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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추락, 초중고만의 문제인가?

시론

지난 7월 18일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23살 2년차 교사가 교실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습니다. 고인이 교실을 그 장소로 택한 것은, 교실이 아니면 자신의 죽음이 왜곡되거나 조용히 묻힐 것이라 생각해서 였을까요? 교내에서 발생한 교사의 자살 사건은 국내에선 처음 있는 일이기에, 교단과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망사건은 선생님의 연령이 23살, 즉 교사 조직에서 가장 낮은 연령대에 속하고 우리 사회에 첫발을 내민 새내기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였습니다.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고 학교의 책임은 없다는 학교장 서명의 입장문이 발표되었고 개인 문제가 원인이라는 루머도 양산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담임한 학생들에게 정성을 들여 쓴 손편지가 한 학부모에 의해 공개되며, 아직은 이기적인 타인의 마음에 훼손되지 않은 순수한 제자를 사랑하는 고인이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고, 고인이 평소 학교생활을 밝고 성실히 하였다는 증언이 더해졌습니다. 올해 복수의 학부모로부터 걸려오는 반복적인 민원전화에 작년보다 10배는 더 힘들어 했다는 동료 교사의 증언들도 이어졌습니다. 교권추락과 붕괴 속에서 사회적 안전장치나 보호장치 없이 훼손된 교사전문성과 황폐해진 인간존엄성이 이 사망사건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이번 사건이 사회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까요? 아시다시피 교권추락은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언론에 교권추락과 붕괴라는 단어가 등장한지는 1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저출산 시대가 되면서 학부모의 자녀에 대한 불안감과 과보호 성향이 강해졌습니다. 학교에서 학생이 조금만 다쳐와도 민원과 항의가 빗발칩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교사 폭행은 더욱 유의하게 증가하였는데 (그림 1), 그 이유는 비대면 수업과 물리적 거리두기 시행 등으로 타인과의 거리감은 증가했고 타인에 대한 예민도가 증가한 반면 사회성은 저하되며 관계형성의 어려움을 겪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교육현장은 교사와 학부모의 협력 대신,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일방적 간섭과 비판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교권에 대한 학생인권만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으니 교권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학생인권 강조는 교권 침해의 핵심 요소는 아닐뿐더러, 이 두 가치를 대립구도로 설정하는 것은 더욱 지양해야 합니다. 모든 개인은 가치가 있고 존중받고 윤리적인 대우를 받을 권리를 타고났기에, 어느 집단에 대한 다른 집단의 권리강화라는 개념에서 다가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을 평가하고 위계를 부여함에 있어 학력과 자격을 핵심 척도로 삼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민의 전반적인 학력이 크게 높아진 상황에서 가방끈의 길이로 더 이상 교권을 담보하기는 어렵습니다. 학부모들의 간섭과 교권 경시현상 때문에 많은 교사가 강남지역 근무를 기피하고 전출을 희망하게 된 것은 이 맥락에서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는 의료현장에서 의사-환자-보호자간 관계에서도 나타나는 일입니다.

 

교육의 가치는 본질적 가치와 도구적 가치로 나뉩니다. 공교육은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반면 사교육은 교육의 도구적 가치를 중시합니다. 사교육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높은 기대와 의존 또한 교권확보 및 신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재화로 치환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교육 또한 상품으로 치부되고 학생과 학부모는 마트에 온 소비자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교육에 대한 시선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선생님은 더 이상 스승의 지위에 머무르기 힘듭니다. 그저 손님이 원하는 방식의 서비스를 요구받게 됩니다. 사교육은 더 비싼 소비재, 공교육은 저렴한 소비재로 인식되고 있고, 공교육은 죽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현장에서 들리고 있습니다. 공교육에 대한 사회적 조치가 없다면 교사뿐만 아니라 공교육 전반에 대한 가치 절하와 경시는 지속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뜻밖에 아주 야비하고 어이없는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부조리한 삶을 마주하기도 하는 것이죠. 독일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이러한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짜증내지 말고, 그저 지식이 하나 늘었다고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프랑스 철학자인 카뮈(Albert Camus, 1913~1960)는 한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는 이유와 가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의미를 추구하지만, 이유가 없는 삶은 견디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가령 선생님이 되고 싶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희망은 고인이 힘든 과정을 거쳐 마침내 교단에 선 큰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교단에 처음 섰을 때 세상이 준 고마움과 아이들로부터 받는 에너지는 세상의 부조리함이 있어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방어막 없이 견뎌야 하는 반복된 타인의 언어폭력과 심리적 압박, 개인에 무관심한 조직과 사회는 살아가는 이유와 가치를 잃게 하였을 것입니다.

 

‘알아서 해라’는 것은 사회적 수준에서는 통용되지 않습니다. 개인 수준에서의 도덕성을 높이 존중하지만, 인간본성에 비추어 개인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에 가장 높은 우선권을 부여합니다. 여러 개인이 모인 곳에서 ‘알아서 잘 되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교권추락 문제는 초중고 교실에서 일어나는 지엽적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입니다. 문제 학생이나 학부모가 끼치는 악영향은 비단 같은 반 학생들과 선생님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입니다. 부조리한 학교 분위기, 나아가 그 세대가 성장해서 살아갈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 일이 헛되이 소비되지 않고, 법규, 즉 규칙과 조례가 제정·수정되어 선생님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나아가 우리나라 공교육과 질서를 바로 세울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합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