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치과계를 뒤흔든 ‘T치과’ 사태가 발생하면서 일부 치과의사의 지나친 상혼을 경계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동시에 전문직 윤리에 대한 중요성이 조명되고 있다.
특히 T치과를 강남권 최대의 교정치과로 성장하게 한 특유의 마케팅 기법이 치과계에 회자되면서, 의료행위와 상행위의 구분선이 희미해지는 현상에 대한 고찰 역시 치과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 Carr의 명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역사는 커다란 반복의 굴레이며, 현실의 해결책을 찾는 재료가 될 수 있다. 치의학의 역사 역시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들과 이익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길항이 이어져 왔으며, 그 와중에 걸출한 ‘치과 사기꾼’들이 등장해 시대를 풍미하기도 했다.
# 마차 치과에서 대형 빌딩으로
18세기 프랑스 파리에는 ‘위대한 토마스(Grand Thomas)’가 있었다. 루브르와 시테 섬 근처인 퐁뇌프(Pont Neuf)에 ‘치과가게’를 차린 토마스는 아주 얕은 수로 환자들을 홀리는 사기꾼이었다. 치과의사의 아버지 피에르 포샤르는 그의 사기 행각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미리 닭이나 혹은 다른 동물의 피를 묻힌 고운 가죽으로 치아를 싸서 손에 들고 있다가 미리 돈을 받은 가짜 환자가 등장하면 숨겨 두었던 치아를 가짜 환자의 입속에 넣어둔다. 그 다음 치아를 손으로 건드리기만 하거나 칼끝이나 지푸라기 같은 것으로 동작을 취한다. 가짜 환자의 귀에 종을 울리면 환자는 입안에 있는 것을 뱉는다. 만약 군중 속에서 의심하는 자가 자기 치아를 뽑아달라고 하면 ‘눈과 연결되어 있는 송곳니이니 빼면 실명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고는 했다.”
코웃음을 칠만한 얕은 수가 화려한 연기와 군중심리를 만나면 훌륭한 마케팅이 된다. 토마스는 이런 방식으로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치과 업자가 됐고, 이에 힘입어 성병을 치료하는 약물이라는 Orvientan도 불티나게 팔아치웠다.
사상 최초의 치과대학이 문을 연 나라 미국으로 넘어가보자. 1840년 세계 최초의 치과대학인 볼티모어 치과대학(Baltimore College of Dental Surgery)이 설립되고, 치의학 교육이 체계를 잡아가기 시작하면서 많은 치과의사가 배출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안에는 사이비도 있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치과 마케터 페인리스 파커(Painless Parker)도 그 시대를 풍미한 사이비 치과의사다.
그는 필라델피아 치과대학 졸업생으로 뉴욕의 길거리 치과의사였는데,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이색적인 마케팅으로 장삼이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는 애초부터 “나는 치과의사이면서 동시에 세일즈맨이 되기를 원한다”라고 선언하고, 말이 끌고 나팔수들이 동원되는 길거리 치과를 개원했다. 본격적으로 큰 건물에 입주하고, 다른 치과의사들을 고용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사업은 확대일로를 걷는다. 그의 체인에 환자로 몰래 내원한 올드스타인이라는 치과의사의 증언은 이렇다.
“여러 가지 질문에 답하라고 했는데, 아마 내 계좌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려는 심산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입 속으로 피 묻은 치경이 들어오기 직전이었다. 2분 여 동안 검사를 하더니 골드캡 4개, 금과 은으로 수복할 곳이 8개라고 하면서 총 30달러라고 하였다. 선불로 돈을 내면 그 날이 마침 바겐세일이라서 당일에 다 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사실 당시 내 입안은 전혀 치과치료를 할 필요가 없는 상태였다. 그게 그들의 임상 운영 방식이었다. 그런 식으로 해서 무고한 대중을 속이고 있었다.”
놀라울 정도의 기시감이다. 천생 장사꾼이었던 파커는 공명심 또한 강해서 하루에 357개나 발치했다고 자랑을 하고, 그것을 목걸이로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기도 했다. 상업주의가 휘젓고 다닌 당시 치과계에 대한 우려감 역시 고조돼서 홀리오크시의 맥스필드라는 치과의사는 이렇게 개탄하기도 했다.
“시대의 조류가 상업주의로 흐르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치과의 이상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다. 그 대신 ‘우리가 얼마나 벌게 될까?’라는 질문만 던졌다.”
세계 최초의 치대인 볼티모어 치과대학의 초대 학장 채핀 해리스는 첫 졸업생들을 위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치과 개원의가 되기 위해서는 해부학, 생리학, 외과학, 병리학 그리고 치료학을 함께 배워야 하며 그러한 이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유용함과 그에 따른 외부의 존경심이 커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소명에 열성적으로 헌신한다면 곧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할 것이며, 자신이 세상에 큰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사실이 주는 만족감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19세기 중엽 외과학의 영역에서 분리돼 처음으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한 치의학이 처음부터 추구한 것도 ‘소명에의 헌신’이라는 말로 압축된다.
(참조 도서 : 전문직 치과의사로의 긴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