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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황금벌판(4)/김영진

 

 

가을 추수가 끝나고 겨울이 되면서 석씨는 작업량을 두 배로 늘렸다. 경운기도 한 대 더 장만하고 매일같이 일꾼들을 사서 겨우내 쉬지 않고 돌덩이를 날랐다. 황씨네 야산과 갯가가 멀지 않아 하루에도 제법 많은 양의 돌덩이를 운반할 수 있었고 이듬해 봄에는 날물 때 진등개를 걸어서도 건널 만큼 돌둑은 점점 높아져 갔다. 


군청 건설과의 김 계장이 서류를 만들어 오면 융자금을 돌려주겠다고 제의했지만 석씨는 미리부터 빚을 내는 것이 좀 꺼림칙하기도 해서 능력이 닿는 만큼은 조금씩 혼자 힘으로 밀어붙여 보고 싶었다.


다행히 첫 아들 훈이를 얻고 나자 집안에는 좋은 일만 생겼다. 어머니의 건강도 좋아졌고 석씨의 바로밑 동생인 종훈이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이름난 시중은행에 취직이 되었다. 둘째동생인 종혁이도 명문사립대학의 졸업반이고 막내 여동생은 상고를 마친 후 읍내에 있는 꽤 큰 운수회사에 근무했다.


중학교만 졸업하고 곧바로 살림을 떠맡다시피 했던 석씨에게 십년이 넘도록 빨판상어처럼 거추장스러웠던 동생들의 학비 부담이 거의 마무리되어가자 한층 더 간척사업에 진력할 여력이 생겼다.
아내 박씨는 천성이 석씨처럼 부지런해서 노모를 극진히 모시고 고된 농사일과 함께 힘든 집안일도 잘 꾸려 나갔다. 이천 평이 넘는 밭에 재배한 마늘과 양파는 비싼 값에 도리로 밭떼기들에게 넘겨졌고 수확이 끝나면 곧바로 이모작 보리를 파종했다. 소는 다시 열 마리로 늘었고 박씨가 밤마다 드럼통을 실은 경운기로 읍내 여러 식당에서 거두어온 잔반으로는 돼지를 삼십 마리나 넘게 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순풍에 돛 단듯하던 석씨에게 첫 번째의 크나큰 시련이 닥친 것은 태풍에다 백중사리까지 겹쳤던 이듬해 팔월이었다. 서있기도 힘들 정도로 매섭게 몰아치는 폭풍과 함께 한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장대비가 밤새도록 쏟아졌다. 폭우를 견디지 못한 건너편 턱골 언덕 한 쪽이 무 썰 듯 떨어져나갔던 그날 밤, 범람하는 흙탕물 홍수와 사리가 끌고 당기면서 진등개를 막았던 돌둑은 형체도 없이 휩쓸려 사라졌다.
이년간 쌓아왔던 공든 탑은 무너지고 날물 때 드러난 진등개의 모습은 삼년 전의 잔잔함 그대로였다.


사나흘 후, 실의에 빠진 석씨를 찾아온 사람은 군청의 김 계장이었다.
“여보시오, 석씨. 간척사업이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오. 간척허가도 받았으니 농어촌진흥공사의 자금을 융자받으시오. 지금 논 값이 얼만데, 간척이 끝난 후 일부만 팔아 상환해도 당신은 큰 부자가 될 것이오. 오십 마지기만 팔면 융자금을 죄 갚고도 남겠소.”
“김 계장 님, 말씀은 참 고맙지만 제 힘 닿는 데까지 일을 다시 해 볼 생각입니다.”
“그러다가는 어느 천 년에 물골을 다 메우고 둑을 쌓겠소? 욕심 그만 부리고 내가 잘 처리해 줄 테니 융자를 받아 빨리 공사를 마치는 게 신상에 좋을 게요.”
“글쎄, 저는 큰 빚을 아직까지 내 본 적이 없어서… 잘못 빚을 얻으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던데 그게 걱정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아무나 공사 돈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소. 지금 석씨네 밭 이 이천 평 남짓 있다지만 값으로 치면 얼마 어치나 되겠소? 그것만 담보로 넣으면 내 그 밭 값보다 훨씬 큰돈을 만들어 줄 테니 얼른 공사를 끝내시오. 그리고 제대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 몇 년 안에 빚을 다 갚을 수 있지 않겠소?”
“고마운 말씀이오. 집사람과도 의논을 해 볼 터이니 사나흘만 기다려 주시구려.”
“잘 생각해 보시오. 옹고집 부려 길게 고생만 하지 말고 이것도 사업이려니 하고 요령껏 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그 날 밤 석씨는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여보, 군청 김 계장이 농어촌진흥공사 융자를 얻어다가 간척 일을 조속히 매듭짓는 게 어떠냐고 합디다.”
“글쎄, 좋은 생각이긴 한데 이자가 좀 비싸다지요?”
“사년 거치 십년 분할상환에 연리 십이 프로라 하던데, 그래도 시중금리보다는 한 오 프로가 싸다고 합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