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함을 참지 못해 철길에 귀를 대면 먼 곳에서부터 덜커덩 잠이 온다 길은 무수히 뻗어가고 너의 안식은 안개꽃처럼 흐려진다 홀라당 뒤집어져 버린 풍뎅이의 몸부림, 퍼득이는 힘겨운 나비의 날갯짓, 헝크러진 상자에서 빛바랜 몇 장의 사진이 제멋데로 불쑥 나와 낯설게 응시한다 떠난 지 오래된 너는 보내지도 못한 나를 자꾸만 불러 돌이켜 세운다 임창하 원장 -2014년 《시선》 등단 -계간지 《시선》 기획위원 -시와 고전을 찾는 사람들 회장 -미래창조독서토론회 활동 중 -현) 임창하치과의원 원장
첫새벽 골목 귀에서 부는 바람을 깨우는 외마디 풍경(風磬)이 되었으면 좋겠네 먼 길 가는 봇짐 속 베개가 되어 환희(歡喜)의 눈물로 젖어졌으면 좋겠네 비상하는 독수리의 눈이 되어 수평선 너머 설산(雪山)을 보았으면 좋겠네 솟구치는 나뭇잎이 되어 담장을 넘고 들창문 붉은 심장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네 징검다리를 건널 때 찰랑이는 냇물이 되어 충혈(充血)된 발목을 어루만졌으면 좋겠네 늦은 밤엔 시(詩)가 되어 시절 없이 어리숙하기만 한 고단함을 녹였으면 좋겠네 임창하 원장 -2014년 《시선》 등단 -계간지 《시선》 기획위원 -시와 고전을 찾는 사람들 회장 -미래창조독서토론회 활동 중 -현) 임창하치과의원 원장
아마도 깊은 심연 궁정 정원사였을까 덩굴손이 바삐도 움직인다 한때 성벽을 기어올라 파수꾼 노릇도 했다더니 매끄러운 몸에 줄무늬 문신이며 북소리도 제법 파문(波紋)을 일으킨다 꿈을 꾼 것이다 속살 파내어 뱉어내고 피멍울에 시커먼 씨를 받았다 배가 불러오는 것이다 만삭이기 전에 수면으로 치닫는다 일탈이 아닌 꿈을 꾼 것이다 대륙과 초원의 꿈은 고달프고 초라하기도 했다 가끔 멋들어진 연회에 장식이거나 종막이 되어 주기도 한때 씨받이로 모양을 바꾸기도 했지만 꿈은 지울 수 없었다 산비탈, 햇빛과 구름과 바람과 비를 담고 이슬과 그늘과 달빛과 별빛으로 빚어 맑고 고운 날 해거름 평상에 둘러앉은 이들에게서 쩌억, 벌어져 선홍 꽃들을 피우는 것이다 임창하 원장 -2014년 《시선》 등단 -계간지 《시선》 기획위원 -시와 고전을 찾는 사람들 회장 -미래창조독서토론회 활동 중 -현) 임창하치과의원 원장
살얼음길 걷다 보니 걸쳐진 그림자도 반 토막이다 새알 같은 모이를 먹고 솟대처럼 돋아 오른 반달 채우기 위해 반쪽은 버렸다 긴 밤을 통째로 먹어 눈썹 하나 문지방에 떨군 문둥이같이 설운 밤 어눌하고 불온한 사랑이 천형(天刑)처럼 건너간다 임창하 원장 -2014년 《시선》 등단 -계간지 《시선》 기획위원 -시와 고전을 찾는 사람들 회장 -미래창조독서토론회 활동 중 -현) 임창하치과의원 원장
손바닥에 한 획(劃)을 그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떨림이 있다 보푸라기 투성이에 그늘지고 옹이가 있는 이곳은 어디쯤일까 장문(掌紋) 여러 줄기 따라가다 여울물 소리 가까워져 다가서 보니 보듬고 구르는 돌의 몸짓이다 눈 부릅뜨고 들여다보니 멍이 든 자리마다 지천으로 꽃이 핀다 세월은 가고 돌은 구르고 꽃은 핀다 임창하 원장 -2014년 《시선》 등단 -계간지 《시선》 기획위원 -시와 고전을 찾는 사람들 회장 -미래창조독서토론회 활동 중 -현) 임창하치과의원 원장
바다는 품는 것이 아니다 품어지는 게 아니다 함덕에 오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대라는 이름으로 바람이든 파도든 물어야 한다 가까운가를, 소원한가를 제주 함덕에 오면 소멸이거나 명멸하거나 환이다 담았다가 끝도 없이 가 오는 숨 트임 술렁거림이다 아! 함덕은 저기 노을이다 바짝 들이대는 숨통이다 경계가 모호한 숨 트임이다 이게 무거운가 그럼 돌이켜라 그대는 단지 파도도 바람도 이기지 못한 것이다 함덕에 오려거든 그리움으로 오지 마라 함덕에 오려거든 서글퍼서도 오지 마라 그대여 오라 사방에 눈먼 바다에 오징어 배 불빛같이 무심한 그대가 오라 함덕에서 덤덤하게 널 보련다 눈이 먼 너를 바람이든 파도이든 눈 맞추어 보리라 눈이 먼 너를 품에 임창하 원장 -2014년 《시선》 등단 -계간지 《시선》 기획위원 -시와 고전을 찾는 사람들 회장 -미래창조독서토론회 활동 중 -현) 임창하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