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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충동(Impulsive Reset)

임철중 칼럼

소공동 수련의 시절, 협회 배지(badge) 만들어 달기가 한때 유행하였다. 인상을 뜨고 납형을 다듬어 금 백금 은과 구리를 7:1:1:1로 섞은 합금으로 주조한다. 주조선(sprue wire)을 조금 갈면 그대로 핀이요, 리도카인 앰풀의 고무 패킹은 훌륭한 받침대가 되었다. 치과용 합금은 강하고 은은한 귀티가 나서 선물로도 안성맞춤이었다.

 

날개 달린 천사 위에 KOREA와 DA를 돋을새김 한 둥근 모양은 디자인 자체로 개성이 있고 아름답다. 천사는 어쩐지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성덕대왕 신종의 비천상(飛天像)을 연상하게 한다. 에밀레종에 있는 두 쌍의 천녀(天女)는 꽃과 구름 위를 날면서 무릎 꿇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다.

 

의사학(醫史學) 강의에서 들은 기억에 따르면, 성 아폴로니아는 치아를 뽑히는 고문 속에서도 믿음을 굽히지 않고 순교하여, 치과 환자의 수호천사가 되었단다. 치과신협 이사장 시절, D 합금회사에 자비(自費)로 주문한 순금배지를 신협 임원들에게 나누어주었고, 고마운 분들에게 선물로도 썼다. 그렇게 정들었던 배지가 어느 날 갑자기 총회 결의로 바뀌었다. 전에도 종종 논의는 있었는데, 일본 모 출판사의 로고와 닮았다는 것이 바꾸자는 이유 중 하나였다.

 

시(詩)는 누구나 쓰지만 아무나 쓰지는 못한다. 가슴 속에 시적 감성이 언제라도 흘러넘칠 듯, 임계점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사람이 시인이요, 넘쳐난 물만 보고는 가슴 속을 깡그리 짐작하기 어려운 까닭에 때때로 시는 난해하다. 오히려 타인의 시를 풀어내는 감상문, 평론에서 시인의 속내가 문득 문득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최영미의 어떤 시(조선일보)’를 즐겨 읽는다. 시집의 애독자는 곧 시인들이니까, 시를 찾아 헤매다가 성에 차지 않은 시인은, 끝내 프로 채굴사(採掘士) 즉 출판업으로 전향을 하거나 겸직한다. 최영미는 바로 ‘이미 출판’ 회사의 대표다.

 

출판은 글밭을 가꾸는 농부에게 살판을 내주는 문화 사업이기에, 눈과 귀를 가려 우민(愚民)을 사육하는 극좌 독재 공산국가를 빼고는, 모든 나라가 출판을 장려한다.

 

신분증과 주민등록등본만 관할 구청에 가져가면 출판사를 설립할 수 있다. 아 참, 중복을 피하려면 이름은 신중하게 지어야 하고, 등록세 27,000원을 내야 한다. 한 해에 새로 생기는 출판사가 약 3천 곳이라니, 닮은 배지가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다. 방송사처럼 영어 이니셜만 쭉 나열한 새 배지는 공식행사 때에만 쓰고, 평소에는 옛날 아날로그 배지를 달고 다닌다. 좀 구닥다리 티는 나지만, 스타벅스의 세이렌처럼, 스토리가 있고 정 붙일 데가 있는 아날로그가 나는 좋다.

 

5공 때 전국 교통신호등이 바뀌었다. 길다란 바에 쌍으로 매달린 삼색의 등은 첫눈에도 호화찬란하였다. 전(全) 대통령 동생 또는 처가 쪽의 신호등업자가 초대박 로또를 맞았다고 욕하는 소문이 돌았다. 알고 보니 넓어진 도로와 향상된 자동차 성능에 걸맞게 멀리서도 양방향으로 두루 잘 보이도록 개선한 ‘교통문화 선진화’였다. 단 하나뿐인 치과계의 상징을 방송사 배지처럼 밋밋하게 KDA로 나열한 것이, 업무개선과 치과계 이미지 제고를 위한 혁명적 결단이었는지는 아직도 아리송하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바뀌면서 ‘혁신’이 시대정신이 되었다. 단, 눈앞이 캄캄한 좌절을 만났을 때, 이판사판 뒤집고 부수고 바꾸어보자는 ‘리셋 충동’과 혁신을 혼동하지는 말자. 노파심인지 모르나 디지털 세대로 갈수록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는 듯하여 걱정스럽다. 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회장 직선제를 반대해왔다(프랙톨과 직선제: 1995. 3. 치의신보 등). 총회 결의와 선거인단의 과도기를 거쳐 자리가 잡힌 뒤에도, 불행한 예감은 자꾸 적중되어, 다시 한 번 재선거가 시행된다.

 

새 당선자는 그동안의 상처를 치유하고 신중하게 전진하는 협회를 만들어가는 데에 전력투구해주시기 바란다. 아울러 치과계 십만 가족의 앞날을 끌어가는 수장답게, 꺾일망정 ‘절대로’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의연한 책임감을 기대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