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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남 중 막내로 태어난 저는 어려서부터 주변 어른들로부터 ‘엄마에게 딸 같은 아들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엄마랑 일상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며 지냈습니다. 20대까지는 걷기 운동부터 장보기, 영화 보기 등 소소한 시간을 보내왔다면, 강릉에서의 수련 생활과 결혼으로 독립한 이후에는 지방 여기저기를 여행하며 추억을 쌓아왔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친구들과 열 번 놀러 가는 번화가를 엄마랑 한 번 걷고, 제가 사고 싶은 물건을 엄마 카드로 실컷 사고는 엄마가 작은 머리핀 한 개 사는 것을 골라주었을 뿐인데, 엄마는 ‘아들 덕분에’ 재밌게 놀았다며 늘 행복해합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다. 엄마와 함께 거닐던 명동의 번화한 거리는 엄마가 성당에 미사를 보러 여러 번 다녔던 거리이고, 같이 간 식당은 엄마의 단골집입니다. 처음도 아닌, 심지어 주인과 안부를 건넬 정도로 자주 가는 곳에 함께 다녀온 것이 왜 제 덕분이라는 걸까요.

 

엄마의 ‘아들 덕분’ 표현을 상투적이라 여기면서 저는 ‘엄마 덕분에’ 재밌게 놀았다는 표현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엄마가 아니어도 누군가와 재밌게 놀 수 있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엄마도 제가 아닌 엄마 친구들과 같은 속도로 걷고,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며 더 재밌게 놀 수 있었겠지요.

 

지난 5월 제게도 아들이 태어나 하루하루 행복에 겨운 나날을 보내다 보니, 이제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아들 덕분이라 말했는지 조금씩 이해가 갑니다. 혼자 혹은 아내와 손을 잡고 걷던 해변길은 아기띠를 두르고 아들의 잠투정을 받아내는 고행길이 되었고, 일과 후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컴퓨터를 하는 시간은 아들을 씻기고 먹이는 시간으로 바뀌었지만 거실은 아기 놀이방, 제 공부방은 아기 침실, 큰 화장실은 아기 목욕실로 변했고, 차 트렁크에 가득 실렸던 캠핑용품은 보일러실 구석에 숨었지만, 이 모든 게 아들 덕분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잠투정 끝에 파도소리를 들으며 곤히 잠든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벅찬 행복을 느낍니다. 칼같이 퇴근해 집에 도착한 아빠의 웃음을 따라 짓는 아들의 표정에 모든 피로가 씻기고, 작은 손과 발을 어루만져 씻기는 동안 물에 흠뻑 젖어도 아들의 물장구가 귀엽기만 합니다. 지금도 옷방 구석으로 옮겨온 책상에 쭈그려 앉아 원고를 쓰고 있지만 아기방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꼬대하는 소리가 새어 나올 때마다 저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정말이지 모든 게 아들 덕분입니다.

 

한편으로 걱정도 커집니다. 행복한 일상이 계속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입니다. 각종 감염병의 위험, 성장·발달상의 문제 등 너무나도 많은 위험요소와 안타까운 실제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접할 때마다, 설마 하는 마음이 커집니다. 걱정을 자라나게 하는 것은 아들 덕분도 때문도 아닌 나약한 제 자신 때문일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도 불안감이 한껏 고조된 요즈음 매일의 행복이 두려움과 우울감을 함께 떠올리지만, 끝없이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들지 않는 것 또한 아들 덕분일 것입니다.

 

원고의 말미에 적을까 말까 수없이 고민한 내용을 결국 적어봅니다. 감히 떠올리기조차 쉽지 않은 마음이지만, 이토록 사랑하는 누군가를 먼저 떠나보낸 이들이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로 깊은 슬픔에 빠진 희생자 부모들에 깊은 위로를 빌고 또 빕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