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가의 경쟁을 부추기는 각양각색 불법 의료 광고들. 치과의사들의 대다수는 그중에서도 비정상적인 수가를 내세운 할인 광고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치의신보가 창간 57주년을 맞아 치협 회원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불법 의료 광고 중 가장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유형으로 응답자 중 85.4%(427명)가 ‘비급여 진료 항목에 관한 과도한 수가 할인’을 꼽았다.
이어진 답변으로는 ‘치료 지원 금액을 명시한 금품 제공’(4.8%, 24명), ‘기사성 광고에서 누적 시술 건수 등을 강조’(3%, 15명), ‘각종 검사나 시술 등을 무료로 추가 제공’(3%, 15명), ‘선착순으로 혜택 부여하는 조건 할인’(2.2%, 11명), ‘친구·가족과 함께 방문 시 특정 혜택 부여’(1.6%, 8명)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사실상 10명 중 8명이 수가 할인 광고를 접했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이 같은 덤핑 광고에 대한 문제의식을 치과계가 공유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비정상적 수가 할인을 통해 개원가를 어지럽히는 일부 치과의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38만 원 임플란트를 내걸고 공격적 마케팅에 나선 이른바 ‘38 치과’가 등장한 이후 이를 표방해 홍보하는 덤핑 치과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실정이다. 그 탓에 정상적 진료를 이어오고 있는 개원가에서는 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 의료진 신뢰감 하락 경영악화도 우려
특히 불법 의료 광고가 치과계에 미치는 폐해를 묻는 물음에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4.6%(273명)가 ‘단순 수가 위주로 치과 의료 행위 왜곡’이라고 답변해 가격 경쟁이 불러올 의료의 가치와 본질 훼손을 가장 염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환자와 의료진 간 신뢰감 하락’(16.6%, 83명), ‘치과 간 경쟁 심화로 경영 악화’(13.6%, 68명), ‘치과의사 대국민 이미지 타격’(8.8%, 44명), ‘동료 치과의사에게 주는 상대적 박탈감’(6.4%, 32명) 등의 폐해를 걱정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아울러 이 같은 불법 의료 광고가 횡행하는 이유에 대해 60.8%(304명)의 치과의사들은 ‘치과 개원가의 과도한 경쟁’을 원인으로 꼽았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개원 환경으로 과열된 경쟁이 이 같은 패착을 불러오고 있다는 뜻이다.
또 이를 단속할만한 ‘법적 규제의 미비 또는 허점’을 원인으로 꼽은 답변도 24.6%(123명)로 높게 나타나는 등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어진 답변으로는 ‘저수가를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9.4%, 47명), ‘수가 비교 온라인 플랫폼 활성화’(3.4%, 17명), ‘신규 개원의를 위한 지원책 부족’(1.2%, 6명), ‘기타’(0.6%, 3명)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 같은 불법 의료 광고들은 어디에 가장 많이 퍼져 있을까. 치과 관련 불법 광고를 어디서 주로 접하는지 묻는 물음에 44.6%(223명)가 ‘인터넷 웹사이트 배너’라고 답했다. 또 ‘소셜 미디어 플랫폼(인스타그램 등)’(37.6%, 188명)이라고 답한 이들이 두 번째로 많았다.
대중교통과 현수막, 전단 등 오프라인 광고와 TV 또는 라디오 광고 등 기타 영역에서 불법 의료 광고를 접했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총 17.8%(89명)에 불과했다. 이를 종합해보면 전체 응답자 중 82.2%(411명)가 불법 의료 광고를 온라인에서 접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게 하다간 모두가 망한다” 치과계 위기감 팽배
치의 99%가 “환자들 불법 광고 영향 받을 것” 우려
회원 절대 다수 “불법 광고는 매출에도 악 영향” 인식
각종 혜택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의료의 본질을 저해하는 불법 의료 광고들. 치과의사들은 이 같은 행태에 환자들도 영향을 받는다고 우려했다.
불법 의료 광고가 환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묻는 물음에 설문 참여자 500명 중 98.8%(494명)가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답변한 이들이 54.8%(274명),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고 답한 이들이 44%(220명)였다.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답한 이들은 1.2%(6명)에 불과,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답한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이와 관련 실제 강남에 개원한 A 치과 원장은 “환자들이 다른 병원에서는 임플란트를 얼마에 해주는데 왜 여기는 가격이 다르냐고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지인을 데려올 테니 할인해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들도 있었다. 이게 다 불법 광고를 보고 나타난 현상”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런 상황이 최근 많이 벌어지는데 안타깝다. 지나친 할인과 과장된 홍보 등을 진행하는 소수의 병원 때문에 다수의 치과의사가 비정상적인 취급을 받는다”며 “이렇게 가다가는 다 같이 망하는 길로 접어들 거다. 이제는 그냥 지켜보고 놔둘 수 없는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 수가 표기 전면 금지 법안 ‘첫손’
특히 이같이 불법 의료 광고에 무분별하게 노출된 환자들이 많아질수록 병원 경영에도 직접적인 타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불법 의료 광고에 의한 매출 하락 정도를 묻자 32.2%(161명)의 응답자가 ‘약 20% 하락’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약 30% 하락’(30.8%, 154명)할 것이라는 답변이 두 번째로 많았으며 ‘특별한 영향 없음’이라고 답한 사람은 4.2%(21명)에 그쳤다. 이를 종합해보면 전체 응답자 중 95.8%(479명)가 불법 의료 광고로 인해 매출이 하락한다고 답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병원 경영에 심대한 위협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대개의 치과의사는 공정한 치과계를 위해 홍보 절차와 규정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도한 의료 광고를 진행하고 있거나, 했던 경험이 있는지 묻는 물음에 94.8%(474명)의 치과의사들이 경험이 없다고 답변했다. 그 이유를 묻는 물음에는 ‘개인 경영 철학과 맞지 않아서’(72.2%, 342명)라고 답한 이들이 가장 많았다. 반면, 불법 의료 광고를 해본 적 있다고 답한 사람(26명) 중 53.9%(14명)는 ‘신규 개원 당시 신환 모집’을 위해서였다고 털어놨다.
이같이 개인 차원의 자정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회원들은 치협이 법적, 제도적 장치를 조속히 마련하는 등 강경한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치협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묻는 물음에 응답자의 42.6%(213명)는 ‘수가 표기 광고 전면 금지 법안 통과’를 염원했다. 특히 지난 8월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비급여 진료비용을 표시하는 광고 자체를 금지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안하는 등 국회 차원의 관심도 적지 않은 만큼 이에 치과계의 대의를 모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밖에 치협이 해야 할 일로 ‘광고로 환자 유인 및 알선 치과 고발’(27.4%, 137명), ‘자율징계권 확보 등 협회 권한 확대’(16.2%, 81명) 등 적극적인 대처를 원하는 목소리도 높았으며 ‘올바른 치과 의료 관련 대국민 홍보’(7%, 35명), ‘의료광고 심의 대상 매체 확대 실시’(6%, 30명)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잇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