치료는 신체의 일부분을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켜주는 ‘cure’는 결코 아니다. 질병으로 손상된 치아조직을 질병이 더 이상의 확산이 되지 않도록 차단하고 또 정상기능이 가능하도록 대체 복구시켜주는 수복 혹은 대체(Prosthetic Work)의 과정이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한다. 그러한 치과치료는 많은 경우 일정 부분 이상의 신체조직이 손상된 경우에 진행되며 따라서 치과치료는 질환의 중기 이후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 치과의사들은 질병이 중기이상으로 진행되기 까지 어떠한 일들을 하고 있을까? 정기검진을 시행하여
의사는 존경받는 직업으로서 의사(醫師) 선생님으로 호칭해 왔다. 환자의 마음을 다스리는 심의(心醫)에서 사람을 죽이는 살의(殺醫)까지 세조는 8의론(醫論)으로 의사를 구분했다. 서로 믿고 존경해야 하는 관계가 사람을 병들게 하고 죽게 하는 곳으로 변해가는 임상현실이 을씨년스런 날씨만큼 마음을 얼게 만든다. 또한 상업적인 치과병의원으로 인해 다수의 모범적으로 진료하는 치과의사까지 불신을 받을 여지가 있어 답답한 마음도 든다. 신청인(남, 58세)은 2008.8.부터 피신청인 치과병원에서 임플란트 시술(11개)을 받았으나 #34~#37 부위에 염증이 지속되어 2014.6. 타치과에서 만성 복합치주염으로 하악 좌측 매식체 제거 후 재시술이 필요하다고 진단받았다. 신청인은 아래 좌측 4개 임플란트 부위는 처음부터 잇몸과 보철물 사이가 떠서 음식물이 끼고 염증과 통증이 지속돼 사용하지 못했다며 재시술 비용과 위자료를 요구했다. 피신청인은 최종보철물 장착 후 수년이 지났고, 골 유착 실패와 광범위한 만성치주염은 환자 체질과 연관되어 치료기간이 장기화됐다고 반박했다. 사실조서를 보면, 초진 당시 상하악의 만성 치주염, 하악 좌측 구치부는 무치악 상태로 #34~#37부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