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유리알 유희

배광식 칼럼

유리알 유희(독: Das Glasperlenspiel, 영; The Glass Bead Game)는 헤르만 헤세의 생애 마지막 장편 소설로, 1931년부터 쓰기 시작하여 1943년 출판되었다. 헤세가 반(反)파시스트 주의자였으므로 독일에서 출판이 거부되어 스위스에서 처음으로 출판되었고, 1946년에 노벨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미래의 어느 때이고, 장소는 중부유럽에 위치한 가공의 주(州)인 카스탈리아(Castalia)이다. 카스탈리아는 ‘기숙학교 운영’과 ‘유리알 유희의 개발완성’을 양대 사명으로 한 순수 지식인 종단의 근거지이다. 이는 헤세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유토피아인 셈이다. ‘유리알 유희’는 정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특성을 가졌고, 발트젤(Valdzell; 숲속의 방)이라는 특수학교가 개발완성과 훈련을 맡아한다. 유리알 유희의 규칙은 매우 정교하고 수준이 높아 쉽게 상상되는 것이 아니고 넌지시 암시될 뿐이다. 이에 익숙해지려면 음악, 수학과 문화사를 수년간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유리알 유희는 모든 예술과 과학의 개요를 종합한 형태이고, 무관해 보이는 주제들 사이를 심원한 깊이에서 연결하는 유희자에 의해서만 행해질 수 있다. 유리알 유희의 가시적인 부분은 마치 오선지에 음표를 그려 악보가 되듯이, 여러가닥의 철사줄에 색색의 유리알들을 엮어 무엇이든 표현하는 방법이다.

 

주인공 요제프 크네히트(Josef Knecht)는 발트젤을 졸업하고, 노형(老兄; Elder Brother)으로 불리우는 죽림(竹林)의 은둔자를 만나러 간다. 크네히트가 여기에 머물기를 원하자, 노형은 산통(算筒)에서 산가지를 뽑아 신중하고 익숙하게 점괘를 얻어 역경(易經)에 의지해 해석하고 머물기를 허락한다. 이때 얻어진 점괘는 산수몽(山水蒙; ䷃ 64괘중 4번째)괘였다. 크네히트가 수개월간 머물며 노형에게 산통(算筒)에서 산가지를 뽑아 점괘를 얻어 역경(易經)에 의지해 해석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유리알 유희(여러가닥의 철사줄에 색색의 유리알들을 엮어 표현하는 방법) 안에 역경의 체계를 담아보겠다고 한다. 노형은 “누구나 세상 안에 작고 예쁜 대나무 정원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과연 그의 작은 대나무 정원 안에 세상을 담는데 성공한 정원사가 있을까?”라는 언급을 통해 역경을 세상에, 유리알 유희를 대나무 정원에 비유하여 역경이 유리알 유희보다 훨씬 광대한 것임을 강조한다.

 

역경은 유교의 기본 경전인 사서삼경의 하나로 주역(周易)이라고도 한다. 역이란 말은 변역(變易), 곧 '바뀌고 변한다'는 뜻으로, ‘천지만물의 양(陽)과 음(陰)의 기운이 끊임없이 생성변화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한 것이다. 역은 변역 외에 이간(易簡)·불역(不易)의 뜻도 내포한다. 이간이란 ‘자연현상이 끊임없이 변하나 그 변화가 간단하고 평이하다’는 뜻이며. 불역이란 ‘모든 것은 변하나 일정한 항구불변(恒久不變)의 법칙을 따라서 변하기 때문에 법칙 그 자체는 변치 않는다’는 뜻이다.

 

주역은 양효(ㅡ)와 음효(--)의 이진법이 기본이며, 효 세 개를 상하로 포갠 것을 단괘(單卦)라 하여 팔괘[八卦(2³=8); ☰(건(乾))·☱(태(兌))·☲(이(離))·☳(진(震))·☴(손(巽))·☵(감(坎))·☶(간(艮))·☷(곤(坤))]가 있으며, 건괘(乾卦)부터 순서대로 천택화뢰풍수산지(天澤火雷風水山地)와 대응한다. 단괘를 아래위로 두 개 포개면 중괘(重卦)로, 달리 말하면 효 6개를 포갠 것이다. 따라서 경우의 수는 2⁶=64로 중괘는 총 64괘이다.

 

위에 언급한 산수몽괘는 위에 간괘(☶)로 산과 대응하고, 아래에 감괘(☵)로 물에 대응하므로 ‘산수’로 상하의 단괘를 표시하고, 중괘의 명칭이 몽(蒙)이므로 합해서 산수몽괘라 한 것이다. 몽(蒙)은 어둡다, 어리석다, 어리다 등의 뜻으로, 몽괘는 몽매함을 깨우친다는 데서 교육의 의미를 갖는다. 계몽(啓蒙), 동몽선습(童蒙先習)등이 그 예이다. 산 속에서 샘물이 솟아나와 내, 강, 바다까지 흘러 가는 것처럼 가르침을 꾸준히 계속해 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태극기에는 좌우상하에 네 개의 단괘가 있는데 좌상은 건괘(☰), 우하는 곤괘(☷), 우상은 감괘(☵), 좌하는 이괘(☲)이다. 여기에서 좌상의 건괘(하늘;天)와 우하의 곤괘(땅;地)가 상하를 이루어 중괘인 천지비(天地否; ䷋ 64괘중 12번째)괘가 된다. 비(否)는 비색(否塞)으로 ‘운수가 꽉 막힘’의 뜻이다. 서울법대 학장을 역임한 황산덕 교수는 좌상과 우하를 뒤바꾸어 좌상에 곤괘, 우하에 건괘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 지천태(地天泰; ䷊ 64괘중 11번째)괘가 되어 태평시대가 오게 된다는 것이다. 구한말의 태극기들에는 지천태괘를 갖춘 태극기가 많았다.

 

요즘 화천대유(火天大有)와 천화동인(天火同人)이라는 낯선 용어가 사회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화천대유(䷍)는 64괘중 14번 째 괘로 위에 불[火]을 뜻하는 이괘(☲), 아래에 하늘[天]을 뜻하는 건괘(☰)가 있어 화천(火天)이고, 중괘의 명칭이 대유(大有)로 해가 하늘높이 솟아 만물을 비추는 형국이다. 밑에서 5번째인 5효가 음효로 인군의 자리에서 나머지 다섯 양효를 다스린다. 모든 양들이 위아래에서 하나의 음에 응하고 있기 때문에 대유라고 했다. 이련 때는 하늘(의 공정한 뜻)을 순하게 받들어 악을 막고, 선을 드날려 주어야 한다[순천휴명順天休命 알악양선遏惡揚善].

 

천화동인(䷌)은 64괘중 13번째 괘로 위에 하늘[天]을 뜻하는 건괘(☰), 아래에 불[火]을 뜻하는 이괘(☲)가 있어 천화(天火)이고 중괘의 명칭은 동인(同人)이다. 불은 타올라 위로 올라가므로 하늘과 같이하고 해는 중천에 걸려 하늘과 같이한다. 하늘은 끌어 올리거나 밀어 내리지 않는다. 하늘이 만물에게 공정하듯이 사람도 모든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대한다면 바른 동인(同人)이 된다. 안으로 문명한 덕을 가져 바름[中正]으로 응하면 군자의 동인이다[문명이건文明以健 중정이응中正而應 군자정야君子正也]. 문 밖에서 (떳떳하게) 사람을 만난다. 그러면 허물이 없다[동인우문同人于門 무구无咎].

 

군자는 점괘를 뽑을 때 사심없이 공정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성심을 다해 괘를 뽑는다. 그리고 그 괘사나 효사를 살피고 몸과 마음을 삼간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