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개원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원장님들끼리 모이면 힘들다는 말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를 포함한 원장님들의 최대 고민은 직원 채용 문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원장이 직원을 면접 보는 것이 아니라 직원이 원장을 면접 본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새로운 직원을 구경하기 힘듭니다. 특히 저희 병원처럼 근처에 치위생사 배출 대학도 없고 교통도 불편한 경우에는 더더욱 힘들지요. 직원 구인 광고를 아무리 내어도 면접 보겠다는 전화 한 통 받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어찌어찌 면접을 보아도 마음에 드는 직원들을 찾기는 정말 힘듭니다. 또 간신히 구해서 교육을 열심히 해놓아도 불쑥 그만두기 일쑤입니다.이런 상황에 이번 GAMEX에서 경기도내 예비 치위생사들을 대상으로 한 ‘채용설명회’가 열린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심 어쩌면… 하는 마음으로 신청했습니다. 이제 막 치위생사로서 사회에 발을 내딛을 그들에게 우리병원이 첫 단추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프리젠테이션 자료 한 장 한 장 허투루 준비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설명해 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지만, 정말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그들이 원하는
2008년 5월 7일 오후 5시. 하노이에서 탑승한 쌍발식 프로펠러 비행기는 김종철 전 학장님을 포함한 우리 일행 5명을 무사히 라오스 비엔티안 왓타이 국제공항에 데려다주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습하고 더운 공기, 그리고 어딘지 모를 서투름. 지금은 없어졌지만 20불을 내고 도착 비자를 받은 뒤 시내 여행자 거리 숙소에 도착하며 바라 본 바깥 풍경은 말로만 듣던 저개발 국가의 그것이었다. 일부 주요 도로마저 포장이 안 되어 먼지가 날리고 있었으며, 소수 호텔을 빼고는 대부분 2~3층의 낮고 낡은 건물이 대부분이었다. 위생 관념도 희박하였으며 2박 3일의 기간 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전통 식당에서 먹었던 땅강아지 튀김과 흰개미 알 샐러드 정도?라오스 첫 방문은 이렇게 끝이 났고 개인적으로 2006년 이후 교류를 지속적으로 하던 베트남 하이퐁 대학은 매년 찾았지만, 라오스를 다시 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 그러던 2012년 우리 대학의 백대일 교수님(라오스 치의학 발전에 지대한 공로를 세우신)께서 기회를 주셔서 한세현 교수님, 류인철 교수님과 함께 4년 만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다시 찾은 라오스는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개발도
끝날 것 같지 않던 무더위가 지나니 거짓말처럼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고 있다. 계절의 변화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나이가 들면서 모든 감각이 하나둘 무뎌지는 걸 느끼며 쓸쓸한 마음으로 체념하고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는데, 아직 가을을 기다리는 설렘이 남아있음에 감사드린다.어제 실버타운에 입소하신 어머님을 뵙고 왔다. 3년 전 60년을 같이 하신 아버님을 먼저 보내시고 오랜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리시던 어머님은 올해 초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실버타운입소를 결정하셨다. 남편은 수험생엄마라는 무기로 무장한 나에게 조심스럽게 같이 갈 것을 종용했다. 어머님은 89세이신데 그 당시로서는 꽤 유복하고 개화된 집안의 맏딸로 자라나 명문고와 명문대학을 나오시고 미인대회에도 출전하실 정도로 뛰어난 미인이시다. 내가 결혼할 때만해도 어머님은 건강하시고 자신감 넘치시는 모습으로 나를 이끌어주셨다.어느덧 세월이 흘러서, 어머님은 체력, 인지능력이 떨어지셔서, 혼자서는 멀리 다니지도 못하고, 작은 일처리도 힘들어하시고 많이 외로워하신다. 같이 가자는 남편의 제안에 문득 우선순위를 고민하는 내 자신에 많이 실망했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사랑하는 남편을 낳아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대한치과의사협회가 롯데제과의 후원으로 진행하는 ‘치아가 건강한 대한민국 캠페인’은 2013년 3월에 제1차 진료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28차에 걸쳐 전국을 돌며 저소득의료소외계층, 장애우 및 외국인근로자 등 2300여명을 대상으로 꾸준히 무료치과진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5년 8월에는 전라남도 여수 인근의 ‘개도’라는 섬마을로 진료를 다녀왔기에 아름다운 추억을 잠시 회상을 하면서 회원 여러분들께 치협의 활동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금요일 오후 18시 20분발 여수엑스포행 열차를 타기 위해 일찌감치 진료를 마치고 17시 경 본인의 치과 직원 3명과 함께 택시를 타고 용산역으로 출발했습니다. 보통 30~4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기에 도착해서 커피라도 한 잔 하려고 했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초유의 교통정체를 만나 단 2분 차이로 열차를 놓치게 되었죠. 직원들과 함께 빈 철로를 바라보며 한참 정신줄을 놓고 있다가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창구로 가서 기존 티켓 반환하고 21시 40분발 열차로 예매를 했습니다. 혹시 또 열차를 놓칠세라 역사에 있는 식당에서 부대찌개를 안주삼아 맥주 한잔(직원들은 맥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며 소주로)을 하며 분루를 삼키
벌써 8년이 넘었지만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그날은 내 인생에 새로운 세계가 열린 날이다. 항상 존재하고 있었지만 내가 사는 세상과는 관계가 없는 세계이기에 내 머릿속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그 정글의 세계에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간 날이다.2007년 5월 17일로 기억된다. 배드민턴 라켓과 신발 가방을 팩키지로 장만해서 배드민턴 체육관을 찾아간 날이….그 전까지는 헬스장이나 스쿼시장 indoor 골프장에 가서 운동을 했었다. 그런 사설 체육시설은 내가 고객이기 때문에 가면 사장님과 코치가 인사하며 운동법을 가르쳐 준다. 난 고객이므로 다른 고객들과 함께 운동만 하고 오면 된다.그런데 배드민턴은 그게 아니었다. 동호인들이 모여 초등학교 체육관을 시간제로 임대해서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배드민턴을 한다.배드민턴 클럽에 가입하는 것도 입회비만 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클럽 임원단의 허가가 있어야 가입할 수가 있다.매달 회비를 내고 돌아가며 당번을 정해 클럽 체육관 청소도 한다. 네트도 치고 걷고 코트바닥 청소도 하고 쓰레기도 버려야 한다.일주일에 3번씩 월·수·금은 레슨도 받는다. 힘들다. 숨이 찬다. 다리가 떨어지지 않는다. 코치가 말하는 동안의 그 잠깐의 정지
재작년 모 케이블에서 방송한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예과 92학번인 나는 본과에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94학번을 부여 받았다. 아마 나처럼 그 시절을 기억하는 세대가 많았나 보다.94년도 따듯했던 5월의 연건캠퍼스와 창경궁의 푸르른 녹음, 바람, 그리고 꽃 향기가 바로 엊그제 일인 양 선명하고 부드럽고 향긋하다. 오늘이 2015년 8월이니, 벌써 만 21년전 일이다. 1997년 12월 폭설을 뚫고 시험장에 겨우 늦지 않게 도착하여 국가시험을 치르고, 1998년 2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치과의사면허를 취득했다.1998년은 IMF가 막 시작된 시절이었다. 당시 한국의 경제상황은 엉망이었다. 우리 부모님도 힘들었고 모두가 힘들었다. 다행히도 그 시절 바쁜 인턴과 레지던트 시절을 보내느라 나는 나라의 경제상황을 걱정할 처지는 아니었다. 수련과정은 힘들고 괴로웠지만, 지치지도 않고 피곤하지도 않았다. 전라남도 신안군 낙도 섬마을에서 2년 그리고 성남시 분당구보건소에서 1년 공중 보건의로 군생활을 대신하였다. 2004년 4월 15일, 36개월의 긴 군복무를 마치고 다른 선배님들의 길을 따라 드디어 개원의의 길을 걷게 되었다.
중국 지린성 용정시 자선총회 박호만 회장(전 용정시장)이 지난 날 개최한 라이온스 광주지구 연차대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내광했다. 박호만 회장은 나를 보자마자 “총재님! 당분간 중국에 가면 안 됩니다. 바로 체포됩니다.” 나는 지금까지 한생을 사회봉사인이라 생각하며 UN NGO 밝은사회클럽을 비롯하여 국제라이온스협회 등 봉사단체에서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런데 중국 당국으로부터 체포씩이나 할 만한 무슨 범법을 했단 말인가. 몇 해 전 9월 1일부터 5일간 나는 라이온스 광주 및 전남지역 일부 총재로서 유형용 사무총장, 양희준 재무총장을 비롯한 라이온 66명과 함께 용정시를 다녀왔다. 직전 총재단이 용정시 자선총회와 자매결언을 맺고 용정시에 암소 20여 마리를 전달하고 돌아와 우리 회기에도 암소 41마리를 조선족 독립군 후손들에게 기증하기 위하여 간 것이다. 중국에 가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중국 당국으로부터 거부하는 사람이 되었는가?우리가 전달한 송아지 수십 마리가 광개토대왕이 호령하던 옛 우리 영토 요동 땅 초원에서 펄쩍펄쩍 뛰노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벅찬 감격에 우리의 가슴도 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우리 항일독립군이 독립을 위하여 말 달리던 비암산 일송정에
"Pull a long face”하면 “죽상을 하다”의 의미다. 여기서 long은 ‘엄숙한, 우울한’이다. 옛 어른들은 얼굴이 너무 길면 ‘밉상’이라며, 2세들 배필 고르기에서 일단 제쳐놓으셨다. 이제는 얼굴이나 체격이 서구화하여 이문세씨의 착한 ‘말 상’은 오히려 매력이 되었지만 전형적인 긴 얼굴은 턱이 큰 치받이(Class III 부정교합)로, 어렸을 때 인형 같던 책받침의 여왕이 성장호르몬 장애로 얼굴과 턱이 길어지면서, 180cm 장신이 된 브룩 쉴즈의 경우도 있다. 하지만 말투마저 썰렁한 김구라씨는, “비호감 전성시대”의 풍조 속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막장드라마의 달인 임성한 작가가 중도하차한 적이 없고, 소위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조영남씨와 “욕쟁이 할머니” 캐릭터로 살아온 김수미씨가 공개적으로 싸우고도(‘나를 돌아봐’에서), 노이즈마케팅쯤으로 쉽게 풀리는 것을 보면, 비호감과 막장은 보다 센 자극을 은근히 바라는 국가적인 사회병리현상 같다. 동물의 세계는 다르다. 초원의 신사 기린이나 사슴은 물론 정작 얼굴이 긴 말도 선(善)한 이미지다. 44세의 아까운 나이에 과로로 쓰러진 처녀시인 노천명은 사슴을 두고, “목이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출발어릴적 울산에 살던 때부터 동고동락하던 친구녀석과 휴가때 시간이 맞아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였다. 떠나기 직전까지도 가방을 싸지 않고 있다 출발 시간이 임박해서야 부리나케 짐을 쌌는데, 출발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밀려드는 설렘이 동반된 긴장은 필요 이상의 불안감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었다. 급히 챙기느라 빠뜨린 것들은 또 그 여행만의 재미라 생각하고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고 가는 날들이 반나절 밖에 안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짧고 빡빡한 사흘이 될 것이라 쉽게 예상 가능했다. 오설록 티 뮤지엄이곳은 ‘차’에 대한 관심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만 파는 ‘녹차 롤케익’이라거나 ‘녹차 아이스크림’과 같은 특산품에 이끌려 티 뮤지엄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우리 역시도 그랬다. 출발이 늦어져 관람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카페음식만 맛보고 나오는 수준이었다.‘차’라는 문화적 소재가 본디 의미함은 ‘여유’나 ‘휴식’과 같은 것일진대 우리는 그것에 정면으로 반박이라도 하듯 아주 신속하게 짧고 달콤하며 쓴 녹색 빛의 특산품들을 맛보고 왔다. 그러는 와중에 문득 차 문화를 알리고 보급하겠다는 화장품 회사 창업주 회장의 뜻이 값비싼 카페와 기념품 가게의 가격표
세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나는 고양이들에게 안식처와 먹이를 제공하고 고양이들은 나에게 현재의 일상을 선물한다. 지금도 한 놈이 노트북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다. 이 녀석은 컴퓨터 마우스에 관심이 많다. 또 다른 한 녀석은 건너편 책장의 네 번째 칸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녀석은 꼬리가 도톰하다. 그 도톰한 꼬리를 쭉 늘어뜨려 아래 칸의 책을 무심히 두드린다. 그 툭툭 소리를 듣고 어디선가 다른 한 놈이 달려온다. 책장에 앉아 있던 놈이 사뿐히 바닥으로 내려 앉아 장난을 칠 태세를 갖춘다. 그 때 노트북 뒤에 있던 놈이 마우스를 슬쩍 건드린다. 나는 그 고양이를 번쩍 안아들어 내 무릎 위에 살포시 올려둔다. 내가 오늘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지금 내 무릎 위에 누워있는 우리 둘째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녀석은 노랑이이다. 태어난 지는 이제 4개월쯤 되었다. 지난 봄, 첫째를 데리고 다니던 동물병원에 ‘무료 분양’ 딱지가 붙어 있길래 아기 고양이 구경이나 해볼까 해서 들어갔다가 그 녀석을 만나게 되었다. 포대기 아래에서 죽은 듯이 자고 있던 작은 생명체는 내 손바닥위에 올라오자마자 달달 떨기 시작했다. 딱지가 내려 앉아 얼룩덜룩
내가 허세욱 선배를 처음 만난 것은 십여 년 전 대한치과의사문인회(치문회)의 세종문화회관 월례모임 자리에서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치문회에서는 정기적으로 유명 문인들을 초청하여 문학 강좌를 개최하는데 때마침 허세욱 선배가 연자로 초빙되었던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리남성고 선배이신 허세욱 교수님의 문학세계와 학문적 업적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던 나에게는 미리부터 흥분과 기대에 차 있던 만남이었지만, 막상 얼굴을 뵙고는 감히 말문조차 떼기도 어려워 그냥 조용히 앉아 말씀만 듣고 있었다.이 전에 사진으로는 간혹 뵈었었지만 그토록 인물이 훤칠한 미남이신 줄은 미처 몰랐다. 가녀린 모습의 학자풍으로만 상상하고 있었는데 인자한 모습과 정감 어린 목소리를 가진 키 큰 호남 형이셨던 것이다.문학 강좌가 끝나고 화기애애한 여담이 오갈 때 허 선배님이 번역한 중국시인 ‘지센’의 ‘배’를 지금도 자주 암송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좌중이 모두 놀라는 것이었다. 그 시가 한동안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후로 이미 사십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한 번 외워보라’는 허 선배님의 말씀에 암송을 시작하였는데, 비록 짧은 시이지만 너무나 심오한 깊이를 품었기 때문에 낭송이 끝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