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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알파고 (AlphaGo)

기 고

알렉산더의 보병부대와 징기스칸 기마대는 어느 편이 강할까? 이렇게 치기어린 질문에는 답이 없다. 시대부터 다르니까.

이제는 IT 기술의 발달로 모든 자료를 입력한 가상현실에서 게임처럼 즐기거나 승부를 점칠 수 있다. 그러나 흥미본위의 이벤트일 뿐 당시 조건을 100% 재현할 수도 없고, 애초부터 역사에 ‘if’란 없지 않은가? 이와 달리 사람이 규칙을 만든 게임은 비교적 단순하니까, 바둑으로 특화(特化)된 인공지능 알파고와 프로 정상 이세돌의 대결이 이루어진 것이다. 바

둑의 발상지는 중국이지만 현대바둑의 종주국은 일본이다. 알파고의 ‘고’는 일본말로 바둑이다. 역사상 최고의 고수는 ‘기성(棋聖)’ 도사쿠(道策: 1670년대)요, 현대바둑 정립의 영웅은 세고에(瀨越) 9단이다. 세고에의 제자는 관서기원 창립자 하시모토와 중국 오청원 두 사람인데, 기타니 도장에 초청유학 온 조훈현을 탐내어, 마지막 제자로 데려갔다(1963). 한창 물 오른 제자가 군복무로 귀국하자 세고에는 비탄에 빠졌고, 설상가상으로 절친인 노벨상의 가와바타가 자살하자 자신도 목을 매어 자살한다(1972, 83세!). 애견(愛犬) 벤케이도 그 뒤를 따랐다. 가와바타를 존경한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자살이(1970) 사건의 시발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장황하게 역사를 늘어놓는 이유는, 첫째 이들 죽음이 일본 특유의 ‘미학(美學)’과 무관하지 않고, 일본이 발전시킨 현대바둑 또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조훈현이 만약 병역면제를 받아 일본에서 승승장구했다면, 토사쿠·오청원에 이은 세 번째 기성이 되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근 20년간 전신(戰神)이라는 별명으로 한국바둑을 주름 잡은 천재요, 최초의 세계챔피언이며(제1회 잉창치 盃: 1989), 한국의 십여 년 세계제패를 선도한 신산(神算) 이창호를 길러냈다.

딥 마인드의 허사비스는 바둑이란 경우의 수가 거의 무한한 직관과 계산(Intuition & Calculation)의 게임이라고 정의한다. “런던의 알파고 본체를 뜯어보니 이창호가 앉아있더라”는 댓글을 보라. 전성기 조훈현의 직관과 흔들기, 그리고 이창호의 계산력을 조합했다면 몇 년은 더 인간이 유리하지 않았을까? 이세돌의 유일한 승국에서 78수의 끼우기는 바로 흔들기의 전형이었다.

비록 일본에서 배웠어도 조훈현·이창호의 사제(師弟)는 ‘모양의 미학’에 갇혀 있지 않았기에 일본을 뛰어넘었고, 중국이 한국을 위협하는 것도 그들이 보다 더 모양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별만큼 수가 무궁무진한 바둑은 오청원의 말처럼 거리낌이 없어야하므로(天衣無縫), 기존 정석·포석·행마의 고정관념을 깨는 분방한 착수는 필연이며(발상의 전환), 앞서 나열한 기성들의 대국 + 알파의 데이터를 축적한 알파고가 이기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인간은 번개처럼 수를 읽고 실시간 훈수를 받으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기계에게 결국은 지니까, 승부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무서운 것은 인공지능이 정신 즉 자아를 획득하고 인간위에 군림하는 일이다. 일자리를 빼앗고 인류복지에 반하며 인간을 해칠 가능성이 두렵다. 인공지능은 핵처럼 양날의 칼인 것이다. 현존하는 제한조항보다 광폭의 윤리강령을 고민할 때가 되었다. 새로운 문물을 만나면, 인간은 뜨거운 맛을 본 뒤에야 느리게, 그러나 확실히 적응 내지 극복하여 인간의 존엄을 지켰다. 빅 데이터로 무장하고 발상의 차원도 다른 기계와 비대칭적인 ‘3ㅂ의 대결’에서, 1승을 건진 투지의 이세돌, 파이팅! “Human never resigns!”

80년대에 타임지가 20년 후 유망직종을 예측하였다. 치과의사가 10위 안에 들었는데, 아쉬운 대로 크게 틀리지 않았다. 알파고의 CEO 허사비스는 인공지능 실용화목표 1호를 ‘헬스 케어’라고 발표하여 의료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건강진단과 관리·역학조사·약품 개발·대수술(로봇) 등 격변이 예상된다. 그렇지만 얼굴 마주보고 좁은 공간에서 손을 쓰는 정교한 치과시술은, 당분간 로봇 시뮬레이션이 어려울 것이다. 기능을 최대한 살린 교정·성형·임플란트의 진단과, 가성비(價性比)가 문제지만 기공분야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 된다. 지속되는 치과계 불황은, 대부분 외부 요인보다 정책적인 실수나 내부 분열의 탓이 컸음을 잊지 말자.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철중 치협 전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