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년고도 경주는 유적지 가득한 시내를 벗어난 동쪽 해안에도 고대국가의 흔적이 적지 않다. 경주 봉길해변 앞바다의 대왕암이 삼국통일을 이뤄 남북국시대를 연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이고, 그 부근에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감은사지가 있다. 그곳에는 한국 석탑사에 기념비적 작품으로 칭송되는 감은사지 삼층석탑이 쌍탑으로 웅장하다. 또한 감은사지에서 바다 쪽으로 나가면 죽어 용왕이된 문무왕과 김유신이 보내준 만파식적을 건네받았다는 이견대 정자가 자리하며 ‘경주바다 전설의 트라이앵글’을 완성한다. 이번에 소개할 길은 전설의 트라이앵글 지역에서 남쪽으로 5km떨어진 읍천항을 출발점으로 하는 경주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이다. 이 길은 경주지역에서 동해안 드라이브를 즐길 때 앞서 열거한 세 곳의 유적지와 함께 반드시 차를 세우고 두발로 걸어봐야 할 곳이다. 걷는 거리는 편도 2km이고, 갔던 길을 되짚어와도 왕복 4km 정도로 결코 길지 않지만 느낌이 매우 강렬한 명품길이다. 부채꼴 주상절리로 화룡점정 찍는 국가지질공원 2017년 8월 환경부 지정 국가지질공원에 이름을 올린 이곳에는 인류가 나타나기 한참 전인 신생대 3기(약 2천만년 전)에 형성된 주상
기원 전후부터 6세기 중반까지 5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가야는 여러 부족국가가 연대를 이루던 연맹체입니다. 우수한 제철기술을 바탕으로 중국-한반도-왜를 잇는 동아시아 국제교류의 구심점이 되었지만 중앙집권국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시대를 신라, 백제, 고구려의 삼국시대라고 역사교과서에 기술했고, 가야사는 대폭 축소하고 있습니다. 세계사에서는 도시국가 연맹체도 여러 국가형태의 하나로 인정합니다. 그래서 가야도 당당히 국가반열에 올려 당시를 사국시대라고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최근 힘을 얻고 있습니다. 최근 수십 년 간 가야유적을 대상으로 한 고고학적 발굴성과를 통해 가야는 매우 우수한 문명을 가졌던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가야의 유적은 낙동강과 섬진강을 중심으로 경남, 경북, 전북 일부 지역까지 넓게 분포하는데, 그중에서 중요도와 이동 편의성을 고려한 답사 핵심지역 5곳을 소개합니다. 기사제목인 ‘가야, 그 끝나지 않은 신화’는 합천박물관 조원영 관장의 저서 제목으로 취재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음을 밝힙니다. 아래 일정을 모두 소화한다면 2박3일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각 나라 이름 중 괄호 안의 명칭은 역사가들이 후대에 만든 것으로 이 기사에서는 여러 연구를
중국 귀주성은 단하지모(丹霞地貌)라는 독특한 단층지대로 광범위한 지역이 세계자연유산에 올랐습니다. 흔히 단샤(Danxia)라고 불리는 이 지질형태는 붉은 사암층이 매우 두텁게 융기한 것인데요, 사암층이 오랜 세월의 침식과 풍화작용을 거치며 붉은 커튼 드리우듯 거대한 절벽지형을 이룬답니다. 단샤지형이 귀주성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붉은 사암층이 협곡을 이루며 웅장한 폭포와 그림 같은 절경을 펼쳐내는 곳은 귀주성에서도 적수시(赤水市)가 으뜸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이번 여행기의 뒷마무리는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적수시의 폭포 트래킹입니다. 적수대폭포 스트레스 녹이는 초거대 미스트 적수대폭포는 폭 60m에 높이가 76m나 되는 위용을 자랑합니다. 붉은 단샤지형에서 흘러내리는 폭포의 스케일이 대단하지만 제가 이곳을 좋아하는 것은 그곳까지 걸어가는 단샤지형 협곡 산책로가 인상적이어서입니다. 잘 정비된 계곡 산책로가 대체로 그렇듯 걷기는 매우 편합니다. 천천히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데, 한 굽이 돌아갈 때마다 숨 멎을 듯한 붉은 기암절벽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올라 수묵화에서나 보던 선경(仙境)을 재현합니다. 적수대폭포 가는 중간의 소폭포도 꽤나
여행은 쉼표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소개하는 두 곳은 쉼표 꾹 눌러찍고 쉬어가기 좋은 중국 귀주성(貴州省)의 오래된 강마을들입니다. 이 마을들은 토성고진과 병안고진이라고 불립니다. 고진이란 오래된 마을을 뜻하는 중국식 표기이죠. 둘 다 2천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가진 곳들인데요,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물론 중국에서도 아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하네요. 오지라고 하기에는 둘 다 교통이 좋고, 한 곳은 국가에서 규모 있게 관광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기도 합니다. 곳곳에 개발이 이뤄지고 있지만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서인지 오랜 삶의 방식을 건드리지는 않더군요. 오래된 것들은 특별히 멋 부리지 않아도 좋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 모양입니다. 토성고진 다녀온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토성고진- 타철화(打鐵花)에 혼비백산하며 깔깔깔! 한국에 알리고 싶은 명소들이 있다는 연락을 중국 귀주성 적수시(赤水市)관광한국사무소에서 지난 달 받았습니다. 중국은 버스로 5시간 이상 움직이는 일이 다반사여서 버스 이동시간을 물었더니 중경공항에서 적수시로 3시간 이동하는 게 가장 긴 이동이라고 하네요. 곧바로 네 명의 답사팀을 꾸려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오제국립공원의 물과 공기와 하늘 그리고 식생들은 인간의 삶이 다양하듯 제각각이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다가가면 마음을 조이던 세상의 끈을 헐겁게 풀어내는 자연의 신비로움으로 하나가 된다. 100% 힐링의 강력한 예감을 품은 오제습원의 길은 이 모든 것이 버무려져 걷는 이들을 치유한다. 일본의 모든 길을 필자가 걸어본 것은 아니지만 걷는 내내 압도적인 풍광으로 걷는 이들을 놀라게 만드는 트레일로 오제국립공원만한 곳을 아직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 태백산 정상 정도 높이에 조성된 오제국립공원은 산악지형이 아닌 축축한 습지 고원지대다. 오제 습지의 물이 모이는 오제누마 호수와 그 언저리로 펼쳐지는 해발 1400~1500m 고원습지는 무려 1억 평(3만7천2백 ㏊)에 달하는 광활한 면적에 뻥 뚫린 경관을 만들어낸다. 이 습지 위에 나무판자를 덧대고 이어서 만든 목도 70㎞가 오제국립공원을 트래킹 낙원으로 만들었다. 오제국립공원은 2005년 국제습지조약인 람사르조약에 의해 보존습지가 되었고, 2007년 인근의 산들을 편입시켜 일본에서는 29번째 국립공원으로 공식 지정되었다. 5 개월만 문을 여는 100% 힐링 트레일 철따라 기화이초가 피어나는 오제국립공원에서는 중요 분기
최근 들어 한국 걷기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 걷기여행 코스로 규슈 올레가 첫 손에 꼽힌다. 2012년 규슈 올레 4개 코스를 개장한 이래 해마다 한국인 걷기여행 방문자가 50%씩 급성장하면서 연간 5만 명 이상의 한국 걷기여행자들이 규슈 올레를 걷는 것으로 조사된다. 그 인기를 반영하듯 인터넷 검색을 하면 규슈 올레 여행상품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규슈 올레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사)제주올레와 규슈지역의 자치관광단체인 일본규슈관광추진기구의 협약으로 2012년부터 전개된 걷기여행길이다. 제주 올레에서 단순히 브랜드만 빌려준 것이 아니라 노선 선정과 개발부터 노면정비, 안내시스템, 운영관리 등의 전반적인 노하우를 전수했다. 그 덕에 제주 올레에 익숙한 한국 걷기여행자들에게 매우 친숙한 길이 되었다. 실제 규슈 올레 걷는 사람은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더 많은 기현상을 보인다. 최근 1~2년 새 일본 내국인 방문자도 크게 증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대문명이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이어졌듯 일본의 걷기여행 문화도 그렇게 전수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제주 곳곳을 걸어서 여행하며 제주의 순진한 민낯을 마주할 수 있었던 제주 올레처럼 규슈 올레
걷는 길은 인간의 역사와 대동소이하게 시작되어 함께 진화했다. 찻길로 대표되는 현대적 개념의 교통로가 있기 전에 두 다리로 전국을 거미줄처럼 네트워킹한 보행 교통로가 있었다. 우리가 지금 이용하는 찻길도 이러한 옛길을 기반으로 닦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옛길로는 조선 6대로를 꼽는다. 조선6대로는 수도 한양을 중심으로 부산 동래를 잇는 영남대로, 해남을 통해 뱃길로 제주까지 이어지던 삼남대로, 동해안 영해를 잇는 관동대로 등이 있다. 일본도 이러한 옛 도보교통로가 전국적으로 이어진다. 오늘 소개하는 나카센토(中山道)는 우리로 치면 영남대로에 해당되는 가장 중요한 옛 교통로로, 현재의 수도인 도쿄와 지난 시간에 소개한 교토를 동서 간으로 잇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뒤를 이어 일본을 평정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지금의 도쿄인 에도에 실질적인 국가통치기구인 막부를 세우면서 에도를 중심으로 한 전국 도보교통망을 새롭게 정비했다. 당시 정비된 교통로 중에는 도쿄를 중심으로 전국을 잇는 5대 간선도로(五街·오가도)가 대표적인데, 그중 나카센토는 물동량이 가장 많았다. # 지역균형 발전을 불러온 참근교대제의 주역 17세기 초 도쿠가와 막부는 지역 다이묘(영주
일본 문화의 진수가 집대성된 교토(京都). 이곳은 794년 당시 동서 4.5km, 남북 5.3km로 계획된 정방형 도시였다. 지금도 사찰 1600개가 있고, 신사 400여개가 남아 있어 도시 전체가 거대한 문화유산처럼 존재한다. 17세기 이후로는 별다른 외침을 받지 않았기에 수백 년 된 목조건물과 유산이 즐비하다. 1년에 교토를 찾는 관광객은 무려 5천만 명. 교토 면적에 비례해보면 세계 최고수준이다. 교토를 여행하는 여러 방법 중에 걷기를 추천하는 이유는 다양한 관광자원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밀집한 교토의 특성이 걷기여행에 매우 적합하기 때문이다. 현지 교토전문가들이 추천하는 교토걷기여행 대표루트는 20여개 정도인데 선호도와 접근성 면에서 2개 루트를 추천하여 소개한다. ▶루트 1 삼십삼간당교토국립박물관 이총 청수사 야사카신사 총 거리 약 6km, 소요시간 약 5시간 (관람 및 휴식시간 포함) 첫 번째 루트는 교토역에서 동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삼십삼간당(산쥬산겐도·三十三間堂 蓮華王院)’에서 시작한다. 1165년 고시라카와 상왕이 발원한 삼십삼간당은 한국인에게 덜 알려진 곳이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청수사, 금각사와 더불어 교토 관광의 빅3로 불릴 만큼
“아, 정말 좋다!” 초이시미찌(町石道)를 걷는 동호인들의 얼굴에 내내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불교순례길이라고 하여 조금은 따분할 줄 알았는데, 첩첩 산중에 이토록 오롯한 흙길이 놓여 있다는 것이 믿기질 않는다는 눈치다. 일본 와카야마현의 불교순례길인 쵸이시미찌는 그렇게 누구라도 만족할 만한 아름다운 길이다. 쵸이시미찌는 우리나라로 치면 원효대사 정도의 신망을 받는 고보대사 쿠카이(弘法大師, 空海 774~835)가 해발 800m 산중에 만든 불교도시를 산 아랫마을과 잇는 길이다. 이 산중 불교도시의 이름이 고야산(高野山)인데, 서기 810년 개창된 이래 천년 넘게 여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금했다. 그런 연유로 비구니였던 고보대사의 어머니마저 고야산에 들지 못하고, 산 아래에서 수행을 하였단다. 이때 고보대사가 산 아래의 어머니를 한 달에 여덟 번씩 찾아서 안부를 물었는데, 그때 오가던 길이 지금의 초이시미찌 20km가 된 것이다. 천 년 전의 안부통신망이 순례길이 되고 순례길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경우는 전 세계에 두 곳이다. 그중 한곳이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고, 다른 하나가 일본 와카야마현에 있는 ‘기이산지와 영지의 참배길’인데, 그중 하나가 초이시미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