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의 지옥을 연상케 하는 현실을 착잡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문득 땅으로 시선을 돌리면 저마다의 모습으로 돋아나는 새싹들이 신령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사철가의 한 대목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봄은 찾아 왔건마는 세상에 쓸쓸하더라.” 어제의 청춘이 오늘은 백발로 변해 버린 세월의 덧없음이 이 노래꾼을 쓸쓸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느끼는 쓸쓸함의 성격은 조금 다르다. 덧없는 세월이 아니라 덧거친 세상이 우리를 휘어잡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쓸쓸함이다.거리를 걷는 이들의 얼굴에는 우리 시대의 풍경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함석헌 선생은 거리를 걷는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탄식을 터뜨린다. “참 고운 얼굴이 없어?/하나도 없단 말이냐?/그 얼굴만 보면 세상을 잊고/그 얼굴만 보면 나를 잊고/시간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고/밥을 먹었는지 아니 먹었는지 모르는 얼굴/그 얼굴만 대하면 키가 하늘에 닿는 듯하고/그 얼굴만 대하면 가슴이 큰 바다 같아/남을 위해 주고 싶은 맘 파도처럼 일어나고,/가슴이 그저 시원한/그저 마주앉아 바라만 보고 싶은/참 아름다운 얼굴은 없단 말이냐?”(시 얼굴 중에서) 우리가
2015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자기가 살아온 시대의 기록자를 자처하고 있다. 그는 거대한 역사의 물결 속으로 흘러가버린, 그러나 그 속에서 살아온 이들의 삶 속에 무늬처럼 남겨진 자취들을 채집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세컨드핸드 타임’은 소비에트 시절을 거쳐온 이들의 속살을 드러내 보여준다. 작가는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을 호모 소비에티쿠스라고 명명하면서 그들을 사로잡고 있던 열정은 무엇이었고 그 열정이 사라진 후에 도래한 삶의 실상은 무엇이었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스베틀라나는 소설의 들머리 격인 ‘어느 가담자의 수기’에서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고 말한다. “아버지들은 자유란 공포가 부재할 때를 말하며, 쿠데타 세력을 제압했던 8월 중의 3일이 그 자유에 해당한다고 대답했다. 또 식료품 가게에서 백 가지 종류의 햄 중 하나를 고르는 사람이 열 가지 햄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사람보다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했다. 얻어맞지 않고 사는 것이 자유지만 얻어맞지 않고 사는 세대는 죽을 때까지 보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세컨드핸드 타임, 김하은 옮김, 이야기가 있는집, 20
모처럼 가족들이 모여도 할 말이 별로 없다. 살아가는 삶의 현장과 관심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의례적인 안부를 묻고는 입을 꾹 다문다. 그러다가 누구 입에서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오면 대화는 돌연 활기를 띤다. 대개 실수담이지만 지나간 일이기에 다들 유쾌하게 그날을 떠올린다. 당사자는 전혀 기억에 없는데 다른 이들이 소상히 기억하는 경우도 있고, 서로 상충되는 기억도 있다.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기억의 편린들을 모아보면 사건의 전말이 재구성된다. 그런 이야기 속을 헤매다 보면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가족이란 핏줄을 나눈 사람이기도 하지만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떤 이들에게 과거는 지긋지긋해서 다시는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시간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언제라도 돌아가 쉴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다.아이들은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드는 이야기들은 인생의 내용이 된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삶의 ‘저자’(author)이다. 어떤 이는 그래서 ‘원본’으로 태어나 ‘복사본’으로 살아가는 것을 타락이라 일렀다. 인생의 황혼기를 지나고 있는 어른들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달라 청하면 별다른 게 없다고
칠십대 초중반의 사내들 넷이 모이니 차 안이 시끌벅적했다. 모처럼의 나들이가 흥겨웠기 때문일까. 평소에 과묵하던 그들은 어린아이들처럼 들떠 있었다. 비슷한 또래가 모이니 자연스레 대화의 태반은 지나온 세월을 반추하는 데 할애되었다. 같은 마을에 살았던 그들의 이야기는 해방 전후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숨가쁘게 살아가는 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던 유년시절이 호출되자, 마치 잿더미 속에서 불씨를 찾아내듯이 그들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가난하고 힘겨웠던 시기였지만 그리움으로 상기되니 정채(精彩)를 띠게 되었다.누가 오정포(午正砲, 낮 열 두 시를 알리기 위해 쏘던 포)를 쏘던 장소를 떠올리면, 다른 이는 그 옆에 있던 지금은 숙명여자대학교에 편입된 군부대 막사를 떠올리고. 누가 효창공원으로 피난을 갔던 이야기를 꺼내면 다른 이는 B29 폭격기가 용산역을 폭격해 객차가 하늘로 떠오르던 이야기로 받고, 언덕 꼭대기에서부터 비닐 포대를 타고 눈길을 재우쳐 내리닫던 이야기가 이어졌다. 한 사람이 재강(술찌끼)을 먹고 취해 비틀거렸던 경험을 이야기하면 다른 이들은 녹두국물을 얻어먹곤 했던 어느 공장을 떠올렸다. 녹두국물 이야기는 다꽝(단무지) 공장 이야기로, 원효로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그들이 이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시편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압도적인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속수무책이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도와줄 이 하나 없는 암담한 상황이다. 그렇기에 선원들은 하늘을 바라본다. 시인은 바람과 물결에 시달리던 선원들이 고통 속에서 부르짖자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라고 노래한다. 이 구절을 반복하여 읽으며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은 현실 속에서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일렁이는 바다 물결 속에서 속절없이 죽어간 이들이 떠오른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 그리고 내전에 가까운 상황에 내몰려 자유의 새 땅에 당도할 희망을 품고 리비아 해안을 떠났던 700여 명의 아프리카 난민들 말이다. 희망의 여정은 죽음으로의 항해가 되었다. 도움은 어디에서도 오지 않았다. 검푸른 바닷물결 속에서 기적같은 도움을 기다렸던 사람들의 절망을 떠올리니 숨이 막힌다. 절망의 바다는
한밤중에 무지근한 어깨 통증으로 인해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잠들기 어렵다. 어깨를 주물러도 보고 자세를 바꿔보기도 하지만 통증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곁님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밖으로 나와 몸을 풀어보기도 한다. 브래태니커 백과사전은 통증을 “조직에 생긴 손상과 관련된 불쾌한 느낌”이라고 정의하는 한편 통증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해로운 물질로부터 물러나게 해서 생물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한편 환자에게는 치유과정에 필요한 휴식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휴식을 보장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가끔 병원에 입원한 이들에게 위로의 말이랍시고 “지금까지 쉼없이 달려왔으니 강제로 부과된 이 휴식 시간을 통해 깊어지시라”고 말하기도 한다.고통 혹은 통증을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한센병 환자였던 시인 한하운이다. 그는 나병 확진을 받고 소록도를 향해 걸어가던 자기 경험을 ‘全羅道길’이라는 시에 담았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숨막히는 더위뿐이라/낯선 친구 만나면/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붉은 황토길은 아득하고 암담한 시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숨막히는 더위는 중의적이다. 날씨가 덥다는 뜻도 있지만, 벗어던질 수 없는 구속복에 채워진
벨쿠르(Bellecour) 광장은 프랑스 제3의 도시라는 리옹의 중심이었다. 론강 옆에 있는 이 광장은 그동안 유럽에서 만난 광장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아니었나 싶다. 광장 한 복판에는 태양왕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던 루이 14세의 기마상이 우뚝 서 있다. 주말이 되어 많은 젊은이들이 광장에 나와 있었다. ‘거리 농구’ 시합에 나선 건강하고 건장한 청년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는 일이 참 즐거웠다. 하지만 내가 리옹을 떠나기 전 마지막 일정으로 이 광장을 찾은 것은 ‘어린왕자’의 작가인 생텍쥐페리와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리옹에서 태어나 9살까지 살았다. 리옹 시는 그를 기념하기 위해 그가 태어난 집 앞 거리를 생텍쥐페리가로 명명했다. 생텍쥐페리가 8번지가 그가 태어난 곳이다. 그의 집 앞에 작은 동상이 하나 서 있다고 해서 살펴보는 데 아무리 보아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도 대개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지도를 들고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았는지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자기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는지 물었다. 생텍쥐페리의 동상을 찾는다 했더니 그는 성큼 성큼 앞서가며 따라오라고 했다. 동상이 작아서 자칫하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면서.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