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夏曰: “雖小道, 必有可觀者焉, 致遠恐泥, 是以君子不爲也.” 논어 자장편 19-4 (자하왈: “수소도, 필유가관자언, 치원공니, 시이군자불위야.”) 자하가 말했다. “비록 작은 기예일지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배울만한 것이 있을 것이다. 원대한 목표를 이루는데 있어 거기에 젖게 됨이 두렵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것을 배우려하지 않는다.” 위 문장을 한마디로 정리 한다면 소탐대실 ‘小貪大失’이라 할 것이다. 작은 이익을 탐하다 보면 큰 것을 잃는다. 소도(小道)에서 관(可觀)하여 부와 권력을 누리다 차가운 구치소에서 재판을 기다리거나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과거 정권의 권력자들을 생각해 본다.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뚜벅 뚜벅 걸어가는 사람은 목표를 이루는 과정 속에서 작은 이익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이익에 집착하다 운이 좋아 부와 권력을 잡게 된 사람은 어느 순간 크게 잃게(大失) 될 것이다. 논어 한 귀절 글쓰기를 준비하며 “나에게 이루고자 하는 원대한 꿈 (致遠)이 있는가?” 자문해 본다. 1997년 한국리더십센터의 3박 4일 CEO 과정을 하며 만들었던 사명서(致遠)가 책상 앞에 걸려 있다. 책상 앞에 걸어 놓은지 벌써 20년이 된
子張問政, 子曰: “居之無倦, 行之以忠.”(자장문정, 자왈: “거지무권, 행지이충.”) 자장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자리를 맡으면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일을 할 때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논어, 안연편> 倦(게으를:권)에 마음이 꽂혔다. 게으름이란 人(사람:인) + 卷(책:권)이 합하여 생긴단어이다. 사람이 책을 가까이 하면 게을러지는 것일까? 倦(권)이라는 한자를 만든 사람은 책만 읽고 땀 흘리는 일을 하지 않는 주인을 모시고 사는 머슴일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倦(게으를:권)자를 통해 내 자신의 게으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내 삶에서 땀을 흘리며 먹거리를 찾아 헤맨 적이 있었는가, 타인을 위해 땀을 흘린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 묻는다. 치과대학에 입학한 순간부터 나는 치과의사였다. 예과 1학년 때 진료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예비 치과의사라는 명분으로 실습용 흰 가운을 입고 진료하는 선배들 주위를 맴돌았다. 본과 3학년 때 치과대학 학생회 차원에서 처음 농활을 하였다. 농노 확장 및 보수 공사, 주거환경개선사업 등 하루 종일 땀을 흘렸다. 저녁에는 주민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중보건의 1년차
공자께서 위나라의 임금의 서자 공자 “형”을 평하여 말씀하시기를 재산관리를 잘하고 집안을 훌륭하게 이끌었도다. 처음 재물이 생기자 '그런대로 모였다'라고 했고, 조금 갖추어지자'그런대로 완비되었다'라고 했으며, 많이 갖추어지자'너무 화려해졌구나!'라고 했다. 타인이 아름답다 (美) 라고 할 수 있는 富는 어느 정도일까? 삼성의 이건희 회장, 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 박사, 경주 최부자집 우리는 누구의 부를 아름답다(美)고 하는가? 치과를 개업한지 25년 부모님께 효도하고, 가족이 하고픈 것을 할 정도, 형제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성의를 보일정도의 부(富)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타인이 그리고 스스로가 나의 부에 대해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토마스 피케디의 “21세기 자본” 장하성의 “왜 분노해야 하는가?” 등의 책과 뉴스에서는 세계의 부자, 대한민국의 부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소득에는 자본 소득과 노동 소득이 존재하며 전체 국민 소득 중 자본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30~35%를 차지한다. 상위 10%가 총소득의 45%, 상위 1%가 20~30%를 차지한다. 나는 몸이 소득의 원천인 단독 개원 치과원장이다. 아직 자본 소득이 없는 나를 생각하며 심
논어의 술이편 7-25 子以四敎 文行忠信(공자께서는 네 가지를 가르치셨으니 경전과 덕행과 충성과 신의가 그것이다.) 모르는 한문이 없다는 것이 그날의 소소한 행복이다. 공자께서는 많은 제자들과 함께 하며 많은 것을 지도하셨는데 그중 왜 文行忠信 4가지만을 가르치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전체 문장을 빈 종이에 쓰며 그 의미를 생각해 보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의 해석은 각기 그 의미를 달리 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논어 읽고 글쓰기는 공자님의 삶이 아닌 내 삶을 돌아보는 과정이다. 인터넷에 논어를 해석해 놓은 분들이 많은 공부( 文)를 하였더라도 중심된 마음(忠)이 다르기에 그들의 신념(信)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行)을 했음을 본다. 당시 최진석 교수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으며 인문학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였다. 최진석 교수께서는 호랑이에게 호랑이 가죽의 무늬가 서로 다르듯, 인문학이란 각자 인간의 자신만의 독특한 무늬라고 간단하게 정의 하셨다. 자신의 삶에서 타인과 다른 외부적인 환경에 종속되지 않고 삶의 주인이 되어 실천하는 학문이 인문학인 것이다. 최 교수의 책을 읽으며 공자님의
子曰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논어 이인 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위가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지위를 맡을 자질이 없음을 근심하라.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나의 가치를 알 수 있도록 노력하라)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位)이 있다면, 이루고자 하는 그 일을 이룰 능력이 자신에게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노력으로 인해 이루고자 하는 일을 할 능력이 갖추어졌다고 스스로 인정하거나 타인에게 인정받으면, 자신이 능력이 있음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며 기다리기 보다는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位)에 대해 말을 하고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아 이루고자 하는 일을 실행하여 그 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 본다. 논어의 구절은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상상을 하게 만들어 준다. 子曰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를 보며 역사속에서 생각나는 인물이 있는가? 처음 이 문장을 읽으며 불현 듯이 제갈공명이 떠올랐다. 대학생 시절부터 힘들다고 느낄 때 나는 어린왕자와 삼국지를 읽었다. 지금까지 10번 이상은 읽었으리라. 어린 왕자를 읽으며 어린시절로 돌아가 현재의 고민에서 일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2016년 10월 17일 시작한 논어 하루에 한 구절을 읽고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하며 글쓰기는 이제는 습관이 되어가고 있다. 습관이라는 것이 무섭다. 벌써 70편의 글이 모아졌다. 이제 내 지식과 지혜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음이 느껴지기에 슬퍼진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에 1993년 개업하고 지금까지 진료를 하고 있다. 오랫동안 한 곳에 있다 보니 지역에 행사가 있을 때 같이 동참하여 주기를 원한다. 개업초 중반까지는 어떻게 하여야할지 몰라 안절부절 했지만 개업 25년 이제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논어 八佾篇 3-17를 통해 공자님께서는 나에게 가르침을 주신다. 子貢 欲去告朔之餼羊 (자공 욕거곡삭지희양) 子曰 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 (자왈 사야 이애기양 아애기례) 자공이 초하루에 지내는 제사에서 제물로 쓰는 양을 쓰지 않으려 하였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야. 너는 그 양을 아끼느냐, 나는 그 예를 아낀다.” 자공이 물욕 때문에 禮(예)를 지키지 못하는 것을 공자께서 꾸짖는 말씀이다. 祭(제)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경제적 여건이 된다면 경제적 여건에 맞추어 지역의 제사에 소요되는 행사 비용에 대해 자신의 능력에 맞는 역할은 하
아빠! 왜? 아빠는 자신이 53살이 될 거라고 생각해 봤어요? 아니. 지금도 대학생 시절 같은데. 내 나이 53세가 되어있고, 옆에는 배우자가 있고, 딸이 대학생이고 아들은 수능을 보았더라. 子夏問孝, 子曰, “色難. 有事, 弟子服其勞; 有酒食, 先生饌, 曾是以爲孝乎?”/ 자하가 효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서 일이 있을 때는 아랫사람이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술이나 음식이 있을 때는 윗사람이 먼저 드시게 하는 것을 가지고 효도라고 할 수 있겠느냐?” 엄하고 카리스마 넘치셨던 아버님이 어느덧 90을 바라보는 87세가 되셨다. 아버님께서는 당신이 61세 환갑이 되기 전에 큰 아들인 내가 결혼하기를 바라셨다. 어머님은 건강이 좋지 않아 큰아들이 장가가는 것을 보고 생을 마감하시는 것이 소원이라고 늘 말씀하셨다. 부모님의 성화로 본과 3학년 겨울 방학부터 선이라는 것을 보았다. 그러한 선이 개업 2년차 까지 햇수로는 6년동안 선을 보았다. 최근 어머님은 고관절 수술을 받으시고 중간에 수술 부작용이 생겨 다시 입원하셨다. 아버님께서는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 넓은 집에 혼자 밥을 해 드시며 생활하고 계신다. 집에서
2016년 1월을 시작하며 하루에 한 구절 쓰고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한 신정근 작가의 “마흔 논어를 읽어야할 시간” 101구절 중 오늘 95번째 구절 惠而不費(혜이불비. 도움을 주지만 헤프지 않고)을 읽고 국가의 복지와 치과의 복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줄 알았는데 시간 날 때 한편씩 읽다보니 얼마 남지 않았다. 夫達也者 質直而好義 察言而觀色 慮以下人 在邦必達 在家必達 (무릇 통달이라고 하는 것은 질박하고 정직하여 정의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가려듣고 안색을 살펴서 사려하여 상대방에게 겸손하므로, 나라에서도 반드시 통달하고 집안에서도 반드시 통달한다.) 8월 유난히 무더운 여름날 76번째 구절인 察言而觀色 (찰언이 관색) 의미에 대해 글을 쓰며 실생활과 치과경영에서의 활용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읽고 있던 다른 책에서 “항상 어떤 화제(話題)든지 화제의 내용이 상대방에게 혹시나 무슨 관련이 있지 않을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무심코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음을 깨달아 항상 상대의 표정을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아야한다”라는 문장을 접할 수 있었다. 이런 우연이라니, 하늘이 우연을 통해 삶에 가르침을 준다고 한다.
人能弘道 非道弘人. 사람이 도(스스로 깨우친 경영)를 알고 깨우쳐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지, 도(타인에게 배운 경영)를 알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라는 의미로 의역해 본다. 논어 한 귀절씩 매일 쓰고 그 뜻을 음미하기를 한지 벌써 7개월 총 100귀절 중 70귀절에 대해 익히고 그 의미를 생각하고 삶에 응용하고 있다. 올 초 처음 시작할 때는 1년이고 2년이고 기간을 정하지 않고 시간이 되면 한 귀절씩 하고자 했던 것이 벌써 70귀절, 2016년 안에 100귀절을 마치고 되새김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IMF 때 보다 힘들다고들 한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자신만 살고자 하는 치과계의 몇몇 원장들을 본다. 어렵다고들 말을 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려는 자신의 경영 원칙들은 만들려 하지 않고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찾으려 하고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속을 헤매는 원장들을 보며 치과의사의 행복한 삶에 대해 고민해 본다. 人能弘道 非道弘人 경영에 관해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경에 대한 길을 따라하면 처음에는 힘들이지 않고 편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다
어린 시절 이 글귀의 의미도 모르면서 부모님께서 공부를 하라고 하면 아는 것(공부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좋고, 좋아하는 것 보다 지금 내가 즐기는 것을 하라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며 부모님께 반항 아닌 반항을 하였다.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은 텔레비전 시청과 친구들과 노는 것 뿐 다른 것은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님과 진로에 대해 이야기하며 막연히 남자라면 공과계열을 가야된다는 생각에 공업고등학교 진학하여 대학은 공과대학을 가려 한다고 말씀드렸다. 아버님께서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공과대학을 가는 방법도 있다며 일단 인문계 고등학교에 원서를 쓰고 입학한 후 학교를 다니며 미래 직업에 대해 고민해 보자고 하셨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시절 고등학교에 입학 한 후에도 뚜렷이 좋아하는 것도 즐기는 것도 없기에 목표도 없었다. 친구들이 모두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니 나는 서울에 있는 공과대학으로 진학하여야겠다는 생각에 고3 초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서울에서의 재수생활 1년. 고3때 치과대학에 배짱 지원을 했다는 인연으로 재수시절 목표는 치과대
많은 동료 선후배 분들과 지면을 통한 소통의 기회를 준 치의신보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쓰는 시론을 이해하는데 있어 참고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저를 소개하려 합니다. 1964년생으로 광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조선대학교 치과대학을 1990년에 졸업. 3년의 공보의 생활을 마치고 1993년 5월 광주 광역시 광산구에서 대덕치과를 개원하여 지금까지 23년간 개업해 있습니다. 치과대학을 다니며 조선대학교 백악사진 예술 동우회(한나래)에서 6년간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고 6년의 동아리 활동을 기념하기 위해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기간에 시간을 내어 졸업 기념 달력(간단한 개인전)을 제작하였습니다. 취미가 직업과 연결되는 행운을 얻어 1998년 환자와 함께하는 치과이야기 출판(나래출판사), denstory.com 운영(환자 치료 상담 전용 슬라이드 모음. 모든 동료 치과의사에게 로그인 없이 공개하고 있습니다) 하루일과는 8시 출근하여 그날 진료 약속된 환자분들을 체크하고 나서 논어를 펼쳐 하루 동안 익힐 구절을 노트에 적고 모르는 한자를 찾아 둡니다. 오전 9시가 되면 직원들과 약속환자에 대해 간단한 브리핑을 하고 진료준비를 합니다. 23년간 개업해 있는 치과 앞 주공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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