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실체나 현상을 보고 명칭을 붙이는 것이, 원래 존재하는 것을 단순히 지칭하는 행위인가 아니면 무엇인가를 새롭게 창조해내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 김춘수의 시 “꽃” 에서는 대상에 대하여 이름을 정의하였을 때 새로운 의미가 창조된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무엇인가의 질환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MRONJ(약물관련 골괴사, Medication-related osteonecrosis of the jaw)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 이전에는 모호했고 파편처럼 떠다니던 증상들의 집합이, 세밀한 관찰을 거쳐 하나의 특정 질환으로 정의됨으로써 비로소 질환의 치료와 예후가 생기는 전형적인 예가 바로 MRONJ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정의가 계속 변화하면서 질환의 성격도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약물관련 골괴사는 2014년에 MRONJ로 명명되기 전에는 2007년 BRONJ (Bisphosphonate-related osteonecrosis of the
고등학교 시절에 진로를 고민하여 마침내 치과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이 앞날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다가, 6년간의 공부를 마칠 즈음 오랜만에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예전에 수련할 임상과를 선택하는 것은 그야말로 주위 사람들의 영향이 컸다. 평소에 잘 지내던 선배가 자기가 전공하던 과를 권유하거나, 성적이 좋은데 기존의 성적 좋은 선배들이 선호하는 과를 따라 하다가 보니, 또는 실습을 돌아보니 교수나 선배가 일하는 것이 멋있어 보여서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즈음 학생들은 단순히 전공의 과정이 편하다고 해서, 전공의 월급을 더 받는다고 선택하지는 않는다.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전공은 1) 수련 후 기대하는 수입이 많고, 2) 워라벨이 보장되는 전공이며, 3) 수련과정을 거친 자체가 영예스럽고, 4) 수련 후의 진료범위가 광범위하다고 생각이 될 때, 5) 지원자는 많은데 수련할 자리가 한정되어 있는 전공이다. 지금 치과 전문의 수련의 경우, 인기과와 비인기과의 양극화가 고착화 되어가고 있다. 의과 전공의의 경우 보험 수가 또는 최근 개원가의 페이닥터와 병원 봉직의 수급 동향에 따라 전공별 지원율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한 치과의료의 새로운 트렌드나 진료방식을
이반의 아버지와 가브리엘의 아버지는 사이좋게 이웃하여 평생을 살았다. 두 집안 식구들도 서로 도와가며 농사를 짓고 넉넉하게 살림을 유지하였다. 이반의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 병든 지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이반의 암탉이 가브리엘 집으로 가서 알을 낳았다. 이반의 며느리가 가브리엘의 집에 가서 자초지종을 말하다가 가브리엘의 아내와 우연히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 험한 이야기가 오가면서 시어머니인 이반의 아내가 와서 합세하고 급기야 두 집안의 가장인 이반과 가브리엘까지 뒤엉켜 걷잡을 수 없는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 이후 온갖 사소한 일에도 두 집안은 참지 못하고 7년 동안 다투게 된다. 양 집안이 법원에 앞다투어 고발을 하는 와중에 드디어 가브리엘이 법원에서 태형을 당하는 결정이 내려지게 되었다. 이에 판사는 직권으로 형의 집행을 중지하고, 마지막으로 두 집안이 더 이상 다투지 말고 화해할 것을 권유하였다. 하지만 그날 저녁, 가브리엘은 분노하여 이반의 집에 불을 지르려 하였고 이것을 이반이 직접 목격하였다. 불을 빨리 꺼야 한다는 생각보다도 가브리엘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불지르고 도망가는 가브리엘을 쫓아가다가 가브리엘에게 맞아서 기절하게 된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미식축구 경기가 슈퍼볼(Super Bowl)이다. 올해도 1억 2천만 명이 시청한 이 슈퍼볼 경기에는 야구공부터 하프타임 쇼, 그리고 수상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 광고가 따라붙는다. 특히 슈퍼볼 중간에 삽입되는 광고의 효과가 탁월하여, 기업들이 30초당 700만 달러(약 84억)가 넘는 광고비를 지불하면서 제품 마케팅에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다. 투명교정장치(clear aligner)인 인비절라인(Invisalign)을 운영하는 Align Technology사는 2020년부터 이와 같이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지니고 있는 슈퍼볼을 운영하는 National Football League (NFL)의 공식 후원사를 맡고 있다. 투명교정으로 치열을 교정한 우람한 미식축구 선수들이 빠짐없이 인비절라인의 광고에 등장한다. 2024년 NFL 시상식도 이 회사가 주최하였다. 또한 교정장치물을 담는 케이스에 구단의 로고를 인쇄하여 치과에서 판매하고, 그 수익을 구단에 지원하는 등의 소소한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공격적인 마케팅과 함께 유명 가수나 운동선수들과 같은 셀럽들이 인비절라인을 이용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에서는 투명교정이 치열 교정
안동 도산서원 앞마당에 길게 뻗은 흰색 고목나무 너머로 호수같이 펼쳐져 있는 낙동강이 보인다. 조용히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 속에 섬처럼 솟은 시사단(試士壇)이 있다. 이 시사단은 1792년 정조가 존경하던 퇴계를 추모하기 위하여 특별히 과거시험(도산 별과 陶山別科)을 실시한 것을 기리는 곳이다. 당시 도산 별과에 응시하기 위하여 전국 각지에서 1만명의 유생이 도산서원에 몰렸고 7228명이 응시한 것으로 되어있으며, 최종 1등과 2등을 선발하여 초시와 복시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과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특별자격을 주었다고 한다. 통상 조선시대 과거는 3년에 한번씩 치루어지는데, 크게 네 단계의 시험으로 나뉜다; ① 생원 진사시 (200명 선발), ② 대과 초시 (240명 선발), ③ 대과 복시 (33명 선발), ④ 대과 전시 (33명이 왕 앞에서 시험을 치고 순위를 정함). 마지막 전시에서의 1등이 장원 급제이며 종 6품으로 관직에 등용된다. 당시 조선시대 인구가 730만명 정도였으므로 현재 우리나라 인구 수를 고려하면 가장 첫 단계 시험에 통과하여 생원이나 진사가 되었다는 것은 지금의 인서울 의대에 합격한 것과 비슷하다. 복시를 통과하는 것은 산술
2022년 신학기가 되자 2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코로나19가 드디어 2급 감염병으로 바뀌면서 온라인 수업이 전면적인 대면 수업으로 바뀌었다. 수업전날에는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수업에 들어갔는데 뭔가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첫째, 학생들 책상 위에 필기구가 거의 없었다. 볼펜이나 노트 대신 태블릿 PC나 노트북이 있었고, 당연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노트에 필기하는 학생이 없었다. 둘째, 수업 중 내 눈을 마주치는 학생이 드물었다. 대부분 내가 미리 보내준 강의 자료를 각자 책상위의 컴퓨터 화면으로 보고 있었고, 교단 앞의 스크린을 보지 않았다. 수업 전에 미리 보내준 강의 자료와 당일에 보여주는 내용이 달라도, 달라졌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거나 학생들의 반응에 변화가 없었다. 셋째, 막상 학생들을 교실에 모아놓고 대면 수업을 하니, 내가 교실에 있다는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이 가상공간에 있는 느낌이었다. 즉 실제 학생들이 아니라 학생 얼굴 영상의 집합체 앞에서 강의하는 것 같았다. 내가 강의실에 있다는 것 빼고는 가상현실에 와있는 것 같았다. 이러한 변화가 낯설어서 대학생 딸아이에게 수업을 어떻게 듣는지 물어보았다. 딸아이는 노트북에 저장된 파일을 보여주
코로나19가 에볼라 바이러스 같은 제1급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되었던 2020년 12월 중순, 60대 남자 환자가 하악 정중부와 양측 과두 골절로 응급실에 내원하였다. 환자는 구강 내 다발성 열상으로 인한 구강 내 출혈과 양측 외이도 출혈, 치아파절과 충치로 인한 다수 잔존 치근이 관찰되었다. 환자는 발열, 호흡기 증상, 인후통, 근육통 등의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코로나19 “감염자” 또는 “감염의심자”로 분류되지 않았다. 응급진료 원칙에 따라 PCR 검사하기 전에 우선 응급처치를 하도록 구강악안면외과로 의뢰되었다. 당직 전공의는 구강 내 출혈부를 봉합하고 골절에 대한 악간 고정과 핸드피스를 이용한 잔존 치근을 발치하였다. 불행하게도, 다음날 병동 이송 직후에 확인된 PCR 검사 결과, 그 환자는 코로나19 양성으로 확인되었다. 무증상 코로나19 감염자였던 것이다. 해당 환자와 그 환자의 병실에 있었던 입원환자들도 모두 격리병실로 이송되었다. 그 환자의 진료에 관여하였던 응급의학과·이비인후과·우리 과 전공의, 응급의학과·외상 센터·병동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총 33명의 의료진이 무증상 감염자에 대한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2주간 자가격리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만(San Francisco bay)에서 치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란 Dr. Zeidler는 University of Pacific 치대를 졸업한 후 수년간 페이닥터로 일하다가 2012년에 독자적인 개원을 계획하게 되었다. 그때 마침 산호세에서 평생을 개원의로 일하다가 36년 만에 은퇴를 하게 된 Dr. Lund는 자신의 치과를 인수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만에서는 개원 경쟁이 매우 심하고 신규 개원자리를 찾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따라서, 환자 차트와 보험 청구기록에 의하면 최근 5년간 연간평균 72만에서 96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확인된 Dr. Lund 치과를 Dr. Zeidler가 인수하기로 한 것은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였다. 젊고 패기에 찬 Dr. Zeidler는 약 50만 달러를 치과 인수비용으로 지불하였고, 한 달 정도 두 사람이 함께 진료한 후 은퇴식까지 베풀어 주었다. 드디어 혼자서 환자를 보기 시작한 후 한 달이 지난 즈음, Dr. Zeidler는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첫 달 진료수익이 Dr. Lund의 예전 수익에 턱없이 모자라는 15,000달러에 불과했고, 환자 수도 급감한 것이
미국 연수 시절에 살던 곳의 쇼핑몰 앞에 자동차 수리점이 있었다. 그곳의 안내판에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Wait (대기실에서 기다리면) 100달러, Watch (수리하는 모습을 감시하고 있으면) 120달러, Help (도와주겠다고 나서면) 140달러”. 제대로 고칠까 의심이 되어 고객들이 엔지니어가 일하는 장면을 직접 봐야 하겠다고 나선다면 그때부터 고객과 회사 간에는 믿고 맡기는 “신뢰”관계가 아니라 부탁한 만큼 눈으로 보여주는 “계약”관계가 성립이 된다. 그 자동차 수리점은 고객이 신뢰해 주면 더 잘해줄 수 있다는 것을 위트 있게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신뢰한다고 하는 것은 내 눈에 직접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완전히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잘 알고, 모든 상황을 조절할 수 있다면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핸드폰에서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내 손안에 진실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타인을 신뢰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또한 신뢰라는 것은 모호하고 불분명한 상대를 내가 먼저 믿어야 하는 첫 단계를 거쳐야 한다. 나중에 배신당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쉽게 신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