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해를 먼저 만날 수 있는 동해안 작은 도시에 살고 있다 보니 가끔 이른 새벽에 눈이 떠지면 새해 첫날이 아니더라도 집 근처 바다에 가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곤 한다. 특별한 결심을 하거나 꿈을 품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그 행위만으로도 가슴 뭉클한 무엇인가가 있다. 사람마다 해가 떠오름을 보고 생각하는 것은 다르지만 대개 희망이나 시작에 관한 것일 것이다.
지난 주말 대학 동기들과 졸업 35년과 환갑을 기념하는 1박 2일의 짧은 가을 여행을 다녀왔다. 가을이 내린 식물원을 걷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실없는 이야기를 하며 떠들었다. 숲속의 작은 음악회에서 들은 사철가의 가사는 가슴을 후벼 팠고 들을 만큼 익어야 들린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학창 시절 MT에서처럼 스물다섯 명 동기들이 좁은 숙소 방에 모여 간단한 다과를 앞에 두고 자신의 일상을 잔잔하게 이야기하던 밤에는 서로 살아온 과정이 달랐음에도 같은 지점, 비슷한 현실에 있음에 공감하기도 했다.
새벽 숲속 공기가 상쾌한 아침, 강원도의 투박한 아침을 들고 손영순 까리타스 수녀의 ‘죽음 앞에 선 인간’이라는 주제로 두 시간의 강연이 있었다. 잔잔한 우리 동기들의 성정을 믿고 한 번쯤은 멈춰 서서 죽음과 삶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져봄이 어떨까 하고 준비한 강연이었다. 놀러 와서 무슨 죽음에 관한 강의냐는 연자의 걱정과는 달리 동기들은 가장 의미 있는 시간으로 꼽았다. 최근 생각지 못한 건강 문제로 고전 중인 내가 그런 것과 같이 친구들도 비슷한 상황, 복잡한 시기에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열흘이 흘렀는데도 기억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중 일출의 시간은 설레고 짧지만, 석양의 노을은 해가 넘어간 후에도 꽤 아름다움이 오래간다는 말이 자꾸 마음에 떠오른다. 마지막 불꽃이라 그럴 수도 있을 것이고 아무튼 자꾸 생각이 난다.
큰 산이 있다.
먼저 앞서간 길을 보고 뒤따라가면서 좋은 길이면 따라가고 어긋난 길이면 피해 가면 되었기에 그가 앞서간 길을 따라가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마치 참고서 뒤의 해설집을 보면서 문제집을 풀어가는 것과 같다고 할까. 그래서 산이 간 길을 따라가면서 쉽게 행한 일이 큰 칭찬으로 돌아오기도 했고 소소하게 상을 받아서 쑥스러운 경험을 하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나의 네 아이들이 제법 자랑스러워하는 아빠가 될 수 있었다.
그런 큰 산이 지고 있다.
질병과의 큰 싸움에서 늠름하게 이겨냈던 그 산이 이제는 담담하게 석양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이길 수 없음을 통보받은 이후에도 멈춤 없이 그가 55년 동안 헌신한 사회봉사 운동에서 늘 해오던 일을 하면서, 누구도 앞서 가지 못한 길에 멋진 발자국을 찍으며 당당하게 나아가고 있다.
해가 떠오름이 가슴 떨리는 흥분이라면 하늘과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해넘이는 아름다운 평화인 듯싶다. 그가 그렇게 언제나처럼 당당하게, 멋지게 서서 세상을 아름답게, 붉게 물들이며 서쪽으로 가고 있다.
결이 달라 극복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음에도 치과의사 이대원. 나의 아버지. 당신은 충분히 멋진 치과의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