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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은 처음이라

황충주 칼럼

고령화와 함께 노인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놓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여기저기서 의견 충돌을 벌이고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 은퇴 나이를 62세에서 64세로 상향하는 연금 개혁법안을 둘러싸고 노동자들의 격렬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프랑스 정부는 현행 시스템을 유지하면 올해부터 연금재정이 적자로 전환되어 2030년에는 약 19조 원의 적자를 보기 때문에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거나 연금 수령액을 깎아야 하기때문에 연금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더 오래 일하고 더 늦게 연금을 받게 되는 사람들은 반대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초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 지하철 무임승차 등 다양한 복지제도가 65세를 기준으로 적용하고 있다. 지하철 무임승차로 인한 지하철공사의 적자가 한해 2천억~3천억 원으로 늘어나면서 노인의 무임승차 나이를 높이거나 지하철 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노인을 위한 복지제도는 편안하고 안전한 노후 생활을 위해 마련되었지만, 고령층의 증가와 출생아 수의 감소로 모두에게 재정적인 부담이 되고 있다. 2022년 서울에 거주하는 1957년 이전 출생자 3010명을 대상으로 시행된 ‘서울시 노인실태조사’에 참여한 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노인 기준 연령은 평균 72.6세로 나타났다.

 

노화(aging)는 시간 경과에 따른 자연적 현상으로, 태어나서 성장하고 늙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신체의 구조와 기능이 점진적으로 퇴화하는데 생물학적으로 세포 수준에서 분화와 증식이 줄어들어 특정 분자들의 구조가 바뀌고, 일련의 반응 경로가 변화한다.

 

유전, 환경, 생활 양식, 영양 섭취 등이 노화에 영향을 주며 생활 습관 및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기능을 위축시킨다. 인간의 노화는 시작 시기, 속도 및 범위가 개인에 따라 매우 다양하며 노화가 진행될수록 생리적 기능이 감소하여 당뇨병, 심장병, 혈전증, 암, 치매 등과 같은 장기별 질병의 발생률은 높아진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 일부의 한가지 질환이 아닌 다수 장기의 복합적인 질환으로 진행된다.

 

2019년 과학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된 미국 스탠퍼드대 신경과학자 토니 와이스-코레이 교수의 논문에는 노화는 평생에 걸쳐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세 번의 급진적인 노화 시기를 거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18~95세에 이르는 4263명의 혈액에서 액체 성분인 혈장을 분리한 뒤, 여기에서 3,000가지의 혈장 단백질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1379가지 단백질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수치가 달라지는 걸 발견했다. 단백질 수치로 본 노화 그래프는 선형 곡선이 아닌 세 개의 뚜렷한 꼭짓점을 형성했다. 노화 촉진 시기는 34살, 60살, 78살이며 나이가 들면서 몸 안에서 노화 변화가 세 번 나타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특히 30대 중반인 34살 무렵에 노화 관련 단백질 수치가 급등하는 걸 보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와이스-코레이 교수는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혈액 속 단백질 대부분은 다른 장기 조직에서 오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노화한 단백질의 출처가 간이라면 간이 늙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연구진이 생리 시계를 적용해본 결과, 측정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상당히 낮게 나온 사람들은 건강 상태가 매우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60세 환갑을 축하했던 것이나 아홉수를 잘 넘겨야 한다는 것도 우리는 몰랐지만 이런 의과학적 근거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까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보다는 대접받는 느낌이 들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코로나19 감염 취약계층으로 60대 이상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하여 PCR 검사도 우선으로 그리고 무료로 받을 수 있었고 65세가 되자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경로 우대증을 받고 노약자석에 당당히 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칠 전 이런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골드 크라운을 한 #26 부위의 구개부위가 불편하여 치과에 가서 방사선 사진을 찍었는데 치근단 부위에 abscess가 상당히 크게 보였다. 일단 크라운을 제거하고 상태를 보니 치아에 crack이 있었고 이것이 원인인 것으로 진단되었다. 결과적으로 신경치료보다는 발치하고 보철치료 하기로 하였다. 평소에 신경 쓰지 않던 치아들을 자세히 보니 마모나 실금이 간 치아, 치은퇴축도 있어 파절되거나 크랙이 생길 수 있다는 걱정이 되었다. 사랑니를 발치한 이후로 거의 40년 만에 발치하고 나니 처음으로 “이제 나도 늙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이 듦, 노화, 노년 이런 단어가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이제 내 삶에 깊숙이 다가온 것이다. 발치한 쪽으로 음식물이 가는 게 불편하고 잘 씹히지도 않아 편측으로 저작을 하다 보니 TMD 증상도 나타났다. 동화작가인 레이몬드 브리그스는 “젊었을 때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축복들에 감사하는 마음이 점점 더 커진다.”라고 말한 것 같이 그동안 나를 위해 수고한 치아들에 “그동안 고생 많았고 고마웠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라는 감사의 인사를 했다.

 

다산(茶山) 정약용은 노년유정심서(老年有情心書)에서 노년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한 것은, 필요 없는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큰 것만 보라는 뜻이요,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 없는 작은 말은 듣지 말고, 필요한 큰 말만 들으라는 것이고, /이가 시린 것은, 연한 음식 먹고 소화불량 없게 하려 함이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 멀리 가지 말라는 것이리라. /머리가 하얘지는 것은, 멀리 있어도 나이 든 사람인 것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이고,/

 

UN이 정한 정식 노인 나이 65세를 지난 노년은 인생의 최종 단계로, 중년 다음에 해당하는 일련의 단계로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을 지칭하며 어르신, 시니어, 실버, 연장자 같은 말로 완곡하게 말하는 시기이다. 누구나 노년은 처음이라 외모나 건강의 변화로 인해 생길 좌절감, 아픔이나 치료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다. 좋든 싫든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인 나이 듦의 과정에서 아프거나 고통이 있어도 그것을 친구 삼아 체력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루하루의 일상이 쌓여 삶이라는 큰 덩어리를 만들어내며, 전체로서의 삶을 이해하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우리는 한정된 삶 동안 머릿속에 그린 종착지에서 삶을 되돌아보고 평가해야 한다. 몸은 늙어도 마음과 인격은 낡지 않고 성숙해져 남은 삶이 걸림돌인 아닌 디딤돌이 되어 멋있고 풍성해지길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