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순삭’되고 새해가 밝았습니다. 평소대로라면 크리스마스를 비롯한 연말의 분위기에 흠뻑 취했을 시기지만, 지난 5월에 태어난 아들이 처음으로 크게 아파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는 바람에 올해는 연말을 만끽할 틈이 없었습니다. 아기가 아플 때 아내는 지옥을 겪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고열에 힘들어하는 아기가 엄마 껌딱지가 되어 신체와 정신의 고통을 동시에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몸으로 놀아주기 전문인 아빠는 ‘애비월드’를 잠시 휴업하고 다른 쓸모를 찾아야 합니다. 입원한 아기와 한 명만 허용되는 보호자의 빨래 등 각종 허드렛일을 하고, 밤새 아기를 안아 재우느라 녹초가 된 아내와 주간 시간에 잠시동안 교대를 해주는 것입니다. 아내가 잠시 쉬러 간 사이 담당의 회진 시간이 되어 밤사이 아기의 변화를 비롯해 평소와 다른 점을 설명하는데, 저도 모르게 울컥하며 목소리가 떨립니다. 아기를 처음 응급실에 데려와 라인을 잡고 입원시키기까지의 모든 속상한 감정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듯한, 묘한 느낌입니다. 이런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쿨하게 대답하고 떠나버리는 담당 교수의 뒷모습이 야속하게 느껴집니다. 같은 병실 장기 입원 아동의 보호자는 무뎌진 것인지, 의료진과 몇
지난 2004년 치과계의 오랜 난제 중의 하나였던 치과전문의 제도가 치과계의 합의와 정부, 정치권의 결단으로 시행이 되게 되었다. 이로써 그간 법적으로 인정 받지 못하던 많은 전문과목 수련이 공식화 되었고, 대국민 홍보 차원에서도 치과계가 다양한 영역의 학문을 다루고 있음을 비로소 알릴 수 있게 되었다. 치과 전문의제도 시행 이전에 수련을 받았던 사람들도 경과규정으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게 되었고, 전문의 제도 시행 이전 수련을 받지 않았던 사람들도 정부의 관리 하에 소정의 교육을 받고 난 후 응시자격을 부여받아 통합치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현재 활동하고 있는 치과의사 면허 부여자의 과반수에 이르는 15861명(2023.1.10. 현재)의 치과의사들이 전문의 취득을 한 상태이고 바야흐로 치과계도 의과와 마찬가지로 다수 전문의 시대가 되었다. 의과에서도 늘 지적되어 오는 문제이긴 하지만 일반의 보다 전문의가 과잉인 의료체계가 국민보건의 질 향상에 늘 유리한 것은 아니다. 치과계는 아직까지 전문의를 표방하는 치과의원의 숫자가 적고 근본적으로 진료영역이 의과보다 많이 제한적인 관계로 전문의 간의 구별이 크지 않아 당분간 치과전문의 표방이
새해 첫날 나는 아내와 첫째만 데리고 내장산에 갔다. 고2 올라가는 딸아이가 갑자기 산에 가고 싶다고 해서 지난 단풍 시즌에 찾았던 이곳을 다시 찾게 되었다. 온통 눈으로 덮인 설산의 운치가 단풍 산과는 또 다른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눈 덮인 겨울 산에 오르니 신선하고 차가운 공기가 마음을 맑게 해 주었다. 한편, 올해 세계 경제 전망은 맑지 않다. 여러 경제 전문 기관의 보고에서도 거의 모든 경제 관련 지표들이 부정적이다. 미국 국립경제연구소(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는 2023년 1~2분기 미국 경제는 침체의 바닥을 짚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아서 미국 경기에 1, 2분기 정도 후행한다면, 우리 경기는 하반기에 바닥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대 러시아 경제 제재의 여파가 올해에도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며, 이들의 전쟁은 자유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대립으로 이어져 ‘신냉전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고 혹자는 말한다. 바야흐로 세계 경제 전체는 현대판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는 어떤 지혜를 가지고 올해를 맞이해야 할까 생각해본다
작년 11월에 약간 큰 규모의 과제를 도전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진행하는 과제들도 많이 버거운 상황인데다가, 신규과제를 준비할 시간도 많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이런 고민을 하였습니다. 조금 적당히 하면 어떨까? 여기서 뭔가 더 해야 될까? 여기서 만족하고 멈추는 것은 안될까?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은 욕망이었습니다. 능력이 부족해도 더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실패해도 도전하고 싶다는 결정으로 이끌게 되었습니다. 결국 2차 발표까지 하였지만 최종 선정되지 못했습니다. 그 주에 잠을 줄여가며 밤을 새는 경험을 하고, 아주 탁월하게 완성도를 최대로 올리지는 못했지만, 한계 내에서 할 수 있는 정도로 열심히 한 것(최선이라는 말은 제가 쓰기가 꺼려집니다) 자체에 상당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12월에도 제가 창업한 법인의 대표로 창업경진대회 발표도 하였습니다. 사실 이런 것에 도전하겠다고 하면 이후에 시간을 많이 쓰게 됩니다. 게다가 해외 출장도 있어서 정신이 없었지만, 안 하였을 때의 후회가 더 클 것 같아서 도전을 역시 해보았습니다. 물론 수상 과제 순위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제 새해 1월이 되면서 그동안 한 연구과제들의 보고서 제출 기한들이 다
2016년 군의관을 마치고 전인성 원장님의 강의 faculty로 입문하여, 2017년부터 시작된 나의 강의 인생은 이제 횟수로 6년차가 되었다. 강의를 막 시작했을 즈음에는 겨우 두 달에 한 번 정도의 느슨한 강의 스케줄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모든 여가 시간은 강의 준비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이후 시작된 첫 해외에서의 강의로 인한 언어적인 문제와 함께, ‘suture’ 라는 새로운 주제의 강의 준비는 더욱 나의 정신을 빼놓았다. 강의의 구성, 스토리, 시간 배분, 실습 시간 배분 및 구성, 도안 완성도, 증례 완성도 및 관찰 기간 등 내용에 관한 부분과 표정, 어투, 몸짓, 목소리 톤 등의 전달에 관한 부분 등 처음 1~2년은 정말 부족한 것으로 가득했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앞서 언급된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겪은 하나의 에피소드를 통해 나에게 가장 부족하면서 또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찾게 되었고 이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이 에피소드는 ‘골프’와 관련된 이야기다. 나에게 골프란 진료와 진료를 위한 출·퇴근시간, 강의와 강의 준비 시간을 제외하고 남은 시간을 처절하게 쪼개서 연습하고 라운딩을 해야하는 따라서 하기도 힘들고 잘하기는 더
상나라의 제후국이었던 주나라의 무왕이 상나라 주왕을 멸하자,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형제는 신하가 어찌 천자를 토벌할 수 있느냐며 주나라의 곡기를 거부하고, 수양산에 숨어 고사리를 캐어먹고 지내다 굶어 죽습니다. 대의명분을 지키기 위해 죽음과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김상헌과 살아야 대의명분도 지킬 수 있다는 최명길의 주장은 왕실과 종묘사직을 보존하기 위한 방책으로 척화와 주화라는 선택하기 어려운 대립관계를 이룹니다. 그사이 조선 땅과 수십만 민초들은 유린당하고 먼 이국땅으로 끌려갔습니다. 신군부에 대항하는 민주화 투쟁은 서울을 시작으로 대구에서 그 열기를 더하고, 5월 광주에서 정점으로 타올라 탱크와 헬기 기총 사격 앞에서도 끝까지 당당하고 담담하게 자유를 외쳤습니다. 신념을 환산 가능한 가격(價格)으로 매길 수 있을까요? 가치(價値)라고 하는 모호한 개념으로 정의하면 더 고상해지는 것일까요? 신념의 값을 매기고 가치 판단을 하는 최우선 기준은 민초여야 하고, 조직 내 회원이어야 합니다. 단단함이 없는 신념은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선전하여도 가치 환산은 고사하고, 제 주장하는 가격대로는 절대로 쳐주지도 않습니다. 불법도 너의 이득을 위해 펼쳤다는 허황된
2022년 한 해가 저물었다. 올해도 치과계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여러 난제들이 얽히고 설켜가며 힘든 시공이 닥쳐올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집행부가 들어서자마자 가장 괴롭혔던 문제는 아마도 정부의 ‘비급여 진료비 보고’ 제도 시행일 것이다. 내부 분열까지 일어나게 했던 정부의 강한 드라이브는 대책을 강구하는 과정 속에서 내부 갈등도 있었지만 현재는 한목소리로 투쟁 중에 있다. 그러나 필자는 사실 이러한 치과계의 현안보다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보여주고 있는 치과계 내부의 문제가 매우 심각하고 상당히 병들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나가면서 의료복지에 대한 문제 때문에 정부 당국의 정책과 부딪쳐온 일은 다반사였다. 이번 집행부만의 일도 아니고 매 집행부마다 새로운 도전이 다가왔고 이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 각 집행부 임직원들은 헌신적으로 노력했었다. 그 당시에는 옆에서 보면 집행부가 마땅치 않고 일을 못하는 것 같고 한심해 보여도 지나고 보면 그 어느 집행부도 자신의 임기 중에 맞닥뜨린 현안에 대해 피하거나 도망가는 일 없이 정말 헌신적으로 노력하며 해결해 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과정 속에 해법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는
독일 육군 만슈타인 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 회고록 <잃어버린 승리>에서 “소위로 참전하여 1942년 전사한 나의 아들 게로와 조국을 위하여 전사한 독일 병사들을 위해 나는 이 책을 썼다”라고 징병군인들에 대한 헌사(獻辭)를 적고 있습니다. 롬멜 장군은 1937년 출판한 보병 전술 <Infantry Attack> 서문에 “유럽 동서남북 어디를 가나 조국을 위하여 전사한 독일병사들의 무덤을 볼 수가 있다. 전사한 병사들은 조국이 또 위기에 처할 때는 언제나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켜달라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다.”라고 징병군인들에 대한 헌사(獻辭)를 적고 있습니다. 호사카 작가가 저술한 <쇼와 육군>을 보면, 2차 세계대전 전후, 일본 육군의 첫 번째 병폐는 “전쟁을 일으키고 패전한 것에 대한 책임을 아무도 안 졌다”이고 일본 쇼와 육군의 두 번째 병폐는 “직업군인들이 징병군인들을 전투의 주체가 아니고 소모품으로 여겼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 6·25 징비록 서문을 보면 “전쟁을 이끌었던 일선의 직업군인 장군들이 문제였다. 먼저 등을 보이며 달아났던 자치관도 많았다. 긴장하면서 전투 채비에 나섰어야 할 직업군인
치협 제32대 집행부는 회원들을 위한 ‘민생 회무’를 모든 정책 추진의 첫 번째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이에 본지는 각 회무를 현장에서 이끌어가는 집행부 임원들이 직접 기고하는 형식의 ‘치협 정책 핵심 체크’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열린 지면을 통해 치협 임원과 독자들이 소통의 폭을 넓히고, 나아가 치과계 현안 추진을 위한 중지를 담을 해당 기고에 많은 관심과 성원 당부드립니다.<편집자 주> 제32대 대한치과의사협회 정보통신이사로 임명되어 맡은 회무를 하면서 많은 일들을 정신없이 처리하다보니, 1년 조금 더 넘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버린 듯합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정보통신이사로서 해왔던 업무들을 되새겨보니 아쉬움도 많습니다만, 초임 이사의 서투름 속에서도 열심히 일궈낸 성과도 제법 있는 듯 해서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임기를 마무리하기 전에 정보통신위원회에서 진행했던 업무들과 부족한 점들을 정리해보고 있습니다. 마무리가 안되었거나, 부족한 점은 후임 위원회에서 계속 연속성을 가지고 추진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기 때문입니다. 지난 1년여의 시간 동안 대한치과의사협회 회무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 시켰고, 구인구직시스템활성화TF 간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노화(aging)와 노쇠(frailty)는 다르다. 노화는 세월에 따른 생물학적 구조와 기능이 자연적으로 감퇴되는 상태로 예방할 수 없다. 반면에 노쇠는 노화는 물론 영양섭취 및 신체활동 감소, 각종 질병 등에 의해 체력, 지구력 및 생리적 기능이 저하되어 취약(weakness)해진 상태로 예방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걷다가 넘어지는 것이 노화라면 앉았다가 일어설 때 주저앉게 되면 노쇠라고 할 수 있다. 노인의학에서는 뇌쇠를 노인증후군의 하나이자 장애 전단계로 본다. 노쇠한 사람은 낙상과 골절 등 신체장애와 인지장애 발생률이 높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음은 노쇠 예방을 위한 7개 수칙이다 - 회복 탄력성, 구강건강, 다양한 식이, 금연, 만성질환 관리, 사회참여, 신체활동. 이에 필자는 노쇠 예방 7개 수칙을 구강건강 중심으로 풀어보면서 한국형 “구강노쇠” 도입 및 관리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고자 한다. # 자립적 노년기 : 적절한 잔존 치아 유지 중요 일본 ‘8020 운동’은 80세에도 자신의 치아를 20개 이상 갖고자 하자는 캠페인이다. 이는 ‘20개 이상의 치아를 가진 노인’은 먹는 것과 영양 섭취에 어려움이 없고,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안녕하세요. 치의신보 독자 여러분. 치과의사 이은욱입니다. 뒤를 돌아보니, 2020년 4월에 첫 수필 기고를 시작하고 2년간 글을 썼네요. 타 치과신문지에서 연재한 4컷 만화까지 포함하면 나름 꽤 오랜 시간 신문에 무언가를 올려왔습니다. 치전원 학생 시절부터 공보의를 거쳐 페이닥터까지 저의 생각과 일상을 올렸습니다. 힘든 점도 많았지만, 즐거운 점이 더 많기에 그동안 글을 꾸준히 연재했던 것 같습니다. 우선 힘든 점이란... 창작의 고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좋았던 점이라고 한다면... 열심히 머리 굴려 가며 썼던 나의 글들을 나중에 다시 보면 참 좋았습니다. 오글거려 못 보는 글들도 있긴 하지만요. 내가 했던 생각이 인터넷에 남아있다는 사실에, 지구 어딘가 절대 변하지 않는 고향이 남아있는 듯한 위안을 받기도 합니다. 또, 제 글을 보고 지인 혹은 신문을 통해 연락 온 독자님에게도 참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많이 부족한 저의 생각에 공감해주시고, 또 같이 고민해주셨던 게 좋았습니다. 지인들의 소소한 응원도 좋았구요. 무언가를 꾸준히 창작하는 것은 생각보다 참 어려운 일인 듯 합니다. 제게 음악을 꾸준히 할 수 없었던 것은 열정이 문제였지만, 글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