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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교정, 투명해지는 의사

시론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미식축구 경기가 슈퍼볼(Super Bowl)이다. 올해도 1억 2천만 명이 시청한 이 슈퍼볼 경기에는 야구공부터 하프타임 쇼, 그리고 수상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 광고가 따라붙는다. 특히 슈퍼볼 중간에 삽입되는 광고의 효과가 탁월하여, 기업들이 30초당 700만 달러(약 84억)가 넘는 광고비를 지불하면서 제품 마케팅에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다.


투명교정장치(clear aligner)인 인비절라인(Invisalign)을 운영하는 Align Technology사는 2020년부터 이와 같이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지니고 있는 슈퍼볼을 운영하는 National Football League (NFL)의 공식 후원사를 맡고 있다. 투명교정으로 치열을 교정한 우람한 미식축구 선수들이 빠짐없이 인비절라인의 광고에 등장한다. 2024년 NFL 시상식도 이 회사가 주최하였다. 또한 교정장치물을 담는 케이스에 구단의 로고를 인쇄하여 치과에서 판매하고, 그 수익을 구단에 지원하는 등의 소소한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공격적인 마케팅과 함께 유명 가수나 운동선수들과 같은 셀럽들이 인비절라인을 이용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에서는 투명교정이 치열 교정의 막강한 강자로 등장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인비절라인은 작년 한 해 동안 1700만 명의 환자를 치료하여 39억 달러(약 5조 3천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최근 해외 치과교정학 학술지에서는 투명교정으로 악교정 수술을 시행한 결과를 보고하는 논문이 붐을 이루고 있다. 마치 10년전에 선수술 개념이 대중화하면서 악교정 수술 관련 논문 주제가 선수술로 도배가 되던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디지털로 치열을 스캔 한 이후 차례로 스플린트만 끼워주면 치열교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통적인 브라켓과 와이어를 장착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치열 교정에 대한 접근이 훨씬 쉬워졌다. 치과의사 입장에서는 디지털로 치아 이동을 예측하여 장치물을 회사에서 만들어주기 때문에 환자에게 투명교정 치료를 권유하기가 용이하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치열교정이 치과교정과 전문의의 고유 영역이었다면, 투명교정은 일반 치과의사도 해볼만한 치료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다만 진료수익의 상당 부분을 투명교정 회사에 지불해야 하고, 진료 과정 자체를 회사에 의존해야 하므로, 치과의사는 수익뿐만 아니라 전문 영역을 영위하던 독점적인 지위도 회사와 나누어 가져야 한다. 미식축구에서 보이는 인비절라인 광고를 보면 저 광고비가 누구 주머니에서 나왔나를 생각하게 된다. 


최근 일상생활과 의료의 모든 영역에서 디지털이 도입되어 소리 없이 획기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으나 핸드폰은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이미 1700만 명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데이터를 막강하게 축적한 인비절라인이 언젠가 치과의사가 필요 없거나 아니면 최소한 치과의사가 주도권을 가질 필요가 없는 치열교정을 구현할 수 있는 수준, 즉 기술의 특이점에 도달하지 않을까?


이미 10년 전에 치과의사 없는 치열교정 시스템을 개발한 미국의 Smile Direct Club이라는 회사에서 우편 주문 투명교정(mail-order clear aligner)의 방식으로 12개국에 원격 투명교정을 진행하였다. Smile Direct Club은 인비절라인의 60% 가격으로 치열교정비를 제시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인상재, tray, retractor를 환자에게 배송하여 인상을 체득하게 한 후, 이것을 회사에 다시 보내면 투명교정장치를 제작하여 환자에게 보내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치과의사와의 대면진료가 없어서 치료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점이 큰 문제로 지적되면서, 결국 - 다행스럽게도 - 작년 9월에 파산하였다. 


하지만 환자 데이터가 쌓이고 인공지능에 의한 치열교정 알고리즘이 더욱 정교하게 진행되면 진료실에서의 대면진료가 최소화 되지 않을까? 환자들은 데이터와 경험을 무한정 축적할 수는 없지만 “진료 경험에 확신을 가지는 의사”를 선호할까 아니면 빅데이터와 AI가 알려주는 알고리즘에 충실히 따르는 “치료에 실패하지 않는 의사”를 선호할까?  


7년 전 알파고와 이세돌이 처음 대국을 할 때는 누가 이길지가 관심사였지만, 요즈음 인간이 AI바둑을 능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이제는 알파고가 어떻게 바둑을 두는지를 배우기 위하여 인간이 알파고에 접속한다. 


모든 것을 노출시키는 투명한 교정장치는 치열교정이 가지는 전문성의 비밀을 해체하였고, 맑고 매끈한 장치물의 표면과 내면은 환자들과 의사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투명교정이 발전할수록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회사의 컴퓨터가 데이터 획득의 승자가 된다. 투명교정은 치과의사도 존재감이 미미한 투명한 존재로 만들 수 있다. 데이터의 주도권을 뺏길 때 치과의사들이 무엇으로 살아남을지 이제 그것을 고민할 때가 되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