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0월이면 스웨덴 왕립과학원이 노벨 과학상을 발표하는데 일본이 노벨 과학상 2관왕을 차지했다. 일본의 기초과학의 저력을 굳이 노벨상 숫자로 한국과 비교하면 27:0이다. 사카구치 시몬 오사카대 교수는 생리의학상, 기타가와 스스무 교토대 교수는 화학상을 받았는데 한 해에 두 분야 이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네 번째라고 한다. 1917년에 설립된 리켄(理化學硏究所)의 역사와 연구원들이 20~30년간 한 연구에 전념하는 풍토를 알게 되면 왜 일본이 기초과학이 강한지 알 수 있다.
기초연구만 해도 급여걱정 없고 독창적 연구를 독려하는 교토대의 연구 문화를 봐도 그렇다.
국립치의학연구원 설립 법안이 통과된 지 곧 2년이 되어간다(2023.12). 뜨거운 유치경쟁 열기는 식었지만 보건복지부의 설립 타당성 및 기본계획연구 용역 발표를 앞두고 있고 부지 선정방식(공모 또는 지명)이 결정되면 다시 유치경쟁 열기가 재가열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원의 성공은 건물을 어디에 짓느냐보다, 어떤 연구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
첫째 허약한 치의학 R&D,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지금까지 치의학 분야는 국가 R&D 투자에서 늘 찬밥 신세였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인프라 때문에 큰 연구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대학의 연구실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학자, 연구원 풀이 절대적으로 적은 이유는 그만큼 유인요소가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국립치의학연구원은 이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국가적 투자의 심장이 되어야 한다.
정부, 학계, 산업계, 임상의 R&D의 허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최첨단 장비를 갖추고, 단기 성과 압박 없이 장기적인 기초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연구원이 돈 걱정 없이 혁신적인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국가가 확실히 지원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미명하에 빠른 성과를 요구하는 풍토에서 벗어나 “많은 돈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기초과학자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패스트 팔로잉 전략으로 선진국 초입에 들어온 한국은 중국의 등장으로 더 이상 이러한 방정식은 통하지 않는 시대에 들어섰다. 과학, 기술, 기초과학의 혁신만이 퍼스트 무버가 되고 무한 세계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 대한민국 치과계는 저가 마케팅 임플란트가 개원가를 황폐화시키고 있는데 기저에는 산업계의 혁신이 없었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둘째로 융합의 시대로 자율성과 개방성의 연구원이 되어야 한다.
치의학은 바이오, AI, 정밀신소재와 결합하는 융합 산업의 최전선에 있다. 일반의학이나 약학과 다른 특이성으로 인해 융합연구가 우선되며 타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클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연구원은 치과계 내부의 울타리에 갇혀서는 안 된다. 기초치의학이 발전하여 산업계와 연계되고 연구원은 중개 연구, 오픈이노베이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과 자유롭게 협력하는 개방형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치과 기술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국민의 구강건강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이 탄생한다.
셋째 ‘업적’ 아닌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연구원 유치 경쟁이 뜨거운 것은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는 연구원이 일부 정치인이나 지자체의 ‘업적’으로 소모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기관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공공성), K-덴탈 산업을 세계로 이끄는(산업화)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실정상 연구원은 당장의 수익을 내는 응용연구와 장기 성과를 내는 기초연구를 병행하는 게 타당하지만 속도보다는 축적의 깊이를 갖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제 치과계는 힘을 모아 국립치의학연구원이 이름뿐인 연구원이 아닌, ‘대한민국 치의학의 미래를 여는 엔진’이 될 수 있도록 연구 기능 강화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