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가 치과가 치과 의료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갱신되는 최저가 경쟁은 상식을 갖춘 치과 개원의 입장에서는 잠재적 ‘시한폭탄’인 셈이다.
특히 저수가 문제는 임금, 금리, 원가 등 거시 경제와 연동된 기존 위협 요소와는 달리 치과계 내부의 경쟁에서 파생된 구조적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충격파를 예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30만 원대 임플란트가 던진 파장은 수가 이상의 열패감을 치과 개원가에게 시사한다.
수도권 지역에서 수년째 개원 중인 치과의사 A 원장은 임플란트 수가 조정을 고민 중이다. 최근 신환이 갑자기 줄어들자 장고에 돌입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기존에는 임플란트 시술에 드는 모든 비용을 포함했다면, 앞으로는 임플란트와 뼈 이식, 가이드 비용 등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환자와 상담을 하겠다는 얘기다.
A 원장이 실제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이 같은 조바심을 부채질한 건 분명 치과의사 커뮤니티를 통해 접한 30만 원대 임플란트의 등장이었다.
# 피 말리는 수가 경쟁 “승자 없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저수가 치과들의 진정한 파괴력은 이들이 표방하는 비상식적인 수가만이 아니다. 상식을 대체하는 건 주변 개원가의 서늘한 현실이자 저수가 체제로 수렴되는 처절한 ‘동조화(coupling)’다. 이미 환자로부터 수가 압박을 받은 근방 치과들이 그 이하의 수가를 내걸고 있는 정황들이 속속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가 창간 56주년을 맞아 저수가 치과에 대한 인식과 대책을 치과의사 회원 50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에도 이 같은 공포는 제대로 녹아 있다. 저수가 치과의 가장 큰 폐해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6.9%가 ‘치과 간 경쟁 심화로 인한 경영 악화’를 꼽았기 때문이다. 또 95%가 저수가 치과 때문에 매출 하락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존 저수가 치과들의 행태보다 이들은 오히려 한 발 더 앞서 있다. 더 이상 지하철 광고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그저 수가로 치환하고 이를 토대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지방 환자의 발길을 이끌어 내고 만다.
불과 1년 만에 수만 개의 임플란트를 식립했다는 그들의 홍보는 기존 개원가를 향한 적반하장의 경고장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 비정상적 수가, 필연적 부실 우려
이들을 주시하는 치과계의 우려 역시 수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환자와의 신뢰 구조가 오직 수가 위주로 재편됐을 경우 막상 의료가 설 자리가 없다는 지점에서 고민이 커진다.
박리다매식 경영의 핵심은 수가를 낮추고 진료 량을 늘리는 데 있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생산성이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진다는 것이 치과 경영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그 동안 나왔던 ‘먹튀 치과’들의 종국은 결국 이 같은 비정상적인 경영 구조와 운영의 한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 같은 저수가 사례들이 결국 치과계를 향한 곡해와 수가 자체에 대한 왜곡을 야기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데 있다. 저수가 치과만이 아닌 치과계 전체의 타격, 공멸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저수가 치과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지만, 이 같은 ‘괴물’을 낳은 사회구조에도 분명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정부는 저수가 기조에서 출발한 치과 의료 보험의 태생적 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보완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급기야 비급여 보고, 공개 등 통제 정책을 들고 나와 의료의 질은 도외시한 채 저수가 기조를 조성하는데 앞장서고 있다는 달갑지 않은 비판마저 받고 있다.
저수가 치과 주변에서 개원 중이라는 40대 치과의사 B 원장은 “싸고 좋은 물건이 없듯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저렴하면서 좋은 진료도 없다”며 “저수가가 더 심각한 저수가를 알아서 생산하는 이 같은 뒤틀린 구조는 궁극적으로 치과의사, 정부, 환자 누구도 원하는 그림이어서는 안 된다”고 일갈했다.
그의 갈급함을 향해 2023년의 치과계는 어떻게 응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