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철학이나 심리학과 관련된 책을 찾아서 읽게 됩니다. ‘마흔에 읽는 니체’라는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읽다가 니체의 철학에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니체의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말은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절대적인 가치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스스로 가치를 세우는 것만이 의미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니체가 말한 것들이 있지만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인 우연과 필연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니체는 사람들이 믿는 두 가지 영역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목적과 의지의 영역,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연의 영역입니다. 목적과 의지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자 계획하고 노력하는 부분이고, 우연은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발생하는 일, 즉 운입니다. 어렸을 때는 우연의 영역보다는 목적과 의지의 영역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특히 학업적인 부분, 공부해서 시험점수를 올리는 일은 운이란 요소보다는 노력이란 요소가 더 많은 작용을 합니다. 다이어트를 해서 살을 빼거나 웨이트 운동으로 근육을 증가시키는 일도 운보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마흔이 되어서 보니 운이라는 요소의 중요성도 점점 커지는 것이 보입니다. 치과개원을 하고 치과가 잘 운영
지난 칼럼 ‘분주함에 중독되지 않기’에서 ‘체계적인 분주함이 아니라서 고통스럽다’라고 말씀드렸었습니다. 그렇게 어느덧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저도 참 갈팡질팡 한다고 느끼는 것이 그 전 칼럼의 글 소재가 욕망이나 미라클 모닝처럼 뭔가 지치지 않는 도전정신을 강조해왔었는데, 그새 또 ‘이건 아닌데’라는 스탠스에 서 있으니 일관성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마음에 어떻게 해야 할까 하다가 원씽(The One Thing)이란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부제가 ‘복잡한 세상을 이기는 단순함의 힘’인 것처럼 분주함에 고통스러워하는 저에게 맞는 책이었습니다. 사실 10년 전에 읽었던 책이었는데, 그날 창업한 법인의 방향 설정을 다시 하는 피봇팅을 오래 고민하다가 갑자기 그 책이 다시 떠올라서 찾아서 읽었습니다. 책의 제목 그대로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에 집중하라는 내용입니다. 당시에는 10년 전이니 제 나이도 30대 초반이었고 결혼도 안 한 총각에 막 전공의가 끝나갈 무렵이라 그렇게 분주하지 않았기에 책의 내용이 구구절절하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녀가 둘인 40대이며 여러 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지금 책의 내용이 절절하게 와닿았습니다
스펙트럼 칼럼의 마감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글감이나 제목을 미리 생각해 놓고는 합니다. 그때 유난히 일의 효율도 떨어지는데 여유는 없어서, 왜 그렇지 의문을 가지다가 지나치게 분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일을 많이 해서 바쁜 것과는 다르게 분주하다는 것은 산만하고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다는 상태입니다. 쉬어야 할 때도 여유를 갖고 충전을 하는 쉼이 아니라 분주하게 스마트폰을 보거나 한 콘텐츠를 끈기를 갖고 오래 깊이 보는 것도 어려워집니다. 분주의 사전적 의미는 국어사전에서 “몹시 바쁘게 뛰어다님”을 의미합니다. 분주함을 일이 많고 바쁨과 동의어로 착각하면서 긍정적 의미까지 부여하면 분주함에 점점 더 중독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체계적인 바쁨과 다르게 일들이 밀려서 점점 쌓여가는 상황으로 가기 쉬우며, 마감을 수시로 못 지키게 되고, 그때그때 정말 급한 것들만 처리하는 상황이 됩니다. 특히 스마트폰, 메신저, 메일의 알림들은 더욱 우리를 분주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서서히 분주함에 중독되면 자각도 못한 채 고통스러워집니다. 일을 안하고 쉬는 시간이 되어도 분주함을 유지하는 그 습관만은 남아 제대로 못 쉬고 분주하게 스마트폰 뉴스나 콘텐
작년 11월에 약간 큰 규모의 과제를 도전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진행하는 과제들도 많이 버거운 상황인데다가, 신규과제를 준비할 시간도 많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이런 고민을 하였습니다. 조금 적당히 하면 어떨까? 여기서 뭔가 더 해야 될까? 여기서 만족하고 멈추는 것은 안될까?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은 욕망이었습니다. 능력이 부족해도 더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실패해도 도전하고 싶다는 결정으로 이끌게 되었습니다. 결국 2차 발표까지 하였지만 최종 선정되지 못했습니다. 그 주에 잠을 줄여가며 밤을 새는 경험을 하고, 아주 탁월하게 완성도를 최대로 올리지는 못했지만, 한계 내에서 할 수 있는 정도로 열심히 한 것(최선이라는 말은 제가 쓰기가 꺼려집니다) 자체에 상당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12월에도 제가 창업한 법인의 대표로 창업경진대회 발표도 하였습니다. 사실 이런 것에 도전하겠다고 하면 이후에 시간을 많이 쓰게 됩니다. 게다가 해외 출장도 있어서 정신이 없었지만, 안 하였을 때의 후회가 더 클 것 같아서 도전을 역시 해보았습니다. 물론 수상 과제 순위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제 새해 1월이 되면서 그동안 한 연구과제들의 보고서 제출 기한들이 다
10월 말이 되가면서 기온과 습도가 떨어지니 눈이 뻑뻑하고 충혈될 때가 많습니다. 모니터를 많이 보게 되고, 아동구강건강실태조사로 일찍 일어나서 장거리 운전을 많이 하니 증상은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마흔 이후로 신체가 더 예민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혼술도 이전과 다르게 거의 안 하게 됩니다. 음주로 인한 기쁨보다 힘듦이 더 큰 것 같습니다(물론 그래도 좋은 사람들과의 음주는 무리해서 다음날 피곤해도 기쁨이 더 큰 것 같습니다). 건강관리, 아니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서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 또는 그 이상 미라클모닝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절대적으로 제가 일하거나 깨어 있을 수 있는 시간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새벽에 깨어나면 그 조용한 느낌은 무언가 묘하게 좋은 기분을 받습니다. 밤에 놀면서 느끼는 기분과 다릅니다. 게다가 새벽이 지나고 일상적인 하루가 다시 시작될 때 차분하고 긴장감이 완화되는 기분도 매우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냥 저는 이를 새벽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뽕이라 하면 마약과 같은 어두운 느낌도 있지만, 국뽕과 같은 무언가에 도취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술을 마시는 이유도 취해서 그 뽕끼를 느
작년 4월말에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후속편에 해당하는 칼럼을 쓰고자 합니다. 고통은 영어로 pain이 아니라 suffering이라고 합니다. 통증이 pain이고 고통은 정신적인 부분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점점 더 지금은 너무나 할일이 많습니다. 마감이 넘겨지는 일들이 많고 이마저도 독촉이 없으면 안하거나 독촉이 오면 ‘미안합니다. 오늘 바로 해드릴께요’하고 겨우 2-3일내로 해서 드리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무언가 일을 할때 상당한 불안감이 아주 많이 생깁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하고 있는데 지금 안하고 있는 나머지 일들이 내가 갖고 있는 제한된 시간내에 잘 될까하는 생각이 저의 머리를 지배합니다. 그중에는 남들의 부탁으로 하는 일도 있고, 저한테 매우 중요한 일인데 못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런 불안한 찝찝함은 금요일 저녁에 퇴근할 때 최고조에 달합니다. 왜냐하면 내일은 일을 못하는 정확히는 육아를 해야되는 주말이니깐요. 특히 지난 추석연휴 전 목요일 저녁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날 잠에 잠들면 적어도 일요일 저녁 전까지는 기분이 괜찮습니다. 분명히 어제 할일이 많아서 이거 어떻게 하나
‘무엇을 할 기분이 안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 ‘무엇을 할 체력이 없다’라는 말도 있고, ‘그 일을 할 시간이 없어 너무 바쁘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시간이란 인풋이 없으면 일을 못하는 것은 너무 자명합니다. 또한 체력도 중요합니다.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간만 많다고 일을 하기란 어렵습니다. 누워있는 상태에선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근데 ‘체력과 시간도 있는데 무엇을 할 기분이 안든다’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공감이 되십니까? 아니면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이를 에너지라고 바꿔서 표현합니다. 기분이 안든다는 경우는 감정적 에너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너지라하면 이는 시간, 체력, 감정의 복합체가 됩니다. ‘시간관리를 잘해라’는 많이 들어봤습니다. ‘체력관리를 잘해라’도 많이 들어봤습니다. 드라마 미생에서 주인공인 장그래가 들었던 말이죠. 근데 ‘기분관리를 잘해라’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대신에 감정조절이나 기분조절을 잘해라는 말은 있지만, 이는 관리와 다르게 나빠지지만 않게 하라는 억압적 통제 성격이 강해보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할 기분이 안든다’라는 말은 다소 사치스럽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마흔은 불혹(不惑)이라 하여 하늘의 이치를 깨달아 마음의 흔들림이 없는 나이라고 하였습니다. 과거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낮은 공자가 살던 시기에 지은 말이니 지금의 연령과는 맞지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 마흔이란 나이는 조직에서 중간관리자 역할을 하는 나이이기도 합니다. 조직의 허리라는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결혼을 해서 자녀가 있는 경우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시간을 많이 같이 보내야 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본인이 좋아하는 일들보다 주변에서 요구하는 책임들이 더 많아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신체적으로도 만40세를 생애전환기라고 부르며 이전에 건강검진 때 안했던 새로운 항목들이 추가되는 것을 보면 기존의 이삼십대와 다르게 체력적으로 약해지는 나이이기도 합니다. 술을 마셔도 이전과 다르게 술로 좋은 기분이 드는 것보다 다음날 힘들어지는 것과 그로 인한 걱정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여름에 찾았으나 이제는 속이 예민해질까봐 걱정되어 목이 마르지 않을 때는 한 여름에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로 주문을 합니다. 신체적으로도 더 예민해지고 불편한 자세나 행동은 안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마흔은
원래는 미라클모닝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했었는데, 이 글을 쓰는 시점인 4월 1일 현재 시점에서 미라클모닝을 안한지 거의 한달 가까이 되서 다른 소재로 글을 써야 하나 고민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글에서 미라클모닝에 대해서 쓴다고 말씀도 드렸었고, 12월말부터 2달 정도는 열심히 했었던 것은 사실이고 그때 느꼈던 것도 많았기에 하다가 못한 과정까지 포함하면 좋은 글감이 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SNS기록을 보니 12월 25일부터 시작했었고, 2월초까지는 주로 매일 새벽 5시 전후로 일어났었습니다. 2월 8일자에 쓴 글을 보니 46일 중 33일을 새벽에 기상했었으니깐 삶의 밀도를 많이 올린 것 같습니다. 늘 그렇지만 특히 당시에 해야될 일들이 삶의 일상을 채웠었고, 하고 싶은 일들은 우선 순위에 밀려서 답답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던 차에 미라클모닝으로 새벽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밀린 일들을 밤늦게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정신력이 예전같지 않아서 늦은 밤까지 일을 하다보면 효율이 많이 낮아지는 경험을 자주 하다보니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녁시간이나 주말에 일을 하면되는데 영유아 자녀가
저번에는 메타버스에 대해서 글을 썼는데, 이번에는 멀티버스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얼마전에 ‘스파이더맨:노웨이홈’이란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스파이더맨은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도움을 청하려다가 주문을 망치면서 멀티버스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뒷수습을 하게 되는 스토리입니다. 영화를 보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나라는 존재가 미래에 무수히 많은 멀티버스의 나로서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히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해온 선택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집합체입니다. 내가 선택한 전공, 직업, 배우자 같은 큰 결정 뿐만 아니라 그날 누구를 만나고 더 게으를지 또는 부지런할지의 선택으로 지금의 내가 여기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내가 하는 선택도 마찬가지로 미래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나 중 한 명을 택해서 소환하게 하는 작업이 이뤄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라는 존재는 그렇게 보면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죠. 비슷한 말이 조던 피터슨의 ‘질서 너머’란 책에도 나옵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그런 점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문득 지금 40 초입에 접어든 제가 10년 전과 20년
최근에 메타버스란 용어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사전적으로 메타버스는 ‘가상’, ‘초월’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세계로 정의됩니다. 영화 레디플레이어원의 초입 부분을 보면 메타버스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회사원들 사이에서는 기획서를 통과시켜주는 마법의 키워드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이러한 메타버스가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비대면으로 하는 회의나 재택업무가 일상화되면서 2D로 보는 화면보다 더 진짜 같은 가상공간이 필요해진 수요에서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전화기가 발명된 이래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방식은 인터넷을 이용하여 채팅을 넘어 화상회의를 할 정도로 원거리에서 고도의 연결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넘어서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기술을 사람들은 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방치과를 전공했고, 과거에 대면으로 이루어졌던 구강보건교육이 현재 코로나로 못하고 있는 상황을 잘 알기에 이러한 연결과 관련한 새로운 기술 및 트렌드에 관심이 많이 갑니다.
지난 주에 오랜만에 서점에 가보았습니다. 육아 때문에 서점에 가서 여유롭게 책을 볼 시간이 없었는데, 여유시간이 주어져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젊은 시절에 한가할 때 했던 서점 가서 책 둘러보기를 하였습니다. 항상 서점에서 비소설인 책들을 주로 읽었습니다. 철학이나 재테크, 자기계발서와 같은 내용들을 선호하였었는데, 그날은 재미있는 소설들이 눈에 들어오다가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눈에 들어와서 초반부를 서점에서 보다가 구매하고 집근처 까페에서 단숨에 읽어 보았습니다. 주인공인 김부장은 흔히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50~60대 꼰대 이미지를 한 사람을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늘 1등으로 출근해서 꼴등으로 퇴근하며, 퇴근 먼저 하는 팀원들에게 한 마디씩 툭툭 던지며, 회식은 고기에 소맥 말아먹고 2차는 맥주집, 3차는 국밥집으로 가는 식으로 묘사합니다. 김부장은 오래 전에 산 자가아파트 시세를 확인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명품 가방이나 시계를 갖고 다니며 속으로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라고 비교우위를 확인하며 즐거워하고, 때로는 낡은 차를 타고 다니는 회사 동기를 은근히 속으로 무시하고 있었다가, 자기가 사는 아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