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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의 미학

수필

푸른 바다의 수평선은 우리에게 청량감을 준다.

 

지구의 삼분의 이를 차지하고 있는 바다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모성애를 느끼게 한다. 지구 상에서 가장 놀라운 선중의 하나는 수평선과 지평선으로, 수평선은 하계인 바다와 상계인 하늘의 경계선이다. 하지만 실제로 바다와 하늘은 만나지 않는다. 수평선은 하늘과 바다를 갈라놓는 심상 속 경계로서 눈으로만 볼 수 있는 현상적인 세계를 지우고 내면속에서 새 현상을 만들어준다. 따라서 사람들이 이 하나의 선 앞에 서 있으면 가시적인 세계 너머에 있는 무궁함을 직면하게 되며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화로워질 수 있다.

 

은은한 파스텔톤 바다물의 색감. 수평선 위로 아롱거리는 서기, 그 위로 떠다니는 구름...(사진 1. 관용)

 

 

그 앞에 서있으면 누구라도 무방비 상태가 되어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놓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바다를 찾아간 사람들은 멍하니 바다를 응시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저절로 치유되는 자신을 보게 된다. 기나 긴 일상에서 지루함, 슬픔, 괴로움, 기쁨, 즐거움 등의 감정들과 부딪히면서 꿈을 붙들고 자유를 갈망한다. 바다와 수평선은 바라보는 것은 모든 존재의 완전성을 전하고 있다.

 

지평선은 다른 하계인 대지가 하늘과 하나 되는 또 다른 수평선이다. 새벽 운해 속에 싸인 산맥의 선 위의 하늘로 뻗치는 서기는 신비롭다.(사진 2) 

 

 

소유할 수 없이 바라만 볼 수 있는 곳, 바보처럼 끝을 사유할 수 없는 광대함의 위력, 그 선 위로 발산되는 붉은 서기와 함께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며 무엇이든 다 받아주는 포용의 세계가 펼쳐 진다. 그 곳에서는 심상 속 경계를 허물고 ‘진실된 나’와 만나 볼 수 있다.

 

어두운 가운데 낮게 보이는 그저 하늘과 맞닿아 있는 들판, 그 사이에 존재하는 신비로운 안개에 둘러싸인 산맥, 그리고 그 위 광활한 하늘에 가득 찬 구름들은 마음에 기이한 파문을 불러 일으킨다.(사진 3)

 

 

어두움과 신비로움과 광활함이 하나로 뭉쳐진 이 광경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칸트에 의하면, 압도적인 힘 앞에 선 인간은 “자신의 왜소함, 무기력함, 유한함”을 깨닫는 한편 “이성적 존재로서 자연으로부터 독립해 있다는 확신”을 얻는다. 숭고한 ‘초감각적 실체’인 ‘무한’을 마주하는 동시에 이를 이성의 힘으로 내면화 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마치 수평선의 바다와 섬과 구름에 싸인 하늘의 경계처럼 모호하게 느껴진다. 이 세상 존재들 간의 연결성을 다양한 모습을 통해 표현한다. 존재는 변화와 흐름 속에서 의존하고 서로를 비춘다.

 

현실이라는 장벽에 막혀 쉬이 허락되지 않던 마음의 평정을 수평선에 비추어 억압된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몰입된 상태는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 더 나아가서는 괴로움이나 결핍까지도 넘을 수 있다. 마음의 중심을 잡는 건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마음이 중심을 잡아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평정심 혹은 잠심의 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다. 남들의 비난, 자신의 분노 등을 차분하게 받아 넘기며, 그 의도나 진위 등을 판단할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마음의 상태이다. 이러한 ‘잠심의 미학’은 힘이 있어도 겸손하며 만물에 대해 평등하고 객관적인 ‘수평선의 미학’을 추구한다.

 

우리는 각자 마음 속에서 고요를 찾아야 한다. 사람들은 상상이나 명상 속에서 고요의 상태를 느낄 수 있지만, 시각적인 이미지를 보는 것도 마음 속 고요를 찾는데 도움이 된다. 사람은 정보의 80% 정도를 시각을 통해 얻기 때문에 시각적인 이미지로 심상을 구축하는데 효과적인 것이다. 예를 들면 그림이나 사진 혹은 실제의 수평선을 말없이 응시하다 보면 고요의 상태를 떠올릴 수 있다.

 

※ 사진 1 작품은 6월 2일부터 8일 사이에 인사동 마루아트센터 신관 3층에서 개최되는 ‘상상산책' 전시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