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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의 진료영역

시론

대한구강악안면외과학회에서는 매년 7월 21일에 학회 주최로 조그만 기념식을 갖는다. 그날은 7년전 치열했던 한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던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봄부터 여름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치과계에 유래가 없는 치열한 진료영역 다툼이 있었다. 치과의사가 보톡스를 이용하여 턱부위가 아닌 미간부위에 침습적 미용 시술을 한 것이 문제된 것이었는데, 이에 대하여 의과측은 치과의 진료영역은 치아, 치주조직 및 기껏해야 턱뼈와 구강이라고 주장을 하였고, 그 영역과 아주 먼(?)거리에 있는 미간의 주름은 치과의 영역이 아니므로 이 부위에 침습적인 미용시술을 한 치과의사는 진료영역을 넘어선 불법의료를 행한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에 고발을 당한 치과의사가 1심과 2심에서 패소를 하였고, 이게 대법원까지 가게 되면서 국가적으로 의사와 치과의사의 영역을 구분지어야 하는 중대한 상황이 되며 만일 치과가 패소할 경우 일반 국민들에게 이미지 실추 및 그간 안면에 미용보톡스를 시술하던 치과의사들이 모두 불법행위를 시행한 것이 되어 많은 치과의사들이 곤란한 상황이 될 지경이었다.

 

이는 특히 구강악안면외과의사들에게는 더욱 치명적인 상황이 될 수 있었는데, 외상, 종양 등의 치료를 위하여 안면부에 다양한 수술을 시행하며 일생을 헌신해 온 많은 구강악안면외과의사들은 그간 천직으로 알고 갈고 닦은 의술이 그냥 불법 “야매” 진료화 될 수도 있었기에 그야말로 사생결단의 자세가 되었다. 당시 치과의사협회의 요청으로 우리 학회가 총대를 메게 되었고, 부랴부랴 대책위가 꾸려졌다. 대법원은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3인의 대법관 판결에서 대법관 전원합의체로 결정하였고, 한 술 더떠 그분들의 부담을 덜고자 대중에게 공판 상황을 생중계하는 “공개변론”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제는 미간 보톡스를 하냐 마냐가 아닌 치과의 안면부 수술 허용에 대한 판결이 된 것이다. 대책위가 꾸려진 건 4월 중순이었고, 공개변론은 5월 19일, 그 중차대한 변론 준비에 한 달여의 시간 밖에는 없었다. 공개 변론전에도 원고와 피고간에는 수차례 서면 공방이 오갔는데, 일반 형사사건이 아닌 전문적인 내용의 공방전이 이뤄지는 통에 결국 그 의견서들은 대책위에서 주로 작성할 수밖에 없었고 그 초고를 변호사들이 법리적인 관점에서 수정해 주는 방식으로 의견서 작성이 진행되었다. 의과측의 주장은 시종일관 치과영역은 치아, 치주, 구강이라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그들 논리에 유리하게 서술된 치과쪽의 다양한 자료들을 제시하며 압박을 하였고, 우리측에서는 그들이 제시한 내용 한줄 한줄마다 반박 자료를 찾아 반론하였다. 언론을 통한 치과의사들의 무심한 한마디, 교과서 한줄 한줄 표현이 추후에 법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사태가 엄중하고, 1, 2심까지 패소한데다, 대법원은 본 사건에 대한 공보에서 “대중의 통념”역시 중요한 판결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했던 바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었고, 공개변론 직전 보건복지부에서 나온 의견서마저 우리에게 부정적이어서 우리측 분위기는 더욱더 좋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구강악안면외과학회 회원들 그리고 많은 치과의사들은 더욱 각오를 다지며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고, 수많은 필요한 반박증거를 확보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단결했었다. 어려울수록 뭉치고 단결하는 한국사람들 정신이 발휘되는 순간이었고, 당시 우리 학회와 치과계는 그랬던 것 같다. 의과는 많이 방심했던 듯한데, 여하튼 그들의 제출한 의견서를 읽으며 억울하고 분함에 밤잠을 못 이룬 날도 많았다. 개인적으로 만일 이 소송에서 지면 한국에서 치과의사 하는 것이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아예 이민을 가리라는 생각도 했었다.

 

다행히 이러한 절실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성공적인 공개변론이 되었고, 여론은 우리에게 우호적이 되었으며, 개인적으로도 공개변론 직후 몇몇 대법원 재판연구관(판사로서 대법원에서 판결문 작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들이 다가와 조용히 개인적인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는 것을 들으며 많은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이후에도 서면 공방과 여론전이 계속되었는데, 의과측에서는 우리측의 공개변론을 하나하나 반박하는 자료를 대법원에 제출하였고, 우리는 이에 대한 반박자료를 제출하였다. 이러한 서면공방은 최종 판결 전까지 두 세차례 이어졌다. 아울러 의협은 대국민 여론전으로서 “치과의사가 보툴리눔톡신을 시술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라는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전체 의사회원들에게도 문자를 돌려 관련기사에 댓글 및 주변에 여론 형성에 노력을 하라고 하기도 하였다. 이에 치과에서도 역시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반박을 하였고, 그렇게 공방의 나날 속에 최종 판결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판결은 곧 이어질 또 다른 영역분쟁의 주제였던 안면 미용 레이저 시술의 대법원 판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상황이기도 하였다. 공개변론의 좋았던 분위기도 어느정도 잊혀져 가고 하루하루 긴장의 나날이 계속되고 있던 차에 대법원은 공보를 통하여 7월 21일 최종 판결을 한다고 공시하였다. 당시 협회는 승소와 패소 모두를 가정하여 기자회견문을 준비하였고, 다행히 판결은 11대 2 압도적으로 치과의 승리였다.

 

치과측 참석자 모두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고, 그렇게 유난히 무덥고 길었던 여름은 시원하게 마무리 되었다. 판결문에서 치과 승소의 논리는 치과는 역사적으로 오래전부터 안면부의 치료를 해왔으며, 이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이루어져왔고, 안면부 미용치료 결과에 있어서도 의과에 비하여 부작용이 높지 않아 대중에 대한 위해도 없었다. 그리고 의술은 고정된 것이 아닌 사회와 과학의 발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기에 과거의 통념에 의한 진료영역은 충분히 중첩될 수 있고, 이를 법적으로 제한할 경우 의료기술의 발전에 저해되거나 일반 국민의 보건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이다. 공개변론 시 양승태 대법원장은 첫번째 질문으로 “치과에서 안면수술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럼 눈, 코, 입의 수술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이냐?”고 진료 영역에 대한 아주 직접적 질문을 던졌고, 이에 대하여 필자는 사시, 후각이상, 난청 등 기능적인 부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고 눈, 코, 입의 미용수술은 가능하다고 답한 바 있다.

 

판결 이후 치과의사에 의한 안면부 미용레이저에 대한 대법원 판결도 미간 보톡스 시술 허용의 법리와 일치하기에 바로 승소 판결이 나왔다. 물론 이런 판결 이후에도 이러한 시술이 의과의 우려만큼 치과계에 크게 보편화되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아마 대부분의 치과의사들은 그저 안면부 수술에 대한 우리의 자존심을 지킨 것에만 주된 의의를 두는 것이리라. 현재 대법원에서 판결한 법리상 치과의사의 진료영역은 기존의 전통적 치아, 구강, 턱 및 연관 부위(침샘, 저작근, 턱관절)의 기능적, 미용적 치료와 턱과 관련되지 않은 안면부(미간의 예로 판결함) 포함 안면부 전체의 침습적 미용시술(주사 자입을 하는 보톡스의 예로 판결함)에 해당된다. 하지만 아무리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번복되기 어렵다고 하여도, 치과에서의 시술들이 의과에 비하여 현저하게 환자에 해를 끼치거나 좋은 결과를 보이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재평가 될 수 있다.

 

최근까지도 치과에서의 독감 백신 투여, 발모제 처방,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의 유치 불소도포 등의 문제로 직역간 법정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법전문가는 아니지만 위의 대법원 판례에 비추어 보면 몇몇은 쉽지 않아 보이고, 승소를 위해선 전혀 새로운 법리싸움을 해야 할 수도 있어 보인다. 명심해야 할 점은 진료영역 분쟁에서 법적인 다툼이 예상된다면 반드시 이기는 싸움을 하여야 하고 승산이 없는 것은 처음부터 시도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어수선한 시대에 누가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치과와 의과가 조속히 합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서 부디 양쪽 모두 환자를 위하는 마음만으로 서로 존중하며 다툼없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