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도 않는 검은 그림자가
지구 상공을 누볐다
불행히도 불안은 비껴가지 않았다
검은 그림자는 수액처럼 지상에 스며들었다
뉴스를 보다 잠이 들었는데
끝이 안 보이는 배급 줄 맨 끝에
내가 떨며 서 있었다
격리와 고립이라는 초유의 현실
죄 없는 사람들까지 마녀사냥당하듯 죄인이 되고
서로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추궁했다
총성도 없이 선전포고가 이어졌다
마스크 두 장을 다 쓰고 창문 닫고
머리까지 이불을 덮어 올렸다
그날 밤에도 나는
낡은 잠옷 바람으로
보이지도 않는 배급 줄의 꼬리를 찾으며 울고 있었다
역설적으로 다시 푸르러 맑아진 지구를
검은 그림자가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이영혜 원장
-2008 《불교문예》 등단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창과 졸업
-서울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초빙 부교수
-박앤이서울치과의원 원장
-시집 《식물성 남자를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