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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CCTV 설치법안, 이대로 괜찮을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31)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야 하는지에 관한 갑론을박이 요새 치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장 우리 진료실에는 수술실이 없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치과와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현재 진행 상황을 윤리적 관점에선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익명


2021년 8월 25일, 수술실에 영상정보처리기기(CCTV)를 설치, 운영할 것을 의무화한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통과하였습니다. 수술실을 운영하지 않는 치과의원에선 거리가 있는 일로 여겨지실 수도 있으나, 외과계 진료과목이 있는 치과병원과 전신마취 하 수술을 하는 치과의원은 수술실을 갖추게 되어 있으므로 이번 개정안의 적용을 받게 될 예정입니다.


개정안 내용을 살펴보면, CCTV를 수술실 내에 설치하여 수술참여자들이 보이는 상태에서 의료행위를 촬영하나, 촬영은 환자 또는 환자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녹음 없이 진행하도록 합니다. 정부, 지방자치단체가 장비 설치의 비용 일부를 지원하나 안전성 확보에 관한 조치는 운영자에게 책임이 부여됩니다. 영상 자료의 열람은 수사나 재판을 위해 필요한 경우, 또는 환자와 의료인 쌍방 동의가 있을 때 가능합니다. 이때, 열람 비용은 요구자가 부담합니다.


이런 수술실 내 CCTV 설치에 있어 환자의 알 권리 보장, 불법 의료행위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찬성 측 의견과, 방어적 의료행위를 유도하여 의료 질과 수술 성공률이 낮아질 수 있고 영상 유출시 피해의 우려가 심각하다는 반대 측 의견이 부딪혔습니다.


특히, 가장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한 부분은 CCTV 설치가 의료행위에 부담을 주는지 여부인 것 같습니다. 예로 2021년 5월 26일에 있었던 개정법률안 공청회에서, 김종민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수술실내 CCTV 설치가 의료진이 치료에만 집중할 수 없게 하는 경직된 문화를 조성할 것이며, 분쟁을 피하기 위한 소극적·보존적 수술 문화가 형성될 것이라 지적하였습니다. 반면,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CCTV가 설치된 다른 업무 분야에서 집중도가 낮아진다는 보고가 없으며, 사고 발생 시 오히려 의료인을 보호하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응급실이나 상담실 등 이미 병·의원의 여러 영역에 CCTV를 설치하고 있는데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이 왜 문제냐고 묻는 것은 타당해 보입니다. 한편, 지속적 감시 아래 놓이는 의료인이 술기 수행에 있어 불편감을 넘어 심리적 저항감에 부딪히고, 수술에서 역량 발휘가 감소할 것이라는 염려도 정당합니다. 따라서, 양측의 의견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전제하, 문제를 약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려 합니다.


수술 상황에서 환자-의료인 관계의 본성이란 무엇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의료행위도, 의학도 환자-의료인 관계에서 출발한다고 전제합니다. 환자와 의료인 한쪽 없이 의학은, 의료행위는 불가능하니까요. 하지만 환자-의료인 관계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막막합니다. 그것은 판매자-구매자 관계에 견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선생-제자 관계나 부모-자녀 관계는 어떻습니까. 전문인이니, 변호사-의뢰인 관계는 어떨까요.


이에 관한 긴 설명도 가능하지만, 환자-의료인 관계는 이 모두를 포함합니다. 의료인이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를 환자는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계약 관계를 맺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전부라고 말할 수 없는데, 의료인은 진단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규정하고 건강을 위하여 환자에게 행동 변화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단지 서비스의 판매일 뿐이라면, 필요할 때 환자를 입원시키거나 환자에게 어떤 치료나 투약을 할 것을 권고하는 일은 적절하지 않을 테니까요. 한편, 변호사와 의뢰인이 맺는 수임 관계, 즉 계약을 통해 사무 처리의 권리를 위임하는 부분도 환자와 의료인 사이에 존재합니다. 환자가 충분한 설명을 듣고 치료에 동의하면, 의료인은 환자에게 일 처리의 권리를 위임받아 치료 과정에서 생기는 일들을 처리합니다. 예컨대, 수술 과정의 술식 하나하나를 환자에게 물어가면서 진행하지 않지요.


사실, 환자-의료인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다른 관계를 끌어들이는 것은 부적절한 접근일 수 있습니다. 환자-의료인 관계는 특별하며, 다른 것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자체의 특성을 지닙니다. 역사적으로도, 환자-의료인 관계는 종교적 관계에서 분리되어 나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전 사제가 지니던 치료에 관한 권위가 세속화되는 과정에서 새롭게 탄생한 것이 환자-의료인 관계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 관계는 매매 관계나 신탁 관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둘 사이의 관계가 복잡하다 보니, 문제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 처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의료분쟁 체제에선 갈등을 처벌이나 벌금으로 조절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으며, 이런 관점에서 CCTV 설치는 당연해 보입니다. 문제를 처벌하기 위해선 명확한 증거가 필요한데, CCTV가 제공하는 영상 자료만큼 분명해 보이는 증거는 없는 탓이죠.


이런 흐름은 안타까운 일로, 여러 층위를 안고 있던 환자-의료인 관계가 점점 더 매매 관계로 고착되어가는 증거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것이 더 나은 방향이라고, 의료인은 이제 과거의 의무를 벗어버리고 환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 다른 매매 행위와 같이 정직하여 속임수만 쓰지 않으면 되는 거라는 과격한 주장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의업(醫業)이 그런 식으로 폄하되는 일이 불편한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이 지면을 통해 치과의사로서의 정체성이 지닌 중요성과, 그것이 부여하는 의무의 귀중함을 몇 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비록 구강 내 영역에 국한되어 있을지라도, 치료하는 자의 역할은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하기 어려운 존재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어렵습니다만, 치료하는 자로서 이 삶을 살아낸다고 하는 것은 환자에게 건강을 되돌려주고 선물하는 일이며 그것은 다른 어떤 일로도 치환 불가능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저는 이런 흐름이 CCTV 설치 의무화로 환자-의료인 사이 갈등을 해결하려는 근시안적 태도가 아쉽습니다. 당장은 CCTV 설치 근거로 제시되었던 유령수술 등의 불법행위를 걸러내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를 포함하여 이후의 의사, 치과의사 세대들이 자기 일에 느끼는 자부심에 상처를 남기는 일이 되리라고 생각하며, 결국에는 환자-의료인 관계가 지녔던 가치를 점차 지워가고 있는 자본의 도도한 흐름을 따라가는 일일 뿐이라고 봅니다. 가능하다면, 이번 일이 환자-의료인 관계의 가치와 그 특수성을 다시 강조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회자하고, 다시금 사회도, 우리도 이 상황에 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