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이 아직 다 지나가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비대면 진료를 추진한다는 의견을 강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치과는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으니 무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같은 의료인으로서 어떤 견해를 가져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익명
코로나19가 가장 강하게 환기한 것은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말일 겁니다. 이것이 집단의 모임을 금지하고 밀접 접촉이 예상되는 업종의 제한을 두며 업무 장소에서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는 정책으로 나타나거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다른 사람을 면대면으로 만나는 것을 피하는 문화로 나타나며 각자에게 지니는 의미는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요약하면, 코로나19의 문화적 의미란 “거리를 두라”라는 명령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처음 원격 의료라는 표현이 등장했던 것은 20세기 중반 미군의 해외 파병이 확대되면서였습니다. 군의관이 있었지만, 원격지에서의 의료적 필요를 군의관이 전부 감당할 수는 없자 원격지에 있는 의사와 전화로 환자의 상태를 상의한 것이 최초의 원격 의료였지요.
흔히 원격 의료라고 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모습, 즉 의료인과 환자가 화상 통신으로 진료를 하는 것은 1959년 네브래스카 정신병원에서 양방향 상호작용 텔레비전을 사용한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원격 의료 논의는 특정 지역에서 특정 의료 서비스의 환자 접근성이 제한되는 경우에 이뤄졌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즉, 원격 의료란 일반 의료 행위 전반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경우에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대체, 보완의 형식이라는 겁니다.
시대가 바뀌어 인터넷을 경유한 양방향 화상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부족한 점은 인공지능 등 컴퓨터 프로그램이 보완할 수 있는 현재에는 이런 논의는 맞지 않는다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코로나19로 인해 환자를 직접 만나는 것이 의료인에게도 부담이 되는 현 상황에선 더 그렇죠.
그러나, 원격 의료의 시행은 앞선 여러 논의가 지적한 의료영리화를 위한 초석 또는 시스템 구축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의 배를 불리는 일일 뿐이라는 점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경제 논리로 반대하는 것에는 한계도 있는데, 의료영리화라는 틀을 설정하게 되면 의료인 또한 어쨌든 의료를 통해 돈을 버니 다 한통속이 아니냐는 인상을 주게 되어 사회적인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의료영리화라는 건 의료인이 진료 수익을 얻는 것을 넘어 병원에 기업 등이 투자하여 투자 수익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해도 사람들은 세세한 부분에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요. 따라서, 두 지점을 한꺼번에 설명할 논의를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왜 당장 원격 의료를 할 수 없는 치과 의료인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둘째, 의료영리화 외에 원격 의료에 관한 다른 반대 근거가 있는가? 여기에서, 두 문제 모두에 답을 하기 위해 윤리적 근거에 기대보고자 합니다.
원격 진료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까요? 네, 문제가 됩니다. 원격 진료가 진료의 기본 형태가 되는 것은 의료의 기본을 흔들 것이며, 이것이 새로운 의학을 열기보다는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기에 지금 당·정·청이 언급하는 “비대면 진료체계 구축”은 소탐대실입니다.
현대 의료는 검사하는 의료인과 자신의 신체를 내보이는 환자의 이항을 기본으로 구축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비대칭적 지식과 함께 환자를 규율하여 통치하는 현대 권력의 표상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정부 권력이 시민을 길들이는 방식 중 하나가 의료라는 것인데, 이런 생각은 부정적인 것처럼 보이나 환자와 의료인 사이의 관계에 접근하기 위한 핵심 통찰을 제공합니다.
즉, 환자는 자신에게 해가 되는 행위를 하기 쉽습니다. 흡연, 음주, 과식 등 일상생활의 요소에서부터, 아픈 상황에서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것까지 그 범주는 다양합니다. 치과에선 이를 특히 잘 인지하게 되지요. 외상이나 유전적 소인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구강 질환의 발생은 많은 경우 환자가 구강 위생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돌봄에 강제성을 부여하여 환자가 건강하도록 이끄는 것이 의료인의 제도적 기능입니다.
원격 의료는 단지 의료인과 환자 사이에 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원격 의료는 환자와 의료인을 이격시켜 그 중간에 원격 매체를 집어넣습니다. 주지하시다시피, 원격 의료에서 환자를 직접 만나지 못하다 보니 의료인은 진료를 위해 다른 여러 수단에 의존해야 합니다.
물론, 현재도 의료인은 영상과 여러 검사 자료와 같은 여러 수단에 의존하고 있지요. 그러나, 이는 엄격히 보조 수단일 뿐이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의료인과 환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반면, 원격 의료에서 의료인과 환자는 자신의 견해를 내놓을 뿐, 최종 결정은 원격 매체가 주관하게 됩니다. 원격 의료에서도 진단을 내리는 것은 여전히 의료인이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여전히 환자와 의료인인데 어떻게 변화가 나타날까요?
매체가 달라지면 이 모든 결정 방식도 달라집니다. 지금은 원격 의료가 대면 진료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만성 환자 상태 확인과 반복적인 약 처방만 시행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고, 원격 의료가 정식으로 매체로 자리 잡으면 치료와 이행을 결정하는 것은 매체가 됩니다. 비근한 예로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이 있지요. 음식 배달 앱 초창기, 누구도 회사에 비싼 수수료를 내면서 앱을 써야 할 거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흥미로운 하나의 거래, 지불 수단이 추가되는 것뿐이라고 여겼지요.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배달 중계 회사가 중계료를 올리는 것이 식당의 생존을 움직이고, 배달 대행업체가 독립하여 큰 수익을 내는 하나의 업종이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전화로 음식을 주문하는 것을 어색하게 여기며, 앱에서 제공하는 업체 순위와 리뷰, 추천 메뉴에 의존하여 음식을 선택합니다.
원격 진료의 미래도 여기에 있습니다. 당장은 그저 대면 진료의 대행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진료 자체의 성격을 변화시키게 됩니다. 의료인 누구도 원격 진료 매체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고, 환자는 원격 진료 환경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겁니다.
대면을 기본으로 환자-의료인 이항관계를 논했던 의료윤리와 의료사회학은 무용한 것이 됩니다. 그것이 이익이 되긴 하겠죠. 원격 진료를 중개하는 회사에겐. 이제 의료인의 자율성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해집니다. 모든 것을 원격 진료가 통제할 미래에선. 국가는 바로 시민의 건강에 개입할 것이고, 그것은 기업을 통해 앱으로 구현될 겁니다.
이 변화에서 치과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곧 어떻게든 치과 검진을 원격으로 대행하는 방식에 관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고, 이는 치과의사를 치과 치료 기술직으로 바꾸는 변화의 출발점이 됩니다. 지금도 그렇게 흐르고 있지 않냐고 물으신다면,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최대한 저항해야 한다고, 모든 노력을 기울여 다른 의료를 꿈꾸고 실천해야 한다고 답하겠습니다.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