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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의료광고, 금지해야 할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19)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지난번에 신문을 보니 방송에서 병원 광고를 허용하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이미 의료광고를 지면이나 인터넷에서 허용하고 있는데, 방송에 나온다고 더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은데요. 의료윤리에서 이런 부분도 다루는지도 궁금하고, 이 부분의 규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묻습니다. 익명

 

현행 의료법 제56조 제3항 제1호는 의료광고의 방법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방송법 제2조 제1호에 해당하는 방송으로 의료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이 그 골자인데, 여기에서 방송이란 텔레비전방송, 라디오방송, 데이터방송, 이동멀티미디어방송을 포함합니다. 즉, 채널을 통해 제공되는 텔레비전과 라디오로 의료광고를 하는 것은 금지이며, 그 전송 수단이 데이터라 해도 금지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넷은 아직 방송이 아니므로 전면 금지는 아니고, 하루 평균 방문자 수 10만 명 이상의 인터넷매체에 광고하는 경우 사전심의를 받아야 하므로 유튜브에 광고를 실으려면 사전심의 후 가능합니다.


왜 방송에서 의료광고를 하지 못할까요? 2005년 10월 27일 헌법재판소가 당시 의료법 제46조 제3항 의료인의 광고 금지를 표현의 자유와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취지로 위헌판결하면서 의료법을 개정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엔 아직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텔레비전, 라디오, 유선방송 등의 매체 장악력이 매우 높았으므로, 방송으로 의료광고가 송출되면 일방적인 내용이 전달되어 환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방송으로 의료광고가 나간다면 불필요한 의료수요가 창출될 수 있다는 논의도 나왔기 때문인데요.


현재 매체의 상황을 볼 때 이런 논의는 시효를 상실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미 인터넷 방송이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광고시장 또한 인터넷 방송으로 재편되고 있는 현 상황에선 말이죠. 그렇다면, 이제 방송광고 금지 또한 해제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은 아닐까요?


이 문제를 살펴보려면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광고냐 아니냐를 넘어, 방송이 현대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방송을 통한 의료광고와는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말입니다. 단지 의료광고의 금지 여부만 생각한다면, 위 문제는 결국 자율 광고 규제로 귀결됩니다. 예컨대, 치협은 의료방송 광고 허용 움직임에 대해 대형병원이 방송광고를 주로 활용하게 되어 환자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지방 의료기관이 경쟁력을 상실하며, 1차 의료기관은 환자 의뢰 업무만을 수행하게 될 것이고 마케팅 비용 증가로 진료비가 상승할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한 바 있습니다.


치협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나, 주장의 한계 또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요. 방송광고는 대형병원이 주도한다는 것이 골자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환자 쏠림 현상이 심해질까요? 예컨대, 대형병원이 방송에서 브랜드를 대대적으로 내보낸다고 해서 변할 것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이미 대형병원의 상표 가치는 확실하고, 이것을 광고 아닌 다른 방송 프로그램이 이미 지탱하고 있습니다. <명의> 같은 프로그램은 사실 광고라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지요.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방송광고의 허용 여부가 아니라, 방송광고에서 어떤 내용을 다루는가 입니다.


현대에서 광고는 어떤 역할을 할까요? 영국 작가, 비평가 존 버거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라는 명저에서 광고를 날카롭게 분석해 냅니다. 광고가 보여주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이다, 라는 것이 버거가 주장하는 핵심인데, 이 부분을 좀 더 살펴볼게요.


광고는 물건 또는 재화를 팔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광고 시청자에게 광고가 보여주는 물건은 아직 손에 들어와 있지 않은 상태죠. 광고는 시청자에게 이 물건을 손에 넣었을 때 자신이 어떤 상태가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즉, 광고는 보는 이에게 물건을 소유한 미래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미래는, 지금보다 나아진 상태죠.


자동차 광고를 예로 들어볼까요? 신차 광고는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을까요? 이번 기종에서 새로 추가된 기능? 변화된 크기? 내부 장식재? 엔진 성능? 물론 이런 내용을 부수적으로 넣긴 합니다만, 신차 광고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이 차를 구매하여 타는 당신에게 찾아올 변화”입니다. 이 차를 통해 품격이 올라간다거나, 더 대접받는 위치가 된다거나 하는 내용을 그저 말로 쓰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자동차가 달려가는 모습이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선망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보여주는 일입니다.


여기에서 출발해보죠. 치과 광고는 어떻습니까? 치과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의료진의 실력과 친절을 알리는 것은 광고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광고는 이 치과를 통해 환자가 받을 치료의 편안함 또는 치료로 얻을 자신감이나 심미성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저작 기능의 개선 등은 사진으로 보여줄 수 없기에 치과 광고는 미소를, 미소 띤 입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제, 동영상으로 의료광고를 내보낼 수 있다면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치료가 가져올 삶의 변화입니다. 미국의 항암제 광고가 좋은 예가 될 텐데요. 비소세포암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의 광고는 항암제를 통해 다시 일상을 영위하게 된 중년 여성의 일상을 조용히 담아냅니다. 광고가 보여주는 것은 항암제 없이는 잃어버렸을 그것, 다른 무엇도 되돌려줄 수 없는 평범한 삶이죠. 당장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암 환자들에게 이런 약속은 강렬하고 강력합니다.


방송광고의 힘은 여기에 있습니다. 기존에 사진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모습을 정물적으로 그려내는 데 그쳤다면, 방송광고는 그 선망을 생생하게 구현할 수 있습니다. 치과라면, 치료를 통해 얻을 자신감, 아름다움을 방송은 사람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보여줄 수 있지요. 편안한 치료를 보여주는 것도 가능합니다. 깨끗하고 세련된 진료실에서 조용하고 부드럽게 진료받고 가는 모습을 방송은 그려줄 수 있겠지요. 아무래도 더 많은 광고비를 집행할 수 있고 시설을 개선하기 쉬운 대형병원이 이런 광고를 내보내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죠.


따라서 방송광고를 허용하지 않는 것도 한 가지 방책일 수 있으나, 더 중요한 것은 현재 의료광고 심의 기구가 어떤 광고가 문제가 되고 의료기관 사이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는지를 분석하여 자체적으로 차단하는 데에 있습니다. 점차 인터넷 등으로 광고 매체가 다변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광고만을 무작정 차단하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며, 오히려 작은 의원이 광고 제작에 심혈을 기울여 대형병원보다 더 앞서 나갈 기회를 차단하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의료광고에 관한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온 상황이 된 것이죠. 지금 우리는 어떤 광고를 허용하고 어떤 광고는 금지할지에 관한 지침을 더 논의해봐야 할 겁니다.

 

▶▶▶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