齒 & 通 Self-Ligation Bracket의 진실 <자가결찰교정장치> 어느 날 교정상담을 원하는 한 환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녀는 어느 특정회사의 self ligation bracket를 지칭하며 우리 치과도 그 장치를 사용하는지를 물었다. 우리는 그 bracket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그녀는 ‘그 bracket를 사용하면 아프지도 않고 치료가 훨씬 빨리 끝난다는데 왜 사용하지 않느냐?’고 푸념 섞인 항의를 했다.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느냐고 묻자 그녀는 ‘인터넷에 들어가면 다 나와 있는 사실인데요’하며 ‘이곳 원장님은 뭘 잘 모르는 모양이네’라며 전화를 끊었다. 교정학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열정으로 십 수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건만 한 시간의 인터넷 검색보다 못한 지식의 소유자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최근 10년간 임상교정학에도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교정용 mini implant의 실용화, 3차원 C-T의 임상적용, 3-D skan에 의한 새로운 치료장치의 개발, 그리고 self ligation bracket의 대중화 등… 일부는 임상교정학의 발전에 획기적인 공헌을 했
세무경영 123! 이번호부터 개원의가 꼭 알아야 할 치과 세무·경영, 자산관리에 관한 칼럼을 연재한다. 칼럼은 전영창 세무사(세무법인 하나), 개원의 세무·경영,자산관리 컨설팅업체 프라임밸류에셋(주)의 임은지 대표이사와 김 홍 이사가 순번 게재한다. 나무를 볼 것인가, 숲을 볼 것인가 등산을 많이 하다 보면 매번 겪는 고민이 있다. ‘숲을 볼 것인가 나무를 볼 것인가’하는 것이다. 숲의 큰 조망만을 보고 찾아 가다가 겉보기와 달리 산세가 험한 길로 접어들어 후회하거나, 반대로 조망 없이 무턱대고 나무 사이의 길들을 따라 걸어 나와 보면 결국 더 좋고 편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왜 숲을 보지 않고 왔을까 하는 고민에 빠지는 것이다. 개원의 세무조사에서도 1997년도 이전까지는 숲보다 나무가 더 중요했었다. 그러나 그 해 도입된 주1)TIS(국세통합시스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국세청이 나무가 아닌 숲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주 소득원인 사업장의 매출 세부 구성 내역과 구체적인 경비내역부터 가계의 자산 취득과 현금흐름 현황까지 마치 손바닥에 놓고 보듯이 주민번호 하나로 모든 관련된 데이터들을 한꺼번에 연결해서
|명|사|시|선| 양영태 칼럼<자유언론인협회장·전 치협 공보이사> 느즈막하게 병원이름 바꾼 이유? 60대 중반인 필자가 지난 5월 병원이름을 ‘양영태치과’에서‘여의도 예치과’로 조용히 명칭 변경을 하였다. 그 이후 필자를 알고 있는 많은 이들로부터 왜 치과명칭을 바꾸었느냐라는 요지의 수많은 전화가 왔었고 또 치과의사들과 회합을 가질 때면 으레 병원 명칭 변경이 생맥주의 안주꺼리가 되곤 했다. 사실상 1984년 공직에 있다가 나와서‘양영태 치과’라는 이름으로 개원한 이래, 다른 치과의사들처럼 참으로 성실하고 열심히 개원의 길을 걸어온 나로서 2011년 5월 어느 날 갑자기 ‘여의도 예치과’로 명칭을 변경한 것은 적어도 필자에 있어서는 가히 ‘혁명적(?) 변화’의 마음이 결정적이였음에는 틀림이 없다. 2년여전 어느 날 오랫동안 잘 알아 왔던 어떤 환자가 본인에게 ‘치료비가 다소 비싼 것 같다’고 항의(?) 하면서 “어느 매우 규모가 크고 치과의사가 많은 치과에는 골드 인레이가 일십여만원인데 왜 여기에서는 그렇게 비싸게 받느냐?”라고 상기된 얼굴로 항의한 적이 있었다. 참으로 당혹스럽고 민망스럽고 이름 모를 화가 솟구치는 순간이었다. 이런 유형의 얘기들
월요 시론정재영 <본지 집필위원> 예술인이자 과학자인 치과의사(2) 플라톤의 시대부터 글에 ‘요즘 젊은 것들’이라는 말이 나온다. 2천5백년 전에도 젊은이들은 당시 어른들에게는 꼴사납거나 눈엣가시처럼 보였던 것이다. 행동이나 생각하는 것이 소위 싸가지 없는 모습으로 보여서 그랬을 것이다. 이 말은 필자가 학생 시절에도 어른들이 젊은 사람들을 염려하실 때 자주 들려주시며 걱정하시던 말이다. 긴 역사 동안 존재하던 말이다. 요즘 젊은 것들이라는 말은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역시 앞서 말한 ‘싸가지’라는 말에는 ‘없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반대로 행동거지가 반듯한 사람을 ‘싸가지 있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모든 개혁이나 혁명은 그런 싸가지 없다고 걱정하는 젊은이들의 몫이었다. 종교 개혁자들의 대부분도 다 그런 연령대의 사람들이었다. ‘기독교 강요’라는 대명저를 남기어 신학의 큰 줄기를 만든 요한 칼빈의 당시 나이는 27세였다. 가깝게는 갑오경쟁의 김옥균이나 이승만이나 서재필이나 김구나 대부분의 역사적인 인물은 그런 연령에 속한다. 예수님도
의료분쟁 철저히 대비하자 지난해 경남 김해에서 병원경영난을 비관해 젊은 원장이 자살한데 이어 30대 중반의 치과원장이 자살을 시도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원장은 환자가 의료사고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함에 따라 경찰서에 출두해 조사를 받은 뒤 극단적인 행동을 벌였다. 다행스럽게도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는 상태지만 한창 젊은 나이에 의료분쟁으로 인한 고충이 얼마나 컸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고 안타깝기 짝이없다. 해당 원장은 지방 소도시에서 개원하고 있다보니 지역주민들의 평판과 소문에 각별히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고 심성이 곱고 여리다보니 환자에 대한 미안함은 물론 경찰조사에 따른 심적인 부담과 자괴감이 상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원장의 의료분쟁사례를 상담한 치협 회원고충처리위원회 위원에 따르면 해당 원장의 설명내용과 촬영한 파노라마 사진을 보면 원장의 잘못은 없었고 환자의 협박과 공갈에 휘둘린 경우라는 판단이다. 해당 원장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소송을 제기한 환자는 요즘 언론에서 많이 지적하고 있는 경우처럼 의사를 상대로 생떼를 써가며 젊은 원장을 궁지로 몰아가지 않았나 생각된다. 요즘 환자들의 의료상식
연아이글스를 생각하며… 20년전 우리는 막연한 의문을 가지고 모임 하나를 만들었지. 언젠가 먼 훗날에 이 모임이 존재할 수 있을까?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이 지난 5월 29일 수원에서 치러진 ‘연아이글스 창단 20주년 기념식’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행사 내내 흥분하며 상기 되었고, 때론 시간 앞에서 숙연해지기도 했다. 그날의 아름다운 순간들이 떠오르자 옛이야기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잠시 나는 꿈을 꾸듯 그날로 걸어 들어가 본다. 연아이글스는 연세치대 축구부의 졸업생 모임이다. 따라서 1991년에 창단되었지만 1970~80년대의 학창시절의 추억들이 이 모임의 근간을 이룬다. 지금도 생생하지만 처음 축구부를 노크하던 날, 그 가족 같은 분위기에 압도되어 나는 집을 떠나 처음으로 세상이란 큰 조직에 속한다는 벅찬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때 가슴에 새겨진 첫인상은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었다. 이렇게 나는 축구부에 빠져들어 갔다. 6·9제를 준비하는 짧은 봄날의 에피소드지만 축구부는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모두가 낮에는 축구선수였고 밤에는 술꾼이 되어 닭똥냄새나는 신촌시장을 배회했었다. 마치 인생길에 미처 나서기도 전에 지쳐
종|교|칼|럼|삶 홍현정 사비나 수녀<마리아의 전교 프란치스코회> 생명이라는 것은 저희 집에 좁쌀보다 조금 큰 열대어 몇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저희 수녀님이 방문한 어떤 수녀원에서 키우는 열대어들이 너무 예뻐서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치어 몇 마리 나누어주시더라고요. 작은 어항에 넣어 햇볕 잘 드는 거실 한 켠에 두어 하루가 다르게 제법 제 꼴을 갖추어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정말 조그맣고 연약해서 물 갈아줄 때 급한 마음에 그물질만 거칠게 해도 죽는 놈이 생깁니다. 금방까지 살아 생생하게 헤엄쳐 다니던 것들이 그렇게 죽거나 아니, 힘만 없어져도 마음이 언짢아집니다. 작고 약한 것들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물이 차거나 더럽다, 밥이 모자르다, 혹은 빛을 좋아한다…. 그 말이 들리지 않아도, 그 몸짓이 크지 않아도 어쨌든 말을 합니다. 아니, 약할수록 더 강하게 외칩니다. 우리의 마음 한켠을 내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그렇게 마음자리를 내어주면 저절로 더 자주, 더 시간을 들여 살피게 되고, 살피게 되면 뭐가 필요한지 알아차리게 되고, 알아차리면 적절하게 보살필 수 있게 됩니다. 무릇 생명 있는 모든 것은 그래서 한편으로는
U 네트워크 막장 이제 그만 최근 U 네트워크가 주인공이 된 일련의 사건들로 치과의사들이 분개하고 있는 가운데 또 다시 사건이 터졌다. 지난 5월에는 개원가에 찌라시를 돌려 U 네트워크로 전화를 걸지 않을 경우 환자는 없고, 부채는 늘고, 직원도 떠나고, 치과도 망하고, 가족도 떠난다는 망언으로 공분을 샀다. 이에 이어 U 네트워크는 치협을 상태로 홈페이지 이용제한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면서 전국의 치과의사들을 돈만 밝히고 집단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집단으로 매도하는 문구를 담아 치과의사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다시 찌라시를 개원가에 무차별적으로 발송하면서 개원가의 원성을 사고 있는 것이다. 이정도면 치과계에도 U 네트워크가 주인공이 된 막장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번 찌라시에는 U 네트워크에 대한 과도한 자화자찬과 함께 원색적인 선전이 포함돼 있을 뿐만 아니라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교묘하게 치과계의 현안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문구를 삽입하면서 구인모집을 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게다가 찌라시의 주체로 명기된 U 치과그룹은 현행법에서 허용하지 않고 있는 영리병
24시간주! 5월 7일(토) 오전 11시~8일(일) 오전 11시까지 24시간주 국가대표선발전이 한국체육대학교트랙에서 13명의 24시간주와 11명의 12시간주(A조-2명, B조-9명)선수가 참가 한 가운데 열렸다. 체대생과 실업선수들 훈련이 늦게 끝나서 12시반부터 시작했고 12시간주는 200바퀴 80km, 24시간주는 400바퀴 160km가 최소완주 기준이다. 국가대표선발자격은 220km(550바퀴)이상이며 4시간마다 트랙도는 방향을 바꾸고 각자의 개인부스가 있어서 음식과 물, 개인봉사자 등을 둘 수 있다. 12시간주는 24와 같이 출발과 12시간 지난 후에 출발하는 두 팀으로 나눴지만 거의 B조로 출발했다. 목표는 180km, 450바퀴로 세우고 다른 선수들의 거리와 속도는 신경쓰지 않기로 하고 천천히 뛰기로 했다. 30km를 달린 후 처음으로 5분가량 쉬며 빵과 물을 마셨고 50km(125바퀴)를 마치고 죽과 좋아하는 족발을 먹으며 힘을 충전했다. 저녁이 되어 선선 해져서는 조금씩 속도를 올리는데 초반에 오버한 몇 몇 선수들은 기권을 했고 클럽회원들이 응원을 오기시작해서는 더 힘이 나기 시작했다. 회원들의 도움으로 맛사지도 받고 맛
|명|사|시|선| 임철중 칼럼<전 치협 대의원총회 의장> 치과계의 챔피언들 이수구협회장의 제27대 집행부가 퇴임하였다. 멋진 헌사를 보내고 싶었지만 앞서 양영태 씨가 멋지게 마무리 해주었으니 한 마디만 보탠다. “초대 상근협회장으로서 바람직한 모범을 보여준 것에 감사하며, 개인적으로는 ‘이수구협회장" 의 이름으로 받은 공로대상 상패가 자랑스럽다." 그는 어려운 시기에 회무를 맡아 협회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놓은 치과계의 챔피언이기 때문이다. 제60차 총회는 필자가 실로 오랜만에 ‘대의원"이라는 짐을 내려놓은 첫 총회였다. 비록 현장에는 없었지만 그간 중요한 의제가 있을 때마다 총회 평을 써온 여세로 두 가지만 짚어본다. 첫째 공중보건의 대의원배정 문제다. 군복무를 대신하는 공보의는 단기 통과의례인 까닭에, 정관상 임기의 불일치라는 문제가 있으며, 수련의와의 형평도 고려해야 한다. 근무조건 같은 권익보호 차원이라면, 대의원보다 협회이사가 더 타당하고 실익도 있다. 둘째는 감사문제다. 건설 불황이 금융위기로 이어지면서 저축은행의 도덕적해이가 들어나고, 감사기능 마비가 수술대에 올랐다. 본래 감사는 king"s man이 아니라,
기고 치과에서 치아에 염증이 생겨 치과에 다녀온 후 나는 양치질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치아 치료는 경험이 없어 두렵고 더군다나 치과는 보험 적용이 별로 되지 않는다는데 내 치아 손상이 심해 고비용이 드는 것은 아닌지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생각이 복잡했다. 몸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치아는 예방이 중요하고 꾸준한 관리와 관심을 요한다. 나는 입을 벌리고 받아야 하는 치료에 거부감이 생기고 그간 통증이 없어 구태여 치과를 찾지 않았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자녀의 유치부터 관리하고 양치질을 가르친다. 내가 어릴 적 유치가 흔들리면 어른이 그 이에 실을 묶어 내 관심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고 순간적으로 잡아챘다. 뽑은 유치를 지붕에 던지며 ‘헌 이 줄께 새 이 다오’라며 영구치가 잘 나기를 바랐다. 그 시절에는 대개 그런 식으로 이갈이를 했기에 제때 제거 못한 유치 때문에 덧니가 생기는 경우도 많았다. 요즘은 어릴 적부터 치아 관리를 잘하기에 영구치가 비교적 고르고 치아교정을 하기도 한다.나는 운이 좋아 충치나 잇몸 병 없이 지금껏 살아왔다. 병원에서의 진단은 치아 뿌리가 들어난 잇몸 사이로 균이 들어가 충치가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