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1 (화)

  • 맑음동두천 8.6℃
  • 구름조금강릉 11.4℃
  • 구름많음서울 11.3℃
  • 대전 12.6℃
  • 흐림대구 12.9℃
  • 흐림울산 14.3℃
  • 흐림광주 16.9℃
  • 흐림부산 15.1℃
  • 흐림고창 16.0℃
  • 박무제주 18.4℃
  • 구름많음강화 13.5℃
  • 흐림보은 11.6℃
  • 흐림금산 11.7℃
  • 구름많음강진군 17.5℃
  • 흐림경주시 13.0℃
  • 구름많음거제 15.6℃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면허번호 38 나와 치의병과<10> 치과기공문관 채용

한국치의학발전(韓國齒醫學發展)과 육군치무병과(陸軍齒務兵科)

1927 경기도 용인 출생
1949 서울치대 3회 졸업
1969 예비역 치의 대령
        대한치과의사협회 감사
1974 대한치과의사협회 총무
1980 대한치과의사협회 부회장
1967 대한구강보건협회 부회장 감사 고문
1967 대한치과기재학회 3-5대 회장 고문
1978 인공치아이식임플란트학회 초대 2대회장
1979 국제치의학사회 I.C.D. 평생회원
1982 서울대학교치과대학동창회 부회장
1982 전주류씨 전양부원군 종중 회장

                                                                                      현) 종로구치과의사회 지도위원장
                                                                                           유 양 석 치과의원장 

                                                                                      상훈 : 보국훈장 협회대상 서울치대동문상 수상

 

#치과기공문관 채용
치과기공사가 최초로 군에 채용된 것은 나의 건의로 이루어졌다. 보철기술하사관으로 근무하던 하사관들이 제대 후 갈 곳이 없어 고향에 가서는 군에서 배운 기술로 자격도 없이 잠행하여 무면허로 부정 치과 의료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를 양성화하여 그들의 일자리를 마련하고자 군에 정식으로 취업할 수 있는 치과 기공 문관제도를 마련코자 건의한 결과 수용이 되었다.


그래서 1962년 제 5육군병원 근무 시 부산 서면에 성업 중이던 강치과의원에 근무하던 김(金)종태라는 기공사가 최초로 채용되어 잘 있는 사람을 빼내 갔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1963년 수도육군병원에는 김성배(金聖培)라는 기공사가 채용되어 있었으니, 그는 나의 건의로 이루어진 제도에 의해 채용된 사람이다. 그는 퇴역 후에 초대 치과기공사협회장이 되었으며 나에게 기공소 단독개설 기사법 개정에 협조요청이 있어 도움을 주었다.

 


김(金)종명(벨기공소 소장)도 채용되었고, 박(朴)광길이란 사람도 채용하였다. 정(鄭)요한이란 사람은 내가 부산 5육군병원 재직 시의 보철기술하사관으로 제대 후에 나를 찾아와 취업을 부탁하기에 없는 자리를 타과(X선과)의 문관자리를 뺏어서 그를 채용하였는데, 그렇게 모두 4명의 기공 문관을 채용하여 나의 세도를 부려보기도 하였다. 그는 내가 예편 후에도 계속 장기복무하여, 퇴직연금까지 받아 퇴직하여 나에게 감사하였다. 육군중앙치과기공소가 창설되어 많은 기공사가 군에 채용되어 근무하기도 하였다.


1968년 나는 후배에게 진급할 자리를 내주고, 육군치과병원의 실현을 보지 못하고 예편하였다. 수십 년이 지난 근래에 와서야 “육군 서울치과병원”이 탄생하여 내 소원이 이루어졌다.


치과계에는 공직(公職)이 극소수밖에 없어 공동생활이나 단체생활의 기회가 없어 공동체 의식과 주체성이 모자라기 쉬웠으나, 군대생활을 통한 체험으로 우리의 주체성과 자주성을 인식할 수 있었으며 치과의사 자체는 물론 일반 의사들과 공존하는 체험은 큰 사회적 경험이 되었다. 그 경험으로 협회나 대외관계기관과의 업무에도 반영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치대병원장
치과대학 병원이 서울대병원과 같은 경내(境內)에 있는데, 한때 김 모 이비인후과 의사가 서울대병원장으로 있을 당시 그는 대통령주치의의 권세를 믿고, 치과대학 병원장을 자기네 부원장으로 예속시킨 일이 있었다. 그는 치과를 마치 자기네 내 외과 내지는 이비인후과 정도로 알고 저지른 몰상식하고 무모한 만행을 부린 것이다.


한마디로 웃기는 일이다. 엄연히 대학이 다르고 각기 하는 일이 다르며 분야가 다른데 언어도단이다. 당시의 치대 병원장은 군대생활의 경험이 없는 순수한 학자 출신의 얌전하고 선비 같은 분이었기 때문에 당한 것이다.

 


사필귀정으로 즉시 시정되었지만, 이는 마치 일제의 만행과도 같은 행위로, 구한말을 연상시키는 일이기도 하였다. 그렇다. 우리는 다시는 우리의 자존심과 주권은 물론 영역을 침범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군의와 치의는 마치 한일관계를 연상시키는 관계이기도 하였다. 상호 협력하고 공존해야 하는데, 군대뿐만 아니라 대학에서까지도 그래서야 되겠는가.


수가 적은 만큼 귀한 존재이므로 존중받고 보호·육성되고 발전해야 하는데, 적다고 무시하면 병과의 자존심과 특수성은 잃어버리고 문화의 혜택은 받을 수 없으며 후진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