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라면 장르나 연주자에 구애받지 않고 폭넓게 들어왔다. 유명한 녹음들은 물론이고 이름조차 생소한 작곡가와 연주가들에게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 결과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연주들을 수도 없이 만났다. 이른바 오직 ‘명반’에 집착하며 지적인 이기주의에 근거한 배타적 감상은 음악을 향유하는 진정성을 훼손할 수도 있다. 나아가 유튜브에 나오는 무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클래식 몇 곡’ 따위의 하찮은 콘텐츠들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겠다. 음악에 대한 예민함 때문인지 클래식뿐만 아니라 종합예술이라는 영화를 볼 때에도 배경음악에 크게 반응했다.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는 유도 동기(Leitmotiv)라 하여 특정 등장인물을 상징하는 주제 선율을 반복적으로 등장시켰다. 영화음악 속에도 ‘테마’가 숨어 있다. 이를 통해 관객은 무의식중에 인물의 감정 변화나 상황의 긴장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내 경우 클래식이나 영화에 대한 감수성은 서로 자극 받으며 확장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결과인지 영화 또한 지금도 매해 극장에서 300편 넘게 개봉작과 재개봉작 가리지 않고 관람하고 있다. 음악에 대한 호기심은 처음엔 베토벤으로 시작해 모차르트, 슈베르트, 차이
어려서부터 혼자 사유하는 시간을 즐겼는지 음악, 독서, 영화, 악기, 글쓰기 같은 방면에 자연스럽게 끌렸는데 특히 음악을 섬세하게 느끼는 편이었다. 궁금한 정보는 책, 잡지, 신문 등을 찾아 되는 대로 기록하고 모았다. 작곡가, 지휘자, 연주자, 감독, 배우는 물론 문학 속 인물들까지 나만의 방식으로 탐구했고, 척박한 가세 속에서도 책과 음반을 손에 넣기 위해 스스로 애썼다. 성인이 돼 삶의 템포는 정신없이 빨라졌지만 정적인 취향은 은은하게 이어져 나의 세계는 또렷한 형상을 갖춰갔으며, 덕분에 사람들과의 물리적 거리가 극도로 멀어졌던 팬데믹 시기에 자신과는 더욱 가까워지는 전화위복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 지면을 통해 이러한 이야기들을 나눠보고자 한다. 초등학교 4학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의 1962년 녹음을 담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성음 라이선스 테이프가 생긴 것이 ‘클래식’이라는 서양 고전 음악과의 제대로 된 첫 만남이었다. 작은 JVC 오디오로 67분짜리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반복해 들었고, 무한한 감동의 ‘환희의 송가’ 선율이 4악장 한참 후 나온다는 점과 1~3악장의 존재는 아주 신기하게 다가왔다. 9번 교향곡에 문자 그대로 압도당한 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