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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이미연 칼럼

퇴근하는 길에 멀리 사는 친구의 어머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작년 여름에 우리 치과에 다녀갔던 친구가 며칠 전부터 잇몸이 부어 아파하는데, 사랑니 탓인지 어디가 탈이 났는지 걱정이라고 한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의료비도 비싸고, 의료 수준도 신뢰하기가 어려워 현지 치과에 가기가 싫다는 것이다. 며칠 후에 한국에 갈 수 있는데, 우리 치과에서 봐줄 수 있냐는 부탁이었다. 이럴 땐 오해 걱정 없이 예약해줄 수 있는 소소한 개원의라서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다음 날 출근해서 친구의 차트를 확인했다. 마냥 뛰어놀 나이였을 때, 땀 뻘뻘 흘리며 인간 루돌프로 봉사했던 나를 단박에 ‘이모’에서 ‘친구야’로 격상시켜줬던 그 꼬맹이가 벌써 커서 사랑니 걱정을 한다니, 직접 키운 것도 아닌데 감개무량했다. 올해 파노라마 사진을 다시 찍어보아야 정확하겠지만, 작년 파노라마로 미루어 사랑니 문제는 턱없이 먼 미래의 걱정이었다. 우식치아도 없고 양치도 잘하는 학생이었으니 그 사이 크게 나빠질 만한 것도 없다. 아마도 제2대구치가 맹출되고, 졸업이며 시험에 신경쓰느라 구강위생이 좋지 못해 잇몸이 부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친구야’의 모친에게 연락해 안심시켜주고 검진일 예약도 확정해주었다. 검진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환자의 이력과 경향을 알고 있으니 향후진행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고,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이벤트도 있다. 친구의 모친인 고등학교 동창의 고맙다는 인사를 들으며 가족 주치의로서 보람을 느꼈다. 

 

‘주치의’란 사전적 의미로 정해진 환자를 주로 치료하는 의사를 뜻한다. 전통적으로는 내과의사나 가정의학과 의사에게 그 역할을 기대해왔다. 우리나라의 국가규모가 성장하며 보건환경도 개선되었고, 이에 따라 국민건강도 크게 개선되었다. 우리국민 구강건강 수준도 전반적으로는 개선되었으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구강건강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음이 국민보건계정의 통계자료에서 확인된다. 특히 한창 치아가 발육하는 아동과 청소년 시기에는 치아우식의 발생이 빈번하는데, 우식치료비용이나 예방을 위한 구강위생교육에 있어 소득수준이나 사회 경제적 여건에 의한 격차가 관찰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청소년기의 치아 보전에 있어 학교와 가정의 관심과 더불어 보건당국의 제도적 보장과 주치의로서 치과의사의 필요성이 커진다. 그러기에 치과계에서는 이전부터 단순 구강검진에 그치지 않는 지속가능한 청소년의 치과 주치의 사업의 필요성을 개진하여 왔다. 

 

이번 달부터 제2차 아동치과주치의 건강보험 시범사업이 시행되었다. 제1차 시범사업이 행해진 광주광역시와 세종특별자치시를 포함해 서울특별시, 대전광역시, 강원 원주시, 전남 장성군, 경북 경주시, 경북 의성군, 경남 김해시 등 전국의 총 9개 시·군·구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아동치과주치의 건강보험 시범사업은 치의신보에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기존의 학교검진과 달리 아동이 등록된 주치의를 6개월에 1회 정기적으로 방문해 문진·시진·검사를 통해 치아의 발육 및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구강검진 결과에 따라 구강건강 관리 교육, 예방서비스를 받는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아동 구강건강관리제도이다. 치과계에서 그간 제안하였던 바와 같이, 소득 수준에 따른 아동의 구강건강 격차를 완화하고 어린 시절부터 올바른 구강관리 습관을 형성시켜 장기적으로 국민 구강건강 향상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정책이 추진된다고 한다.


앞서 경기도는 경기도 치과의사회와 협력하여 2019년부터 4학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생 치과주치의 사업’을 경기도 전역에서 실시한 바 있다. 경기도의 본격시행에 앞서 서울시, 경기도 성남시, 부산시 등에서도 시범사업이 실시되었고, 2019년 기준으로 서울, 경기, 성남, 부산, 울산, 인천, 부평, 목포 등 8개 시도에서 사업이 시행되었으며 사업비는 지역 여건에 따라 시비나 구비, 교육청 등에서 각기 다르게 지원되고 있었다. 그것을 이번에 국가사업으로서 건보공단에서 관리하는 국가검진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인 것은 고무적인 정책이라 생각된다. 특히나 검진과 진료를 이원화시키지 않고, 최초 검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해당 치과에서 진료를 이어갈 수 있게 고안된 프로세스는 주치의 사업이라는 이름에 걸맞아 보인다.

 

다만 수차례 치과의사협회와 여러 치과학술단체에서 제안한 바와 같이, 한 두 번에 끝나는 단발 이벤트가 아니라 학생이 정해진 치과를 지속적으로 방문할 수 있도록 해당 연령을 점증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일선의 진료기관의 지속적인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는, 서비스의 유지 및 내실이 확충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수가가 제시되어야 할 것이고, 물가지수와 연동한 가변형 수가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책사업의 당위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지속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치과의사들이 국가사업에서 소외되지 않고 보람을 느끼며 참여할 수 있어야, 우리나라에서 진료를 지속할 동기부여가 되며, 그럼으로써 내 친구와 같은 청소년들이 지역이나 사회여건에 관계없이 건강한 구강을 지키며 우리나라의 미래로 자라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지키기 위해 모두가 합심해야 할 때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