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치과의사 인기 하락으로 치대 입학률이 현저히 떨어지자 일본의 사립치대들이 3년 전부터 한국인 특별전형을 통해 한국 유학생들을 대폭 선발해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우려스럽다. 국내 치과의사 인력이 과잉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이들 유학생들이 일본에서 치과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 예비시험을 통해 한국 치과계로 진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으로 치과계엔 큰 골칫거리가 될 모양새다.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4년까지 지난 14년간 국시 및 예비시험에 응시한 외국치대 졸업생 총 인원은 1031명이며, 이중 203명이 합격한 것으로 집계됐다. 문제의 심각성은 최근 합격률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에 있을 뿐만 아니라 합격생들이 유학한 국가들이 대부분 선진국이어서 예비시험 관문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최근 합격률이 낮게는 87.5%지만 90~100%의 높은 합격률을 보이고 있으며, 최근엔 미국, 영국, 독일, 뉴질랜드, 일본 등 선진국의 유학생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초기에는 예비시험제도가 일정 부분 인력수급 조정 역할을 했으나 이런 합격률이라면 예비시험제도는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민족해방의 성지, 종로2가 파고다공원을 들어가 보았다. 트랜지서터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뽕짝)와 관광버스음악(이박사메들리 등)에 맞춰 춤을 추는 노인들, 윷판을 깔아놓고 술판벌이는 음주윷놀이, 야바위꾼, 사이비건강식품과 기구를 파는 잡상인들, 박카스할머니 등. 파고다공원을 포털에서 검색해보았다. 관련어로 ‘파고다공원 노인’, ‘탑골공원’, ‘종묘공원’, ‘박카스 할아버지’, ‘탑골공원 할머니’, ‘할머니도 여자다’, ‘파고다공원의 할아버지들’ 등이 나오는데 다소 놀랍고도 의아하다. 이러한 노년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일탈행위들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파고다공원은 이제 노인에 대한 사회의 가십거리를 넘어 노인의 문화아이콘이 된 것 같아 씁쓸하다. 나도 나이 들면 파고다공원을 가야할텐데 어쩌지?…. ㅠ.ㅠ^^ 치과의사로 살아가고 있는 나의 노년은 어떨까에 대해 (어림잡아)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치과의사로서 언제쯤 은퇴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아직까지는 없다. 때가 되면 은퇴하겠지 생각이고. 가족들과 여유있게 평이한 문화생활(외식, 영화감상, 여행 등)을 즐기고 그 동안 미뤄왔던 취미생활을 해볼까? 하는 막연한 생각들만
선생님 그립습니다.저희들을 불러 저녁식사를 하시거나, 때로는 저희들이 모시면 “이봐, 자네들도 이제 70이 넘었어.”하시면서 저희들에게 많은 사연과 철학을 심어 주셨습니다.서울대 치대(중구 소공동 111)에 입학하시고 개성에서 서울역을 왕복하시던 기차통학, 종로구 소격동에서 자취하시던 일, 8·15광복이 되자 학생회간부였던 선생님께선 우익과 좌익으로 갈린 학생들 사이에 좌익에 대결하셨던 이야기, 개성에서 잠시 개업하셨다가 6·25가 발발하자 ‘빨리 피신하라’는 동기의 말을 듣고 야반도주하여 송악산 자락과 이름 모를 마을을 거쳐 한강을 헤엄쳐 남하하셨던 구사일생의 과거, 군번 없이 미25사단 27연대 75대대 통역관으로 임진강 철교폭파, 관악산전투에도 참전하셨다가 부산피난시절 해군에 입대하시어 치과군의관으로는 최초로 백령도에 근무하셨던 무용담, 퇴역 길에 지고나오는 더블 백에 페니실린을 듬뿍 넣어 주며 환송해주던 미군군의관, 사모님과 만나 결혼하신 이야기, 미아리 단독주택에 사실 때 도둑이 들자 이불 뒤집어쓰고 무저항하시던 스릴 넘친 인생살이…. 선생님께선 주변에 진한 인간미를 남기셨습니다.서울대 치대 교수시절에는 이영옥 교수님의 뒤를 이어 치과보철학을 과학화
매일 매일 오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보곤 합니다.최근에는 제가 좋게 생각하는 세분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황 선생님께서는 참 따뜻하신 분이었습니다.혼자 간병을 해주시던 사모님의 일을 덜어드리려고 찾아 갔었지만 위중하셔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시간에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는 사모님과 시간을 보내시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멋진 모습의 선생님의 영정사진은 살아있을 때 황 선생님께서 항상 이야기해주신 조호성 선생님께서 찍어주신 것이었는데 너무도 푸근한 웃음을 짓는 모습이었습니다.추석이 되어 찾아뵈니 사모님께서는 튜브를 꽂고 병원에 누워있던 남편이 꼭 다시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고 남편께서 자신은 떠난다는 말을 해와도 믿어지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다정한 남편이었을까 좋은 치과의사 선배님인 것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한 분은 자신의 친구와 여동생으로부터 조금의 시간 간격을 두고 죽음을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미진한 관계로 치료도중 한 번의 실패가 있었음에도 치료를 마칠 때까지 묵묵히 따라와 주셨던 분으로 특별히 모자란 저를 배려해주셨던 분입니다.어이없게도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려던 길에 주차카드를 뽑기 위
▶원칙적으로 근로자는 자유롭게 퇴직할 수 있음. 그러나 퇴직으로 인하여 회사에 발생할 불의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사직의 효력 발생에 관한 규정이 존재함. 또한 근로자의 무단퇴직으로 인하여 병원에 손해가 발생하였을 경우 병원측에서는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함.(사직의 효력발생)▶사용자가 사직서를 수리한 경우- 근로자가 제출한 사직서를 원장이 수리하여 사직에 관한 의사가 합치가 이루어지면 사직서를 수리한 때 사직의 효력발생▶사용자가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는 경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근로기준법 제43조 제2항에 의하여 기간으로 보수를 정한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민법 제660조 제3항의 규정이 적용. 고용노동부예규 제51호도 이와 같은 경우 민법 제660조 제3항의 규정을 참조하도록 하고 있음.(단, 회사의 근로규칙이나 근로계약서에 사직의 효력발생에 대한 규정이 있으면 그에 따름 )민법 제660조(기간의 약정이 없는 고용의 해지통고)⑴고용기간이 약정이 없는 때에는 당사자는 언제든지 계약해지의 통고를 할 수 있다.⑵전항의 경우에는 상대방이 해지의 통고를 받은 날로부터 1월이 경과하면 해지의 효력이 생긴다.⑶기간으로 보수를 정한 때에는 상대방이 해지의 통고를 받은 당기후
자신은 자세하게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여전히 치료 전달 과정에서의 이해 부족이나 오해로 환자와의 트러블은 발생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요? 역시 원인은 환자와 의사와의 생각의 차이 갭(gap)이라고 봅니다.치과의사는 아무리 환자 입장에 맞추어 설명하고 전달했다고 하더라도 환자는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조사를 해보면 알기 쉽게 전달했다고 했던 치과의사나 직원의 설명도 기껏해야 30% 정도이고 정말 많아도 70% 정도만 전달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환자는 치과의사의 말을 평균적으로 절반 정도 밖에 이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설명 시, 환자가 ‘네, 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이해해 주고 있다고 생각해도, 돌아가는 길에 접수에 똑 같은 이야기를 묻는 것을 보면 이러한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환자는 ‘원장님께 물어 보기가 뭐해서’혹은 ‘매우 바쁜 것 같아서 미안해서’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 적이 많은 것입니다. 또한 환자의 성격에 따라 받아들이는 감정이 다양합니다. 상대에게 맞춰서 이야기를 전달할 때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불쾌감을 느끼는 환자도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성급한 사람에 대하여는
일본 센다이 북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 구리하라(栗原)에는 신문 기자출신의 사이또 다이껜 주지가 관리하는 대림사란 절이 있다. 그곳에는 안중근 의사와 치바 도시치의 위패와 기념비가 있다. 대림사에서는 81년부터 해마다 9월이 오면 이들에 대한 추모예식이 계속 행해지고 있다. 올해는 34회로 안의사 순국 104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9월 13일부터 17일까지 한일 친선 교류회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안의사는 한국인이라면 다 아는 분이다. 일본 헌병 상등병이었던 치바 도시치는 안의사 전담 간수로서 5개월간 수감생활을 같이 하면서 조국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그분의 인간적인 모습에 감화되어 마지막 날 형장으로 끌려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경례까지 올렸다고 한다. 수감 중 안의사는 동양평화론 등을 집필했고 또 많은 유묵을 남겼다.보통 옥중 육필을 받은 사람들은 형무소장, 간수, 형사, 판사, 검찰관, 교화승 등 일인들이었다. 치바도 평소에 유묵을 하나 얻고 싶어 했었다. 사형집행 전날 “내일 오전에 형 집행이 있을 것 같다”는 정보를 흘려줬기 때문이었는지 안의사는 원하는 유묵을 써 줄 터이니 화선지를 준비해오라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종이가 없어 명주천
“선생님은 최근에 주로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가요?”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의 90%는 ‘치과의사’이거나 ‘환자’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루의 절반을 몸담는 치과에서는 진료시간 내내 환자를 만나고 퇴근 후 친구를 만나도 반 이상은 동기나 선, 후배이다. 또한 틈틈이 인터넷이나 책을 뒤져보며 새로운 치과의사 선생님들의 케이스를 만나며, 주말에 듣는 세미나에서 만나는 연자 및 함께 강의를 듣는 사람들도 모두 치과의사이다. 이쯤 되면 치과의사는 정말 세상에서 가장 흔한 직업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만나기만 하겠는가. 만나서 하는 얘기도 어쩜 그리 치과 이야기, 환자 이야기, 진료 이야기인지… 잘한 것은 서로 자랑하고자, 못한 것은 서로 하소연 하느라 동기들과 만날 때 마다 치과 이야기를 떠나보낼 수가 없다. 누가 보면 한 임상 10년, 20년차쯤 되는 치과의사인 줄 오해할까봐 글을 쓰면서 조금 부끄럽다. 하지만 오히려 이제 임상에 첫발을 내딛는 단계에서 동기들끼리 서로 어려웠던 부분, 부족한 부분을 공유해가며 발전해 나가고자 노력하는 초보자의 열정으로 보아주시길 바란다.나보다 앞서 인생을 걸어가시는 여러 다른 선생님들도 마찬가지 일 것
변화에 필요한 레시피(데니스 M. 모리슨(Denise M. Morrison) 캠벨수프(Campbell Soup Company)의 회장 겸 CEO)변화라는 화두를 던지는 것이 어울리는 시대이다. 지난 주말 끝무렵 애플의 신제품 출시는 전세계인들은 뜬눈으로 바라보았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그렇게나 집착하였던 소형화면을 포기하고 대세에 따라 대형화면을 채택한 애플은 예약오픈 24시간만에 그간의 어떤 제품출시보다 더 강렬하게 소비자의 호응을 얻어내고 있다. 정말이지 놀랍기만하다. 아마도 변화에 적응한 애플에 대한 소비자의 포상이었을까 싶다. 여기 변화를 위해 두려워하거나 망설이는 분들께 좋은 팁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2011년 데니스 M 모리슨이 캠벨(Campbell) CEO로 취임했을 때 회사는 미국 내 수프 시장에서 판매 실적이 떨어지고 사실상 획기적인 유통 경로가 바닥난 상태였다. 이보다 더 걱정스러운 문제는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려는 듯한 임직원들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하면 145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회사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먼저 업계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변화에 주목했다. 신규 고객의 속성과 행동 양식, 세계 경제의 재편과 식품 산업의
치협 산하의 ‘치과의사 적정수급을 위한 TF’가 지난 9월 27일 의미 있는 발대식을 열었다. 이날 발대식이 의미있는 것은 단순한 보여주기 행사에서 벗어나 “반드시 가시적인 성과를 내자”는 결연한 실천 의지를 다짐했기 때문이다. 치과의사 인력감축은 치과의사들의 먹고 사는 문제로 매번 최우선 선결과제로 꼽히고 있지만 이렇다 할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한계에 부딪쳤다. 인력수급의 핵심인 치대 입학정원 감축을 현실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TF가 남다른 의미를 갖는 이유가 있다. 대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전국치과대학·치전원 동창회 회장을 공동위원장으로, 각 치과대학·치전원 동창회 수석부회장들을 TF 위원으로 선임하면서 대학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치과의사 인력이 과잉이라는 연구결과는 이미 나와 이에 대한 객관성은 입증됐다. 인수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2011년 국회에서 열린 ‘보건의료산업 직종연구 발표회’를 통해 2010년 현재 치과의사는 303명〜1090명이 과잉 배출된 상태이며, 오는 2025년에는 공급 과잉이 4363명〜5254명 수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0년 발표
월출산 남쪽, 천불동 기슭에 골짜기가 있다. 땅이 후미지고 그윽하며 물은 맑고도 얕다. 층암이 절벽처럼 서서 우뚝하고, 흰 구름이 골짝을 메워 영롱하니 또한 아름다운 곳이다.학문을 익혀 남을 이롭게 살고자 했던 주자의 백록동 서원을 의식하고 백운동이라고 했으며 백운처사 이담로(1627~1701)선생의 별서가 있다.특히 이곳은 제주 정의현 최초 과거급제자 오정빈의 스승 신명규(1618~1688), 영의정을 지내고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라는 약천 남구만(1629~1711), 대사헌과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창계 임 영(1649~1696), 겸재 정 선(1676~1759)과 사천 이병연(1671~1751)의 스승인 삼연 김창흡(1653~1722), 다산 정약용(1762~1836), 초의선사 의순(1786~1866) 등 조선시대의 저명한 문사들이 즐겨 찾아 많은 시문을 남겼던 공간이다.다산 정약용은 1812년 가을 월출산 아래 백운동 원림에 놀러 와서 하루를 묵었다. 돌아간 뒤에도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잊을 수 없어 재차 초의 의순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13수의 시를 지어 붙였다. 이것이 바로 백운첩이다.백운동 원림은 원래의 모습을 잃고 황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