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BN_42585 {WORD-BREAK: break-all; font-family:굴림;font-size:9pt;line-height:normal;color:#000000;padding-left:10;padding-right:10;padding-bottom:15;padding-top:15;}.VBN_42585 p, .VBN_42585 td, .VBN_42585 li{font-family:굴림;font-size:9pt;color:#000000;TEXT-DECORATION:none;line-height:normal;margin-top:2;margin-bottom:2}.VBN_42585 font{line-height:normal;margin-top:2;margin-bottom:2}.VBN_97131{font-family:굴림; font-size:9pt;}Relay Essay제1822번째첫 발 내 딛는 젊은 치의들의 고충 공중보건치과의사로서 3년간의 근무를 마치면서 공중보건치과의사 같은 젊은 치과의사들의 삶에 대해서 느낀 것을 짧은 글로 말해보려고 합니다.지금 치과계는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문제들로 힘들어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한 치과계에 발을 내 딛
Relay Essay제1821번째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것 나는 어렸을 때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춤추고 노래 하는게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지만, 나는 그저 우리집에서만 명가수였고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자기소개조차 하지 못하는 부끄러움 많은 어린 아이였다. 학교란 곳에 들어가고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공부도 하고, 이런 저런 주변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부터 나는 줄곧 치과의사가 되어야지… 어린아이가 무턱대고 갖고 싶은게 생기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이제 가수가 아닌 치과의사가 되고자 하는 꿈을 꾸었다. 두 번의 수능시험을 보았고,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아깝게 두 번이나 낙방하였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지만 마냥 하고 싶었던 그 일을 시작도 해보기 전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흔히 말하는 좋은 며느리가 될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었지만, 내가 더 하고 싶은 일이 아직 남아있기에 한 번 더 대학원 진학을 시도했고, 너무도 감사하게도 세 번의 좌절은 겪지 않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게 허락되었다. 입학 후 4년간의 시간을 잘 버텨내었고, 나는 모
Relay Essay제1820번째 박쥐(하) <2113호에 이어 계속> 출근을 해 진료를 하는데 자꾸만 출근길에서 만난 박쥐의 모습이 생각 나, 진료가 잘 되지 않는다. 선한 눈망울이며, 격렬하게 저항하며 크게 벌린 붉은 입이며, 온갖 힘을 다해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애쓰는 검은 날개며, 허우적거리며 허공을 휘젓는 앞발과 뒤뚱거리며 균형을 잡으려는 뒷다리의 힘겨운 모습 등등이 계속 나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다. 스잔한 마음을 달래는데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행여나하는 마음에 아침 박쥐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대체 박쥐란 동물이 어떤 동물인지 알고픈 욕망이 솔솔 일어나 백과사전을 펼쳐 봤다. 아니, 박쥐의 종류가 이렇게 많단 말인가? 큰 박쥐 종류로 쟈바 큰 박쥐, 인도 큰 박쥐(Pteropus giganteus), 오가사와 큰 박쥐(P. Pselaphan) 등등이 있고, 작은 박쥐 종류로 관 박쥐(Rhinolophidae), 애기 박쥐(Vespertilionidae), 큰 귀 박쥐(Molossidae), 긴 가락 박쥐(Miniopterus schreibersi), 집 박쥐(Fuliginosus), 토끼털 뿔 박쥐, 큰 발 윗수염 박쥐
Relay Essay제1819번째 박쥐 (상) 아파트 현관을 나서니 찬바람이 옷 속으로 되알차게 스며든다. 어젯밤 텔레비전 뉴스에서 오늘이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 될 거라는 예보대로 제법 찬 기운이 낯볼을 비빈다. 이렇게 추울 줄 알았으면 지하 1층 주차장에 차를 둘 걸 하고 후회를 하면서 아파트 중앙광장을 지난다. 이 시간이 유아원과 유치원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인가 보다. 노란 차 두어 대가 중앙광장에 서서 자기네 아이들을 태우려고 붕붕붕 매연을 뿜고 있다.두툼한 옷으로 무장한 꼬마 아이들이 자기차를 찾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한바탕 소란이다. 그 모습이 아름답고 생기발랄하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에 속으로 무심히 미소를 띠우며 검은 아스팔트길을 따라 지하 2층 주차장으로 향했다. 검은 아스팔트길을 따라 걷던 난 소스라치게 놀라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박쥐 한마리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배를 깔고 다가오는 나를 보고 붉은 입을 짝 벌리고 대거리를 하고 있지 않은가. 왜 저러지? 아이고, 불쌍해라. 무엇을 원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가까이 오는 나를 위협하는 건가? 하여간 자세한 뜻은 모르나 지금의 상태가 매우 힘들
Relay Essay제1818번째 내 어깨 위의 천사 내 어깨 위의 천사에게 나를 돌봐줘서 고맙다고 인사해요.내가 할 수 있을까, 못하면 어떻게 하나, 내가 그런 능력이 될까, 잘 해낼 수 있을까, 나를 응원해줬던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것은 아닌가. 걱정을 사서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딱 나를 가리키는 말이다. 과도한 걱정 탓에 뭔 걱정할 일이라도 생기면 잠도 잘 못자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걱정을 해대니 나 자신이 힘들기도 하고 덩달아 얼굴표정도 방글방글하지 못하고 근심이 가득하게 되니 주위사람들에게도 긍정에너지를 주지는 못할망정 빼앗기까지 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 그 미안함에 걱정이 더 커지곤 한다. 퐁퐁 샘솟는 웃음에너지의 원천이 되어야 할 나이 어린 원내생이자 집에서는 늦둥이 딸인데 이것 참….이런 걱정병 때문에 내 처음 내딪는 발은 두근함을 넘어서서 무슨 지진이라도 난 데 서 있는 사람 마냥 와들와들 떨고 있을 때가 많다. 치과의사 국시를 준비하며 걱정을 하지 않고 여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만은 나는 특히나 더 걱정을 주렁주렁 매달고 준비했던 것 같다. 국시공부를 하면서 이때까지 배웠던 것이 예전에 처음 배울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또 한번 더 읽
Relay Essay제1817번째 그땐 그랬지 3월 초. 길고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길목에 서 있다. 지난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출근할 때 두꺼운 외투며, 목도리며, 장갑이며 돌돌 싸매고 밖을 나서던 기억이 나지만 지금은 장갑조차 좀 답답함을 느낄 정도며, 한낮의 햇살이 비추면 일광욕을 하고 싶을 정도로 제법 따뜻하다. 난 원래 겨울을 좋아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초겨울 저녁의 분위기 있는 풍경을 좋아한다. 초겨울 저녁에 가로등 켜진 동네 길목을 바라보며 알싸하게 다가오는 찬바람의 느낌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했던가? 칼바람 부는 겨울이 싫어지기 시작하면서 이젠 좀 따뜻한 햇살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이번 겨울은 “추운 거 나도 알아요. 그런데 추워도 너~~무 추워!” 문득 다가오는 봄을 생각하니 어릴 적 멋모르고 산과 들을 선머슴마냥 뛰어 놀던 기억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지금은 변두리나 시골을 가도 예전과는 다르게 자연을 벗 삼아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나기 참 어렵지만 30년 전만 해도 서울 도심지 말고 지방 변두리에는 논과 밭을 흔
Relay Essay제1816번째 아버지의 자전거(하) 집안에 손자 손녀들이 태어날때마다 아버지는 감나무며 대추나무, 배나무 묘목을 대야장터에서 사다가 손자손녀의 이름을 붙여가며 심곤하셨다. 일종의 기념식수를 하셨던 셈이다. 추운 겨울날이면 학교를 다녀온 막내아들을 보시고는 아랫목 요를 들추시면서 춥다며 어여 들어오라고 아랫목을 내주시곤 하셨던 아버지다. 요를 들어 올려 속으로 들어갈라 치면 밥공기 뚜껑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벗겨진다. 아버지가 막내아들 뜨신 밥 먹으라며 넣어 두신 게다. 정겨운 기억이다. 아버지에 관한 가슴 시린 기억도 있다. 고 3때 원서를 쓰는데, 진학상담을 위해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했다. 학부모상담이 있던 날,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아버지가 오시기도 전에 원서를 써가지고 지원할 대학에 가버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담임선생님을 만나러 오신 아버지는 이미 막내아들이 원서를 써가지고 갔다는 담임선생님의 말만 듣고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원서를 접수하고 집에 돌아왔을때도 아버지는 내내 아무 말이 없으셨다. 얼마나 서운하시고 맥이 풀리셨을까? 철이 들어서 그때 일을 떠올리곤 할 때면… 아버지의 한참이나 처진 어깨가 눈에 선하다.
Relay Essay제1815번째 아버지의 자전거(상) 회색빛 바구니가 달려 있고 변속기어가 없으며 검은색 각진 플라스틱 손잡이와 빛바랜 회색안장 그리고 앞바퀴와의 마찰력으로 전기를 만들어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빈티지(vintage) 스타일의 다홍색 자전거. 우리 아버지가 생전에 타시던 자전거이다. 작년 추석명절에 일이다. 추석이면 으레 온가족이 한상 가득 차려서 먹고 마시며 밥상을 치우는게 일이다. 추석특선영화도 재미없고 집안에 있기엔 볕이 너무 좋아서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 엄마! 집에 혹시 탈만한 자전거 없어요?” 송편을 빚으시던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타시던 자전거가 헛간에 있다고 하신다. ‘아버지가 타시던 자전거가 남아 있었나?’ 기억을 더듬으며 헛간에 가보니 여기저기 녹슬고 거미줄이 잔뜩 진을 치고 있는 자전거가 한 대 웅크리고 있다. 헛간 터줏대감인 누렁이는 외부인의 방문이 마뜩잖은지 연신 짖어댄다. ‘이게 주인집 막내도련님을 몰라보고’. 자전거를 꺼내 마당에 세워 놓으니 9년간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아버지가 쓰셨던 물건에 대해서 관심을 갖거나 찾으려 애써 본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Relay Essay제1814번째 자신의 가치관으로 행복하길… …나는 바보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속된 회의주의에 물든 사람들도 나 못지않게 천치들이다. 내 어리석음을 버리고 그들의 어리석음을 따라야 할 이유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밀란 쿤데라, “농담” -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꿔놓았다는 말은 사실 믿기 힘들다. 책의 힘이 위대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못하기에. 위의 인용구 역시 내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하고, 이제껏 살아온 삶에 대한 해명이 될 수는 있을 것 같다. 일생, 정말 한 번의 삶이다. 만약 두 번, 세 번의 삶이 있다면 나의 어리석음을 그들의 어리석음과 비교하여 보다 현명하게 바꿔 볼 만할까? 그러나 한 번의 삶이기에 조금은 다르고 가끔씩은 틀려도 나의 어리석음을 따르려 한다. ‘어차피 한번 살 거’라는 식의 허무주의가 아니다. ‘기왕 한 번 살 거라면’ 타인의 눈에는 무모하고 어리석게 보여도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좀 더 다양하고 풍부하게 살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풍요롭게’가 아닌 ‘풍부하게’
Relay Essay제1813번째 마음을 치료하는 치과의사 나의 꿈은 마음을 치료하는 치과의사였습니다.지금은 언젠가 아무것도 치료할 줄 모르는 치과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필요 없어지면 꿈이 실현되는 것입니다.수많은 구강건강을 위한 원고들을 쓰고 지우고 없애기를 여러 번 하였고 녹음테이프도 만들었었습니다. 물론 몇 번 안 쓰고 폐기되었습니다. 현미경을 이용해보려 했지만 위상차 현미경은 생각보다 경비가 나가서 포기했고 오히려 기존 자료 화면을 이용하기로 하였습니다. 기초과학을 공부하였던 때가 있고 지금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저희 학교 치주과 교수님이셨던 최점일 교수님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치주과 교수님이신 최점일 교수님께서는 40대에 저희들에게 자신의 꿈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지구상에서 치주질환을 몰아내겠다는 포부를 밝히셨습니다.‘그렇게 되면 치주과가 없어지는데….’이 생각과 수없이 논쟁을 해야 했습니다. 혼자서.이제는 그 꿈을 이어받아서 치과 전체의 질병이 의사에 의하지 않고도 관리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하면 내 직업이 없어지는데….’처음에는 치과의사로서 많은 거짓말을 했던 때를 반성했습니다. 치료를
Relay Essay제1812번째 행복한 선택 (한) <2105호에 이어 계속> 그 뒤 오직 한길 40년 치과의사는 나의 천직이 되었다. 뒤돌아보면 학창시절, 전공의시절, 군의관시절, 힘들었던 개업 초년병시절, 진료실에서 당황하고 힘들었던 시련들… 파란만장이었다. 그러나 한마디로 행복한 선택이었다. 40년 세월이면 10년에 강산이 한번 변한다는데 강산이 4번이나 바뀜직한 세월이 흘렀다. 아득한 세월이다. 처음에 개업이 잘 안되었을 때 제일 불편한 게 내자에 대한 민망함이었다. 의사라고 해서 잘 나갈 줄 알고 나한테 시집을 왔는데 치과운영이 어려우니 실망할 것이 너무 뻔했기 때문이다. 술 한 잔 먹는 것도 용맹이 있어야 한다. 돈벌이가 없으니 좋아하는 술도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구멍가게 앉아 노가리에다 소주 한잔 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돈 못 버는 주제에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하니까다. 이제는 그래도 내자에게 미안하지 않을 정도가 됐고 큰 부자는 아니어도 제법 일가(一家)를 이루었다고 자부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고생하지 않고 성공한 사람이 있겠는가. 아름다운 꽃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