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취미를 하다 보니 꽤 모였다. 난실은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어 수시로 드나들 수 없지만 수석은 거실이나 장식장과 전시대에 있어서 휴식시간마다 무료함을 달랠 수 있다. 괜찮은 돌을 주워오거나 구입했지만 나름대로 애착이 생겼다. 그냥 보는 것과 좌대에 안착되어 자세를 잡은 돌과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 좌대에 오르기 전에는 잡석이거나 맨 돌로 보이지만 좌대나 수반에 안치되는 순간 수석으로 대접받는다. 그만큼 좌대나 수반의 역할이 크다. 좌대에 올려야 모양이 되는 수석이 있는가 하면 수반에 놓아야 작품성이 돋보이는 수석이 있다. 그런 이유로 수반에 놓아봤다가 좌대에 올려봤다가 하면서 수석을 만지작거리다 보면 시간이 너무 잘 가는 것 같다. 세상에서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난이나 기르고 돌이나 만지작거린다는 소릴 많이 들었는데 일부는 인정하지만 정말 부지런해야만 그런 취미생활을 할 수 있다. 빽빽이 차 있는 수석 무더기를 보며 그 중 몇 점은 멋있는 좌대를 만들어야겠다는 의욕이 생겼다. 딱히 수석좌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전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배운 목공예에 관한 호기심이 발동하여 목공예 기술을 연마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선 조각도 세트를 구입하고 일반
나에게는 오래전 선물로 받은 몇 점의 수석이 있다. 문외한이긴 하지만 거의 30년간 한국춘란 취미생활을 하느라 주로 난실을 가꾸고 있는데 난실 구석에 그 수석을 같이 보관하고 있다. 수석에 물을 뿌리고 씻어보면 전후의 모습이 너무나도 차이가 나서 춘란들과는 또 다른 세상을 보는 느낌이다. 최근에 우연찮게 유튜브를 보다가 호피석의 특별한 예술적 작품성을 보게 되면서 수석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다. 애석인의 수준은 아니지만 장식장이나 거실에 있는 몇 점의 수석을 보면서 제대로 된 예쁜 돌 한 점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던 차에 온라인 카페로 알게 된 애석인의 집에 가서 순창호피석을 인도 받게 되었다. 그 호피석이 내게 안기게 될 줄 생각도 못했는데 꿈에 그리던 순창호피석과의 인연이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호피석: 호피무늬 수석의 일종) 전남 순창 어느 강가에 가서 직접 물속에서 건져낸 돌이라던데 그 호피석을 넘겨받아 안았을 때는 그분이 건져 올렸을 때의 황홀감과는 비교할 수는 없지만 과장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생일석의 기쁨과 감격을 맛보며 여느 돌보다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난을 캐러 난 자생지인 전라도나 경남지역을 수십 년 다니며 일생일란을 꿈꾸어 왔
한국 토종 야생화 중에 ‘솜다리’가 있다. 다소 생소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 에델바이스로 알려져 있다. 유독 관심이 생겨 찾아보니 원래부터 우리 고유의 솜다리라는 꽃은 설악산이나 한라산 일대에 자생하고 있었고 예쁘고 앙증맞은 꽃이다 보니 필자가 많이 좋아하게 되었다. 뽀송뽀송한 솜털이 난 국화과의 꽃으로 7월 전후로 개화하는 보호종에 속한다. 꽃말은 맑고 깨끗한 선녀의 마음씨로 귀중한 추억, 고귀한 사랑을 뜻하는데 에델바이스로 부르기 보다는 솜다리라고 기억하며 전통 우리 꽃을 사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해변의 바위나 절벽에 붙어사는 야생풍란처럼 솜다리도 인적 없는 절벽이나 척박한 산기슭에 꿋꿋하게 생명력을 지탱하고 있어 고고하고 신비한 자태와 함께 솜털처럼 부드럽고 깃털처럼 가볍고 귀여운 모습이다. 몇 년 전에 화원에서 씨를 구해 발아를 시도해 봤으나 실패하여 집에서 배양하기 어려운 식물인가보다 하며 단념했었는데 근자에 발아시킨 모종을 구입하여 열심히 배양 중이다. 꿈에 그리던 꽃을 인터넷상이 아니라 직접 볼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감격스럽고 황홀하다. 솜다리 종류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1)솜다리, 2)산솜다리, 3)한라솜다리, 4)들쑥꽃, 5)왜솜다리가
살면서 노력 없이 대박을 꿈꾸며 막연한 기대를 한다. 길몽을 꾸면 여지없이 복권을 산다. 특히 한탕의 꿈을 꾸며 로또복권을... 아니면 즉석복권으로 그 자리에서 운을 확인한다. 꽝이어도 쉽게 자위하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추첨을 통한 경품행사에 기회가 된다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참여한다. 공짜심리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우리의 공짜심리가 나쁘다고만 할 순 없다. 지루한 학술대회나 공연 중간에 행하는 경품추첨은 행사를 지루하지 않게 하는 맛깔스러운 묘미가 있다. 유독 더 잘 당첨되는 사람이 있다. 기회는 똑같은데 내게만 늘 꽝인가? ‘운칠기삼’이라 했나? 운도 실력이라고들 한다. 유달리 운발이 튀는 사람과는 경쟁을 하지 말라는 격언도 있다. 속이 덜 차 나는 꽝, 복권 떨어지는 꽝, 별 볼 일 없는 꽝, 의도하지 않은 꽝, 꽝이라는 단어가 좋지는 않다. 그러나 꽝을 밥 먹듯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저 익숙한 단어일 뿐.(지나고 보니 모두가 꽝은 아니었다.) 무엇이든 채우려고 노력했다. 물질적 욕망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경험하지 못한 그 무엇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 그것으로 쌓여진 얕은 지식들로 인해 늘 부족함을 느낀다. 그로 인한 잡다한
새로운 의약품이 개발될 때마다 큰 기사거리가 된다. 본과 1학년 때 우연히 알코올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알코올 섭취 후 얼굴색의 변화에 따른 건강에 관한 연구를 하는 실험에 임상실험 대상자로 참석하였다. 빈속에 거의 소주 한 글라스(반 병) 정도를 마시고 한 시간 경과된 후 피부색의 변화를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공짜 술 마시고 한숨 자고 나니 실험이 끝났는데 고생했다며 실험대가로 얼마의 사례비를 받았다. 그 당시 학생신분으로서는 꽤 큰돈이었는데 그 돈으로 다시 친구들과 술 한 잔 했던 기억이 난다. 필자는 그 당시 별 생각없이 잠시 짬을 내 실험에 참여했을 뿐인데 얼마 지나고 나니 그 실험의 결과와 관련된 논문이 텔레비전과 언론지상에 발표되었다. 대단한 일에 참여한 듯해서 스스로 우쭐해졌었던 기억이 있다. 어릴 적 만화가게에서 빌려본 책 중에 살 빼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내용은 어느 뚱뚱한 사람이 의원에게 찾아가 살을 빼고 싶은데 비용이 얼마가 들어도 좋다며 방법을 물었다. 의원은 약을 지어주며 열흘 후면 분명 효과가 있을 거라며 그때 다시 와 보라고 말하며 처방해 주었다. 정말 열흘 후에 홀쭉해져서 못 알아볼 정도로 날씬해져서 웃으면서 나타났
치과의사면서 다른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꽤 있다. 치과진료 하면서보다 새로운 분야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시는 듯하다. 삼국유사의 고장으로 많이 알려진 나의 생활터전인 군위가 몇 년 전부터 대구 신공항 이전으로 핫이슈가 되었고 지금은 대구로의 편입 확정이 목전에 있는 지역이다 보니 부동산값이 폭등하고 이 지역에 부동산 사무실이 최근에 폭발적으로 많이 생겨 아마도 한지역의 단위 면적당 수가 전국에서 최고로 높은 정도가 되었다. 가게가 비게 되면 여지없이 대신 들어오는 게 부동산 사무실이다. 그러다보니 우연인지 필연인지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생겨 색다른 공부를 하게 되었다. 예전에 내가 알고 있는 치과의사 한 분이 부동산 거래에 휘말려 고통받다가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전문직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주위 사람에게 현혹되어 큰 손해를 보는 경우를 많이 보고 들은 것 같다. 아무래도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재테크에 관심을 갖게 되니 잘 모르면 흔히 겪을 수 있을 것 같다... 치과를 개원할 때도 건물 임대로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일례로 임대계약을 당일하고 대항요건을 갖추고 확정일자를 받았지만 악덕 건물주가 당일 뒤늦게 제 3자에게
‘백수의 꿈’은 과거에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기억들을 접목해 현실과 혼돈할 수 있는 필자의 지어낸 짤막한 얘기꺼리임을 밝혀둔다. 어릴 적 시골에서 살아서인지 장날 약장수가 등에 북을 메고 발로 탕탕 굴리면 북이 쾅쾅 울리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신명나는 장단에 구경꾼들이 모여 함께 즐기며 약도 사고하는 풍경을 많이 봤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생소하겠지만 동동구리모라 하며 화장품을 팔기도 하며 시골장터의 운치를 회상해 보기도 한다. 명절날이나 정월대보름 그리고 각종 마을행사에 사물놀이패들이 북 치고 장구 치고 꽹가리며 징을 칠 때 신나서 덩실덩실 따라 춤추던 기억이 뇌리에 남아 늘 신명나는 분위기에 빠져들었고 흥이 기질적으로 타고난 것 같다. (지금도 지신밟기 하면서 꽹가리 징을 치면서 귀신을 쫓아주기도 한다.) 이후로 오락부장이 되어 분위기를 이끌어가며 걸어가면서도 끄덕거리는 게 생활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 악대부 선배들이 음악에 관심 있냐며 함께 연주하면서 재미난 서클활동을 하자고 제의했다. 온갖 미사여구를 써가며 꼬드기길래 예전에 몸집이 작을 때 이유 없이 큰 애들이 놀리거나 맞은 아픈 기억 때문에 보호해 줄 선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하겠
동물을 사랑하며 그림을 그린다. 꿈은 평소 생각한 것과 연관되거나 뜬금없이 나타나기도 한다. 동물화를 그리던 아이를 보며 동물화가가 요즘 각광받는 직업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예전 아이가 수시로 그리던 동물화가 꿈속에서 뒤섞여 실제처럼 느껴진다. 어릴 적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다. 틈만 나면 만화부터 인물묘사 캐리커처 등을 그려서 주변에 보여주면 잘 그린 게 아님에도 재미있어 하고 잘 그렸다며 종종 칭찬을 해주곤 했다. 잘 한다 잘 한다하면 더 잘해서 칭찬 받고 싶어 더 노력하는 아이들의 심리라 할까? 그런 계기로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며 자꾸 그쪽으로 시간을 많이 들이다보니 취미를 넘어 미술에 약간 소질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예체능으로 장래에 성공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감 하나로 많은 갈등과 고민 끝에 화가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고등학교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서양화가가 적성에 맞는 것 같아 오로지 서양화를 그리며 인생의 목표를 정했지만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며 부모님이 극구 말리셨다. 사실 뚜렷한 결과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 뒷받침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할 수 없이 화가의
차마고도에 다녀온 적이 있다. 오래전부터 태고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불교의 나라, 티벳 지역의 신비에 대해 막연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TV에 방영된 티벳 지역의 차마고도 천연염정에 대한 시사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고산지대의 황톳물이 흐르는 란창강의 좌, 우편으로 빽빽이 형성된 염전의 모습과 거기서 소금을 일구는 티벳 소녀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수십만 년 전에 바다였다가 융기된 그곳은 지금도 지층 아래에서 지하수가 솟아나듯 소금물이 끊임없이 작은 샘을 이루며 흘러나오고 앞으로도 계속 흘러나올 거라고 한다. 옌징이라는 지명도 염정(소금우물)의 중국식 발음이다. 그 염정의 소금물을 담은 물통을 어깨에 메고 미끄러질 듯 좁은 밭둑길가의 염전에 쏟아 부어서 소금을 일구는 방식인데, 바닷가의 염전에서 백설 같은 소금을 캐듯, 천연염정에서 캐는 소금은 상염정(강 건너편)의 백염과 하염정에서의 황토색 소금물에서 정제해 깨끗한 창호지에 수를 놓은 도화처럼 맑은 도화염(홍염)을 수확한다. 두 손으로 소금을 움켜쥐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을 보고 눈물 글썽이며 동경한 적도 있었다. 태양, 바람, 여인들의 눈물과 땀으로 이뤄진 애환의 삶, “저
몇 년 전에 우연히 마광수 교수의 시집 ‘시선’을 읽다가 그분 시에 대해 남다른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출판된 서적을 찾아보니 굉장히 많아서 예전에 읽었던 몇 권의 소설외의 그의 작품을 모두 찾아서 읽어보고 소장하게 되었다. 대개 마광수 교수에 관하여 논란이 된 소설 ‘즐거운 사라’나 수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쓴 연세대 국문학 교수로만 기억하고 있다. 그나마 그의 책을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언론을 통해 외설작가로 낙인이 찍혀 많은 작품들이 덩달아 매도당하고 있는 느낌이다. 필자가 만난 사람들 상당수가 마광수 하면 외설작가로 인식하고 터부시 하는 것 같았다. 그분의 책 한 권이라도 읽어봤냐고 물으면 대개가 TV를 통해서 전해들은 게 전부란다.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독특한 부분을 받아들이기가 쉽지가 않다. 문인들 사이에서도 그렇게 인식되어 있으니까... 페미주의, 반페미주의, 새디즘, 마조히즘 등을 별개로 하고 그분의 글들이 나로서는 무척 재미가 있고 읽기가 편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책을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되었고 점차적으로 묘한 매력에 끌리게 되었다. 그 당시(80~90년대쯤)의 엄격했던 도덕적 잣대에 대해서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보다 보니 평창 올림픽이 떠오른다. 베이징 올림픽이 논란도 많고 언짢은 장면들로 인해 많이 비교되었지만 그중에서도 평창에서의 드론 공연은 특별하게 황홀했던 기억이 난다. 오래 전 초등학교시절부터 조립품을 만들거나 공예품을 직접 만들어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며 은근히 으스대기도 하고 환심을 사곤 했다. 쓸 데 없는 곳에 용돈 써가며 동전 모으기, 미니장난감, 여행 뺏지 등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들을 온 방 가득 채우느라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혼도 많이 났다. 나이가 들면서 취미도 점차 업그레이드 되어 대학 다닐 때는 성인용 레고에 흠뻑 빠져 레고 쌓기를 하면서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 외에는 크게 말썽부리는 거 없이 치과대학을 갔으니 부모님은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신 듯하다. 여행을 다니다가 높은 산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지상에서 보는 세계와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세계가 많이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한때는 ‘나도 날고 싶다. 조종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적도 있었다. 뭔가를 하고 싶기는 한데 떠오를 듯 떠오를 듯하면서 혼란스럽기만 했던 그 무렵, 평소 잡다한 도구나 기계를 이용해서 공작물을 제작하는 취미가 있던 나
살면서 우리는 차마 경험하고 싶지 않는 일들을 무수히 많이 보고 겪게 된다. 운 좋게 피해갈 수도 있겠지만 맞닥뜨려야 하는 경우엔 슬기롭게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광우병소, 돼지독감, 조류독감으로 수만, 수십만, 수백만 마리의 가축을 살처분 할 때는 동물들도 생지옥이지만 현장에서 근무하는 담당자와 종사자들에게도 끔찍한 일이다. 그로 인한 트라우마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분도 많다고 한다. 예전에는 살처분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지만 요즘엔 모두의 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흔히 있는 일이고 보면 동물을 희생시켜야만 인간이 산다고 하니 면죄부를 주는 잔혹함이다. 인간과 함께 살며 늘 친밀감을 유지하던 동물들조차 쥐, 파리, 모기와 같은 유해동물과 해충처럼 취급해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또 생태계를 파괴하거나 교란시키는 까치, 멧돼지, 뉴트리아, 황소개구리 등을 퇴치하기 위해 살육을 하는 일들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로드-킬로 도로가에 희생된 동물들의 사체를 보고도 지나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지만 직접 수거해서 처리하는 분도 있기에 그냥 모르고 넘어가는 일이 많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누군가가 해야만 우리사회가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렇듯 동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