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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립(而立)

Relay Essay 제2127번째

이립(而立). 30세가 되어서 학문의 기초가 확립되고 마음이 도덕 위에서 움직이지 않을 만큼 확고하다는 뜻이다. 치의학전문대학원으로 입학하여 어느덧 서른이 되면서 마음을 굳건히 하기위해 요즘 나의 행복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그리고 행복을 찾아 고민하면 늘 함께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꿈’. 치의학도로서의 길을 걷게 된 나에게 꿈은 무엇이며 이 꿈은 내 행복에 얼마나 기여해 줄 수 있을까.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는 TV속 오디션 프로그램들. 너도나도 연령에 상관없이 꿈을 좇는 사람들의 땀과 진심을 담아내며 보는 이에게 감동도 선사한다. 처음 프로그램을 접하였을 때는 어린 친구들이 기특해 보이기도 하고 응원하며 보았지만, 언제부턴가 어딘지 모르게 공허함이 생겼다. 이 아이들은 어떤 계기로 저렇게 뚜렷한 꿈을 갖게 되었고, 어떤 결심이 저들을 이렇게 끓어오르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렇다. 무엇하나 명확하게 이것을 해야겠다하거나, 미친 듯이 이 한 가지에 몰두해보아야겠다는 욕구가 부족한 채 그저 학생신분으로서 할 수 있는 학업성적에 몰두하여 지내왔다. 그나마 나는 행운아였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원하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었을 뿐이다. 이제는 더 나아가 나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이고 어떻게 찾아가야할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우선, 행복에 있어서 내가 가장 중요시 하고 있는 것은 나의 가족이다.

 한창 중2병으로 사춘기를 겪고 있던 시기에, 하교 후 돌아온 집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평소 나를 맞아주던 어머니는 온데간데없고, 형의 단짝 친구가 나를 불렀다. 어두운 표정으로 우리 형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 중이라며 가방만 놓고 빨리 병원으로 가자며 멍한 나를 이끌었다. 멋쩍은 웃음을 지어가며 어디 팔이라도 부러졌냐며 너스레를 떨어보았지만, 나도 모르게 온몸으로 전해지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병원 중환자실 앞에 도착하였다. 굳게 닫혀있던 중환자실 문 앞에서 마주한 아버지는 하루를 1년같이 지낸 듯 수척한 모습이셨다. 면회시간이 되어 들어간 중환자실에는 날마다 장난치고 다투던 형이 드러누워 있었다. 지금도 그 모습이 생생할 정도로, 예상치 못한 형의 모습을 나는 한동안 아무런 말없이 바라보았다. 형을 보자마자 흐르던 눈물은 사춘기 시절의 나도 막을 수 없었다.

 1년 반 동안의 긴 재활기간을 형이 잘 이겨내면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이 바로 가족애이다. 지금은 형에게 미안할 만큼 그 때 형을 통해서 얻은 깨달음이 너무 감사하다. 치전원으로 입학하고 학업생활이 길어지면서 가족에 대한 사랑을 오히려 더 느끼게 되었고, 형이 결혼 후 알콩달콩한 가정을 꾸려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배우게 된 점은 더 커졌다.

 가정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된다는 ‘가화만사성’이라는 한자성어처럼 가족 모두 서로 사랑하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정을 꾸리고 싶다. 나 개인의 성취감, 명성과 영예도 중요하겠지만, 그러한 기쁨을 진심으로 나눌 수 있는 가족들이 있음으로 배가되고 순간순간의 기쁨들이 쌓여서 행복으로 늘 웃음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베푸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다.
 우리 병원 설립에 관한 한 가지 일화가 있다. 한국 최초의 의사를 만든 올리버 R. 에비슨과 자선 사업가였던 루이스 H. 세브란스의 편지내용이다. 에비슨은 병원 설립에 큰 도움을 준 마음에 감사를 표했고 이에 세브란스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받는 당신의 기쁨보다도 주는 나의 기쁨이 훨씬 더 큽니다.”

 예전에는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희생, 봉사라는 의미가 치의학도가 되면서 한 발짝 더 가깝게 다가온다.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 진로를 선택하기 전에는 우선 나와 내 가족이 안정된 자리에 있을 때 봉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치과의사가 되면서 속된말로 이젠 정말 쓸모있는 녀석이 되었다. 공부하여 갈고 닦아온 의술로써 내가 필요한 곳이 분명히 있을 테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봉사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봉사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봉사한 시간만큼 베푸는 즐거움을 키우지는 못한 것 같다. 언젠가 주는 나의 기쁨이 훨씬 더 커져버린 시간이 올 것이라 믿는다.
 
요즘 뉴스 사회면을 보면, 강남역 사건이나 묻지마 폭행 등 입에 담기 험한 기사거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런 시기에 맞물려 등장한 것이 동양인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 책속 영혜의 언니를 보며 그래도 작은 희망을 보았다. 정당화될 수 없는 인간의 폭력성과 추악함 속에서도, 나약한 나무와 같은 이를 보듬어주는 도움의 손길은 존재할 것이고, 본인의 의지가 더한다면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두려움에 있는 우리 사회의 채식주의자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우리 치과의사들도 한 가지 역할을 할 수 있음에 나는 큰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참으로 감사하다.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졸업 후의 나의 행복과 꿈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이제는 서른이 되어버린 내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함께 진심으로 봉사하는 날이 올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송건호 연세치대·치전원 본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