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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와 용지니어스키친

Relay Essay 제2593번째

병원에서 실습생들이 재잘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2005년 치위생사 첫 출근을 앞두고 긴장과 설렘으로 밤잠 설쳤던 때가 떠오르는 요즘입니다. 저는 진료실에서 치위생사로 7년을 일한 뒤 상담실장, 총괄실장을 거쳐 고객 커뮤니케이션을 책임지는 고객관리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커리어의 절반이 훨씬 넘는 기간을 고객과 함께 했습니다. 고충도 있었지만 보람된 기억이 많은 걸 보면 이 일이 천직인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저는 병원 매출을 늘리는 공을 인정받아 현재 위치에 오른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매출만 따졌다면 아주 평범한 상담실장에 그쳤을 겁니다. 하지만 제 스타일은 뚜렷했어요.

저는 진료 시간이 딜레이 될 정도로 상담 시간도 길었고 스몰토크가 많은 편이었어요. 고객들이 살뜰히 챙겨준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더해 우리 병원 치료에 확신을 갖게 된 고객들이 늘면서 소개 고객도 함께 늘어났습니다.

“만족스러운 진료를 경험한 고객의 입보다 강력한 마케팅은 없다”라는 격언에 비춰보면 ‘진짜 마케팅’을 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울러 당장의 매출에 연연하지 않는 병원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짐작해봅니다.

대표원장님이 고객을 대하는 가치관과 신념, 태도를 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흡수했나 봐요. 직접 진료계획을 설명하고 애로사항을 듣고 해결하려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정성을 느꼈습니다.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모습도 울림이 컸습니다. 소통과 진정성. 두 가지는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관되게 강조하는 데, 우리 병원이 이어가야 할 문화입니다.

저는 소위 VIP 고객관리가 주 업무다 보니 후배 상담실장이나 주변에서 고객관리 노하우가 무엇인지 궁금해합니다. 발표 자료를 만들어 교육해달라는 요청도 들어옵니다만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시중에 나온 서적에 이미 다 나와 있는 내용을 제가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진심은 다 통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 마음이 고객에게 전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모든 환자가 원하는 건 비슷합니다. ‘1. 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2. 내 현재 상태와 치료계획을 세밀하게 듣고 3. 과잉진료 없이 4. 가성비 좋다고 느낄 수 있게 하면서도 자존심은 절대 상하지 않게’ 역지사지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답 아닐까요. 실천이 관건입니다.

오전 회의를 앞두고 노트북을 열면 관리 시트에서 연예인, 기업인, 법조인, 의료인, 인플루언서 등 수많은 셀럽의 이름을 마주합니다. 그 이름이 활자 이상의 의미를 가지려면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게 가장 좋지만, 어렵다면 카톡보다는 전화드리고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게 제 신조입니다.

작은 동정 기사라도 보도되면 축하 인사를 건네고, 정기검진도 일정도 환기해 드립니다. 내원하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생각보다 쉬운 일이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저는 고객과 희로애락을 같이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 부장이 신경 많이 써준 거 잘 알고 있어요.” “내가 진짜 좋다는 여러 병원 다녀봤지만, 여기는 진짜 단점이 없어요. 배려해 주는 거, 저는 그게 좋았어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치료가 끝나갈 즈음 저에게 건넨 말에 감사하고 놀랐습니다. 국내외 모든 분야에서 일류 서비스를 경험한 분의 찬사였기 때문에 말의 무게가 달랐죠. 얼마 후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적으로 거듭 우리 병원을 칭찬해 줬습니다. 프라이빗 요리 공간인 ‘용지니어스키친’에 원장단과 함께 작년에 이어 올해도 초대를 받았습니다.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대기업 부회장도 다른 고객과 똑같이 대우했다면 거짓말이라고 여기겠지만 정말 큰 차이가 없습니다. ‘생각보다 쉬운 일이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정 부회장의 상황에 맞게 한번 더 생각하고 실천했습니다. 정 부회장과의 인연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보람된 순간을 꼽으라고 하면 주저 없이 성난 고객이 충성 고객으로 바뀔 때라고 합니다. 둘의 경계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진료 전 충분한 설명을 들었다면 이해될 법한 상황도 설명이 소홀했거나 무심결에 넘어갔다면 오해를 부르고 얼굴을 붉힐 수도 있습니다. 세심하게 배려하고 진심을 다하면 충성 고객이 되고 충성 고객이 다시 팬이 됩니다. 

AI, 챗GPT, 로봇 등이 사람을 대체하는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만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감정 교류는 대체할 수 없습니다. ‘소통과 진정성’을 향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동료, 선후배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