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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꿈

시론

1996년에 발표된 가요 중에 ‘일기예보’라는 그룹이 불러 인기를 얻었던 ‘인형의 꿈’이라는 곡이 있다. 그 가사를 음미해 보면, 현재 필자가 근무하는 치과 내의 분위기와 비슷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지금은 COVID-19로 인해 아예 치위생학과 학생 실습교육이 차단된 현실이지만, 불과 2년 전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필자가 근무하는 예방치과에 배정된 학생들의 경우, 인접해 있는 치과 내 다른 진료과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순간들이 많아, 한번은 진지하게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예방치과에서 실습하는 것이 혹시 불편하거나 불만스러운 점이 있는지 물었더니, 그 대답으로 ‘인형의 꿈’의 가사와 같은 내용을 듣게 되었다. 현재는 예방치과에서 실습하는게 너무 좋고 행복하기까지(?) 하지만, 장차 취업할 곳에서는 임플란트 시술을 하는 구강악안면외과나 치과보철과, 그리고 교정진료를 하는 치과교정과 등의 실습이 더 필요할 듯하여, 곁눈질로 예습을 해 둔다는 대답이 많았다. 며칠만 참으면 원하는 과로 가서 여한 없이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안심(?)을 시키고, 며칠이 지난 후, 그 학생이 해당 과에서 실습담당 선생에게 호된 지도(?)를 받는 모습을 보고 외면하고 싶었는데, 이번에는 그 학생이 다시 예방치과를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이 보인다.

 

언제까지 현행 ‘인턴’ 제도가 존속될지는 모르겠다. 필자의 과에 배정된 인턴에게 진료보조를 맡기면서 필자 나름대로의 구강진료 과정의 ‘know-how’나 예방치과 술식, 치과계의 숨겨진 이야기 등을 전해주다 보면, 총 6주간의 배정 시간이 짧다면 짧을 수도 있다. 필자 진료가 없는 시간에 세미나 발표 준비나 당직 시간에 진료했던 환자 진료를 하면서 예방치과를 굳건하게 지키라고 명령을 하였건만, 필자를 찾는 환자가 와서 갑자기 예방치과로 돌아와 보면, ‘인턴은 간데 없고, 전화벨만 요란하다.’라는 시조가 창작되어 버리는 순간이 많다. 2년 가까이 COVID-19로 인해 실습 나오는 치위생학과 학생도 없고 하니, 인턴 선생들이 필요한 곳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평생의 시간에서 6주만이라도 ‘예방치과’에 전념하라는 의미에서 6주를 정한 ‘선의(善意)’를 잘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나서는 필자가 보기에는 개선된 모습이 보여진다.


공자의 말씀(論語)에, “세 명이 길을 가면 세 명 중 한 사람의 내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고 하셨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세 명 중 ‘스승’으로 지목된 사람은 어느 한 사람일텐데 그 사람에게는 ‘스승’ 역할을 기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스승’ 역할의 사람에게는 나머지 두 사람의 단점을 ‘他山之石’으로 삼을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라는 옛 성현의 깊은 뜻이 숨어 있을 것 같다. 살다 보면, 본인 의지와 관계 없이 어느 과정에 들어가 배워야 하는 순간도 있지만, 본인 스스로 선택해서 그 길을 가는 경우가 많다. 후배들은 이 두 가지 경우 모두에서 더 이상 ‘인형의 꿈’을 꾸지 않았으면 한다. ‘중요한 사람’과 ‘스승’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60이 넘어서 ‘인형의 꿈’이 아닌 ‘사람의 꿈’을 꾸려고 한다. COVID-19로 인해 출근을 빨리 하는 습관이 생겨, 아침에 일찍 나오니,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은지 새삼 느낀다.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인형의 꿈’을 꾸면서 지낸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 공교롭게도 필자가 근무하는 의료원 측에서 예산을 투자하여 치과센터를 이전, 확장시켜 주어, 예방치과가 두 배의 크기로 확장되었다. 이전식에 참석하신 의료원장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 국내 상급종합병원 내의 유일한 예방치과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던 것 같다. 작게는 예방치과 전공의를 선발하거나 위탁받아 제대로 교육시키는 일로부터, 치위생학과 학생들을 실습시키는 일, 그리고 필자가 근무하는 의료원 직원들의 계속구강건강관리를 확대하는 등의 ‘사람의 꿈’을 꾸면서 나이 들어 더 할 일이 많아졌는지도 모른다. Golf 경기의 예를 들어, 더 이상 타수가 적은 고수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남은 내 경기를 하려 한다.


현재의 연구실을 비우는 날, 필자의 아내와 아들, 딸에게 그동안 살면서 필자를 ‘자랑스러워했는지’ 물었을 때, 부디 그 대답이 ‘긍정적’이길 바라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면 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동료, 후배 분들은 가족들에게 평생 한 길을 걸어온 치과의사로서의 아버지, 어머니가 자랑스러운지 어느 순간 질문했을 때, ‘최고의 찬사’를 듣길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