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29 (목)

  • 흐림동두천 32.6℃
  • 구름많음강릉 33.5℃
  • 흐림서울 32.9℃
  • 구름많음대전 34.5℃
  • 구름많음대구 34.6℃
  • 구름많음울산 30.3℃
  • 구름많음광주 32.7℃
  • 구름조금부산 30.3℃
  • 구름많음고창 31.1℃
  • 구름많음제주 32.4℃
  • 구름많음강화 30.6℃
  • 구름많음보은 32.8℃
  • 구름많음금산 32.5℃
  • 구름많음강진군 32.3℃
  • 구름많음경주시 33.6℃
  • 구름조금거제 30.7℃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블루 데블(Blue Devil) <3>

소설

지우의 휴대폰이 핸드백 속에서 다급하게 울렸다.


“어, 영미야! 미안~ 내가 갑자기 학교에 일이 생겨서…… 좀 더 있어야 할 거 같은데. 그래, 택시 타고 약속장소에 먼저 가 있을래? 응, 미안.”


“퇴근 후에 후배랑 약속이 있었거든.”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지?”

“지은파 선생님까지. 그래, 지은파 선생님은 지금 어디에 계셔?”


“교실에서 고양이를 키워서 자기 아이가 고양이 털 알러지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 한 학부모가 교육청에 민원을 넣었거든. 학부모 참관수업에 왔다가 우연히 내게 먹이 주는 모습을 본 모양이야. 그래서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어. 본인이 책임을 지시겠다고.”


“참, 어이가 없네. 겨우 어린 들고양이에게 먹이 준 걸 가지고."
“자기 아이가 회장이 되지 못했다고 담임선생님에게 불만이 많았던 엄마였거든.”
“아이가 회장에 뽑히지 않은 게 무슨 선생님 잘못이야!”
지우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은파 선생님이 떠난 후 갑자기 또 혼자가 돼버렸겠구나.”
비체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떠나고 나자, 갑자기 반 아이들이 돌변했어. 나를 더럽다고, ‘블루 데블’이라고 욕을 해대는 아이들도 있었고, 죽어버리라면서 돌멩이를 던지기도 했어. 그때부터 나는 줄곧 교실 바닥에 숨어 살았어. 바닥 아래에서 매일같이 아이들이 서로 욕하는 소리,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함부로 윽박지르는 소리, 아이들끼리 왕따시키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남았어.”


블루 데블의 목소리가 무겁게 교실 안을 울리며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슬프고 무서웠겠다. 비체.”
“노, 노, 노~ 천만에.”
“아니라고?”


“그런 사악한 소리가 가득 찬 공간에서는 어둠의 힘이 통하는 법이지. 너도 다른 선생들처럼 소원을 빌고 싶겠지. 그래서 교감, 교장으로 얼른 진급도 하고 말이야.”


“나는 그런 데에 전혀 관심이 없는걸.”
“겸손한 척 연기할 필요 없대도 그러네…….”
블루 데블의 살짝 당황한 목소리에 지우는 용기를 얻었다.


“비체야~ 그럼 이제 내 소원을 빌어도 돼?”
“블루 데블이래도! 왜 자꾸 비체래.”
“소원을 말할게!”


“그래, 단 한 가지 소원만. 대신 블루 데블이란 이름에 걸맞은 소원을 말해주면 좋겠어.”
“난, 네가 30년 전 비체로 다시 돌아와 주길 바라. 행복한 네 기억을 소환해줘.”


“맙소사, 생후 6개월 된 꼬맹이로 돌아와 달라고? 이런 소원을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는데. 마법이 어떻게 작동할지 궁금해지는데…… 결과가 어떻든, 날 원망하지는 마.”


지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을 하고 나타날 비체를 떠올리니 두 눈두덩이 근처가 따뜻해졌다.


어둑어둑한 교실 안이 점점 환해지면서 눈부시게 밝아졌다가 다시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지우는 기대감으로 눈꺼풀이 떨려왔다.


살며시 눈을 뜨자 동공이 커지면서 주위 어둠에 점차 익숙해졌다. 눈앞에는 털 사이로 귀가 접힌 덩치 큰 푸른색 스코티시 폴더 한 마리가 교실바닥 위에서 갸르릉 거리고 있었다. 비체에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두 발로 바닥을 번갈아 꾹꾹 눌러 댈 뿐이었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설마! 변한 게 없으려고.”
블루 데블이 지우에게 자주색 손잡이가 달린 뭔가를 내밀었다.


손거울이었다. 거울은 창밖의 달빛을 모조리 빨아들인 듯 칠흑 같은 교실 안에서 유일하게 원형의 강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지우는 마음을 졸이며 비체가 내민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거울 속에는 보라색 스코티시폴더 암고양이 한 마리가 놀란 눈을 치켜뜨고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야~ 나까지 고양이로 만들면 어떻게 해! 비체~ 이런 법이 어딨어?”
울음을 터뜨린 지우 앞에 블루 데블이 자신의 등을 내어 주었다.


“미안해, 나도 사랑해 줄 친구가 필요했어. 사람이나 고양이나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힘든 건 마찬가지잖아."
“그렇지만 비체 나는…….”

“오늘 하루만, 사랑할 수 있게, 내 친구가 되어줘.”


블루 데블이 꼬리를 말아 고양이로 변한 지우를 등에 태우고 칠흑같이 어둡고 황량한 교실을 어슬렁거리며 빠져나갔다. 고양이는 원래 말을 할 수 있다. 당신도 말하는 고양이 블루 데블을 만날 기회를 얻기를 바란다.

 

<끝>

 

임용철 원장

 

선치과의원
<한맥문학> 단편소설 ‘약속’으로 신인상 등단
대한치과의사문인회 총무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2013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