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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 제1859번째] 노인을 위한 치과는 없다?

Relay Essay
제1859번째


노인을 위한 치과는 없다?


“아니 지금 나이 많다고 무시하는 거야? 그깟 이빨 하나 뽑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안해준다는 거야! 이빨 하나도 제대로 못 뽑고 그러고도 네가 의사냐? 내 몸이니까 내가 제일 잘 알 것 아니야? 내가 불과 몇 년 전 -몇 년이라고 하시지만 진료 차트 상으로는 12년 전 얘기입니다. -여기서 이 뽑고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왜 오늘은 안 된다는 거여?”


진료실의 정적을 깨는 어르신의 호통소리. 나이도 지긋하신 분이 오죽이나 부아가 치밀었으면 저리 화를 내실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그래도 진료는 원칙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르신, 불편하시고 번거러우신건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이를 뽑아드리기 어렵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분한 표정으로 저를 노려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론 접수대에 계산도 하지 않고 병원 문을 나서는 할아버지.


자주는 아니지만 치과의사로 살아가면서 심심치 않게 겪는 상황입니다. 이가 붓고 아파서 가벼운 마음으로 뽑으러 치과를 방문하셨지만 건강에 문제가 있어서 발치를 거부당하시면 대부분의 노인들은 화를 내기 때문입니다.


치과라고 하면 가벼운 질환만 치료하는 분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치과만큼 잦은 빈도로 피를 보는 과도 드뭅니다. 특히 일반적으로 별것 아니게 생각하는 발치는 자칫 잘못하면 목숨이 위험한 경우도 있을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하는 치료입니다.


특히 당뇨, 고혈압, 심장질환, 뇌경색, 간질환 등으로 약물 조절 중인 환자는 더욱 신중하게 치료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런 질환이 있는 환자들은 예방적인 의미로 아스피린이나 와파린 등의 혈소판 활동을 억제하는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종류의 약물은 지혈을 방해하기 때문에 이를 뽑고 나서 피가 멎지 않아 위험한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치과의사는 환자의 정확한 몸 상태를 알고 있는 내과 의사에게 발치 등의 치료가 가능한지, 그리고 그 전에 복용을 중단해야하는 약은 없는지, 중단한다면 며칠 간 중단하고 언제부터 다시 복용해야하는지 등의 질문을 내용으로 하는 진료의뢰서를 보낸 후 거기에 대한 답신을 받은 후 진료에 들어가는 것이 원칙입니다.


젊은 환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신 질환과 그에 따라 복용하는 약에 대해서 비교적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다가 치과의사의 설명을 쉽게 이해하기 때문에 내과 의사의 답신서를 받아오는데 별다른 저항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노인들은 자신의 병을 숨기고 싶어 하고 또 나이 들어 힘든 몸으로 큰 병원을 다녀오는 일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진료실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건 제 추측입니다만 어르신들은 치과 진료를 위해 내과 의사의 확인증을 받아오라고 하는 것을 진료에 필요한 과정이 아니라 노인을 진료해 주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번거롭게 한다고 받아드리시기에 역정을 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늙고 병들어 사회에서 점점 자신의 자리가 사라져 가는 것도 서러운데 이제는 병원에서 조차 늙었다고 안 봐주려고 하냐는 섭섭함이 분노로 표현된 것이죠.


실제로 진료의뢰서를 전해 드리면서 ‘확인서를 받아서 꼭 저희 병원으로 와주세요’하는 말을 덧붙인 이후로 역정을 내는 분이 확연하게 줄었습니다.


치과의사의 임무는 이를 잘 뽑는 것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안전하게 뽑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정을 내는 어르신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하더라도 오늘도 별 수 없이 치료를 원하는 어르신께 진료 의뢰서를 드릴 수밖에 없기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승훈
이수백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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