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트럼
멱살 잡히는 병원
전승준
분당예치과병원 원장
얼마 전에 동료 선, 후배 치과의사들과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면서 환담 중에 서빙을 하는 사람이 연이어서 말투를 불손하게 하고 메뉴판을 던지듯이 건네주길래 한 소리를 했다가 오히려 멱살을 잡혔던 일이 있었다. 너무나 황당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은 그 순간에 옆의 선배가 대신 나서서, 그 사람과 같은 수준으로 맞받아서 행동하지 않고 차분하고도 전정성 있게 대화를 시도해, 결국 그 사람이 제풀에 흥분했던 감정이 꺾이고 멋쩍어하면서 내게 사과를 하였다. 기분은 개운치 않았지만 상대방이 사과를 하니 받아들였고 그러니 불편했던 마음도 괜찮아졌다. 마치 투우의 소를 다루듯이 하는 그 선배의 모습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에 뜬금없이 최근에 매스컴에 많이 오르내렸던 치과에서 환자와의 심한 갈등에 관한 기사와 그에 대한 여러 댓글들이 생각이 났다. 그 중에서 인상적인 긴 글이 있었다. 10년 전 쯤의 환자 사이에서 있었던 일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의료인으로서 우리가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화두를 던져주었다. 다음은 그 분의 글 중에서 일부를 옮겨온 것이다.
-본인도 2004년에 환자에게 심하게 당했던 경험이 있다. 20년 이상 치과의사생활을 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어서 아직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다. 60대의 할아버지셨는데 그날 처음 병원에 오신 신환 환자분이셨다. 한쪽 다리를 저는 몸이 불편한 분이셨고 돌이켜보니 의료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가슴깊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원하시는 바는 거의 다 빠져 나와서 덜렁거리는 치아를 흔들리지 않게 해달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아무래도 발치하는 것이 치료법이어서 차분하게 설명드렸다. 잇몸 밖으로 다 빠져나와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빠질 것 같은 치아를 흔들리지 않게 고정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해달라는 대로 안된다고 하는 것에 갑자기 흥분하신 그 분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붓기 시작하셨다. “할아버님 진정하세요”라고 달래드리려는 순간 갑자기 나에게 따귀가 올라왔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피할 새도 없이 안경이 멀리 날라가고 정신이 멍멍해졌다가 그래도 간신히 달래고 수습한 후에 돌려보내드렸다. 경찰을 부르자는 직원들도 있었지만 연세도 많고 거동도 불편하신 불쌍한 할아버지라는 생각에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들이 의업을 허락받아 칼을 쓰고 환자의 몸을 다룰 수 있는 건 환자의 고통을 어루만져, 육체의 고통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치유하도록 함에 있다고 믿고 싶다. 물론 도저히 극복하기 힘들 정도의 소위 ‘진상환자’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도 그런 환자를 종종 만나면 너무나 힘들어서 직업 자체에 회의를 느낄 때도 가끔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응대하는 방법이 그 사람과 같은 방법인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은 아닌 것 같다.-
우리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환자와의 오해와 분쟁을 경험하고 지내고 있고 각각은 저마다의 다른 해결책으로 대응하고 있을 것이다. 하루 종일 바삐 진료하다가 complaint를 하는 환자나 부모님을 응대하기란 정말 힘들다. 그 과정 중에 온 몸의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는 듯한 피곤함을 느낀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그 순간에 인내를 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려고 하는 본능을 가까스로 억제함의 반복이 된다. 하지만 그 어느 특정한 방법도 모든 경우에 해당되는 보편화된 해결방법일 수 없다. 어떤 환자의 경우는 그 방법이 좋은 해결방법으로 작용하나 똑 같은 방법을 다른 환자에게 적용했을 때에 오히려 역효과가 나서 사안이 더 커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위의 인용 글에서처럼, 우리가 환자와의 관계에서 어떠한 경우라도 진정성을 잃지 않고 진료실 안에서 의료인으로서의 품위는 잃지 않는다면, 설령 지금은 멱살을 잡힐지라도, 그것이 선한 영향으로 파급되어 우리의 사회적인 영역이 넓어지고 결국 환자와 우리가 서로 win-win하는 구도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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