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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수필]깨소금 중독/안계복

 


“그래서 그 다음은요?"
그녀가 나의 뒷말을 재촉했다. 나는 지금 그녀에게 깨소금 중독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중이다. 아름답고 날씬한 그녀는 깨소금 중독자이다. 나는 그녀와 같은 깨소금 중독자를 만날 때마다 대학 시절에 읽었던 ‘현명한 왕" 이라는 소설의 내용을 들려주었다.


“예, 깨소금 중독은 원만한 성생활과 일종의 보상 관계이지요. 왜, 우리말에도 금술이 좋은 부부를 가리켜 깨소금이 많아진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실제로 통계를 보면 그런 부부의 깨소금 소비량은 의외로 적습니다. 반면에 만족한 성생활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과량 소비를 하는 실정입니다. 그 현명한 왕이 통치하는 국가의 궁궐에서도 깨소금의 과량 소비는 문제가 되었지요. 아시다시피 어떤 궁궐에서나 만족한 성생활에서 소외된 사람은 많았으니까요. 예를들면 내시라든지 또 아직 왕의 은혜를 입지 못한 하급의 여성들…."


“그렇지만 그 분은 현명한 왕이잖아요. 당연히 해결책도 나와야지요. 안 그래요?"
그녀는 이런 질문을 하면서 손바닥에 놓인 깨소금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말하자면 금연을 결심한 사람들이 은단 갑을 몸에 지니고 다니듯이 그녀는 깨소금 갑을 지니고 다닌 것이다. 이것은 깨소금 중독의 초기 증상이다. 심해지면 우리가 요즘 비타민C를 섭취하듯이 작은 비닐 포장 속에 깨소금 분말을 넣고 다니거나 이 분말을 먹기 쉽게 압축하여 일종의 캔디나 과자로 만들어서 지니고 다니는 데 이것이 깨소금 중독의 중기 증상이다. 말기 중독자는 아직 나도 보지 못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사람들은 가정 내 샤워기에서 깨소금이 많아진다거나 욕탕 안에 깨소금을 언제나 채우고 지낸다는데, 그것은 나와는 격리된 공간의 일이라 내가 직접 목격은 하지 못했다.


“예, 그 분은 현명한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흉년은 어쩔 수가 없었지요. 궁궐의 경제 사정이 최악이었습니다. 그래도 애욕은 남다른지라 궁궐 안의 깨소금 중독 여인들을 궁궐 밖으로 방출하기는 싫었지요. 이럴 때, 그 분이라고 할 수 있나요. 온 힘을 다하여 깨소금 중독 여인들을 차근차근 치료해 주었지요. 깨소금보다야 일반 소금 값이 더 싸니까요. 힘은 들었지만 무진 애를 썼어요. 그래도 쥐꼬리만한 양심은 있었던 거지요."


“호호." 그녀는 수줍게 웃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게 해서 정말 깨소금 중독이 치료되나요?"
“그럼요. 저는 완치되는 케이스를 여러 번 경험했지요." 나는 힘을 주어 자신 있게 대답을 했다. 당연히 깨소금 중독을 그대로 방치했을 때의 심각한 후유증 중에 미녀들의 미모를 헤친다는 부분을 강조했다. 또 빼어난 미녀들이 결혼이나 애인을 갖기를 회피하는 심적 요인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을 흥미를 갖고 살폈다. 그녀는 몹시 겁이 질려서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럼 저…어."
“예, 편하게 말씀하세요."
“저… 어, 죄송한 부탁이지만…"


“아, 예, 어서 말씀하세요.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어서." 나는 급한 목소리로 그녀의 다음 말을 다그쳤다.
“예, 아, 선…생님이 제 병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시니, 제 병을 치료해 주시면…."
비록 작지만 확실한 말이었다. 이 때 어디서 ‘짹짹’하는 소리가 들렸다. 쥐소리였다.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서울 변두리의 허름한 경양식집 쥐구멍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 쥐구멍의 어디엔가에는 쥐들이 이 경양식집 주방에서 훔친 깨소금이 쌓여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쥐들의 소리를 들으며 ‘또 한명의 깨소금 중독자가 치료되는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장면에서 쥐들은 언제나 이렇게 ‘짹짹" 거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