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역 인근에 위치한 A치과. 비영리사단법인(이하 B법인)의 이름이 새겨진 파란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쉴 새 없이 노인들을 데리고 A치과를 들락거린다. 패턴은 똑같다. 봉사자가 나와 어딘가에 전화를 한다. 전화 내용은 치과 위치에 대한 설명. 그리고 100여 미터 남짓 머지않은 곳으로 마중을 나가면 노인 한두 명이 기다리고 있다. 자원봉사자는 그렇게 만난 노인을 치과로 데리고 들어간다. 개중 조끼를 입지 않은 중년 여성은 치과 앞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무작위로 명함을 건네며 “임플란트, 틀니 치료 필요하냐?”고 물어본다. 명함을 건네는 대상의 기준은 노인이다. 명함에는 단체명, 자원봉사자명과 함께 ‘명함을 가지고 오셔야 혜택을 드립니다’라고 표기돼 있다. 때로는 하얀색 승합차량이 치과 앞에 노인들을 내려주기도 한다.
A치과와 B법인이 연계해 부평역 일대에서 벌이고 있는 환자 유인·알선 정황에 지역 치과계가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만 65세 이상 건보 적용 임플란트·틀니치료 대상 노인이라면 소득과 가계 생활수준을 묻지 않고 본인부담금을 지원하며, 자원봉사자로 불리는 중개인을 동원해 지원 대상에 한정을 두지 않고 지역 노인들을 치과로 끌어들이고 있다. 치과 안은 자기 차례의 상담과 진료가 언제 올지 모르는 데 대한 노인들의 볼멘소리로 아우성이기 일쑤. 해당 치과의 진료에 불만을 품고 주변치과에 문의를 해 오는 노인들의 상담사례가 늘고 있다.
A치과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 한 노인은 “진료가 마음에 안 든다. 돈을 내고 좋은 데 가서 해야지 순 엉터리”라고 토로했다. 인근의 한 치과 원장은 “문제가 커지기 전에 해당 치과의 운영 행태에 대한 사법당국의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 노인 환자로 꽉 찬 대기실…진료 대기·치료 불만 아우성
B법인은 지난해 8월 서울시로부터 허가를 받은 비영리법인으로, 고령 및 취약계층 어르신에 대한 의료비 지원을 목적사업으로 내걸고 있다. 현재 서울시 내 8개, 인천시 내 1개 등 총 9개 치과와 연계한 건보 임플란트·틀니진료에 대한 환자 본인부담금 지원을 주력사업으로 내세우고 있다. 노인주간보호센터 등 장기요양기관과 연계한 환자 모집, 일명 자원봉사자로 불리는 중개인을 통해 환자 모집에 나서고 있다.
해당 법인 홈페이지에서 진료비 지원 대상은 건보료 납부 금액 하위 20% 이내의 65세 이상 노인 또는 장애등급 1~3등급 장애인이 우선 대상이라고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건보 보철 진료가 가능한 연령 여부만을 따져 환자를 한정 없이 모집하고 있다. 관련 재원은 후원금을 통해서 마련되며, 그 출처나 후원내역을 밝힐 의무는 없다는 게 B법인의 설명이다.
B법인의 협력의료기관으로 지정돼 환자를 공급받는 A치과는 부평역 인근으로 지난해 말 이전 개원해 건보 임플란트·틀니 진료에 주력하고 있다. 개원 초기부터 자원봉사자들을 내세워 대로변의 행인을 대상으로 환자 유인에 나서 지역 치과계의 공분을 샀다. 인천 시내 곳곳에 걸린 플래카드나 행인들에게 뿌려지는 홍보명함을 통해 B법인 자원봉사자에게 전화를 걸면 연결해 주는 곳이 바로 A치과다. 전화 상담을 하는 자원봉사자는 반드시 누가 소개해 줬는지를 치과에 얘기하라고 당부한다. 그래야 자신에게 수수료가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B법인 자원봉사자라고 하는 이들은 구인사이트에서 ‘어르신 상담영업 프리랜서(파트타임)를 모십니다’란 제목으로 모집되고 있다. 건당 5만 원의 인센티브에, 우대조건으로 ‘영업에 자신 있는 분’을 내걸고 있다.
법률 전문가는 이러한 환자 모집 방식에 대해 의료법 제27조 제3항을 통해 금지하고 있는 환자 소개·알선·유인 등의 사례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사법당국의 적극적인 조사 의지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더불어 B법인과 같이 의료기관과 연계해 본인부담금을 지원하는 사업 형태에 대해서도 정상적으로 환자 본인부담금을 대납하고 있는지에 대해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의료 복지 지원 사업의 경우 관련 업체나 재단이 당장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대납하고, 후에 협력 의료기관에서 기부금, 리베이트 등의 형태로 제원을 다시 충당하는 형태를 본인부담금 면제를 위한 편법으로 법률에서 금지하고 있다. 실제 과거 한 사회복지재단이 환자들의 본인 부담금을 대납하고, 재단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의료기관이 본인부담금 이상의 금액을 후원금 명목으로 재단에 다시 기부한 행위가 문제가 된 판례가 있다.
특히, 이 같이 민간단체가 기부금을 받고 특정 협약 의료기관으로 환자를 유인·알선하면서 본인부담금을 면제하는 행위에 대해 지난 10월 진행된 보건복지부 국감에서도 국회 차원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해당 행위를 의료법에서 금지하는 유인·알선행위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해석한다며, 해당 사례에 대해 지자체와 협조해 조치하겠다고 답변 한 바 있다.
이와 관련 B법인은 자원봉사자의 경우 A치과에서 홍보비 차원에서 인센티브를 지급하며 봉사자 수 등을 임의로 운영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A치과는 자원봉사자 운영은 자신들과 무관하게 B법인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수당은 전혀 모르는 일이고 대로변 등에서 환자 모집행위도 일체 하지 않았다고 잡아뗐다.
B법인 측은 자신들의 사업 형태가 모두 합법이라는 설명. B법인 관계자는 “협력 치과 선정 기준은 어르신들을 진료할 수 있는 능력이다. 대부분 임플란트를 해본 경험이 우리 협력 치과 만큼은 절대적으로 안 된다”며 “자원봉사자 운영은 홍보활동이다. 병원에 앉아 온라인으로 해 봐야 어르신들은 보지를 않는다. 인천의 A치과는 질이 떨어지는 자원봉사자가 많아 대대적으로 수술을 하려는 치과”라고 말했다. B법인 관계자는 “좋은 일을 하는데 치협에서 자기들밥벌이가 떨어져 나간다는 이유로 우리를 비난하는 것에 어이가 없다”고 덧붙였다.
# 치의 신뢰 하락, 환자 피해 확산 우려
이와 관련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고 있는 인천지부는 환자 유인·알선 행위 증거, 요양급여비용 허위·부당청구 의심 사례, 환자 피해 사례 등을 수집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경찰 고발 등에 나설 방침이다.
인천지부 관계자는 “A치과의 불법 정황에 대한 증거를 더 모아 건보공단이나 심평원, 경찰 등에 고발할 예정이다. 최근 A치과를 통해 발생하는 환자 피해 사례를 보면 앞으로 비슷한 피해 환자가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A치과의 운영 형태를 모방하는 아류 치과가 계속해 나올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서 일이 터지고 나서는 늦는다”며 “이런 치과들로 인해 전체 치과의사에 대한 환자 불신, 신뢰도 하락, 무엇보다 직접적인 환자 피해가 우려된다. 지금까지의 불법 정황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조치가 취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한 문제점을 치협도 인지, 지난 10월 28일 B법인의 본인부담금 지원 사업 관련 자료들을 보건복지부에 전달하고 문제점 검토 및 대책 방안을 요청한 상태다.
A치과와 현재 분쟁상태에 있는 한 환자는 “거리를 지나다 치과진료가 무료라고 쓴 플래카드를 봤다. 상담원이 임플란트를 저렴하게 해 준다길래 찾아갔다. 치과에서 브로커로 보이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 노인들이 너무 많아 난장판인 대기실을 보며 느낌이 이상했는데, 막상 무료로 임플란트를 해 준다는 말에 혹해 그냥 치료를 받은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며 “제대로 치료가 되지 않아 불만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환자 본인의 관리가 잘못됐다’는 답변 외에 책임 있는 대응이 전혀 없었다. 환자, 그것도 노인을 돈으로만 보는 이런 치과를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