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을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여겼던 고대 사회의 ‘함무라비 법전’이나 ‘피 피루스 에베르스(Papyrus Ebers)’에 치과 치료와 관련 있는 내용들이 나온다.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에서 효과적인 발치용 도구(발치겸자)가 출토된 적도 있다. BC6000년경의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치아 모양으로 깎은 상아나 동물의 뼈 등을 사용하여 치아가 상실된 결손부에 심으려고 갖은 노력들을 다한 흔적들이 보인다. 기원 후 600년경에 매장되었던 마야인의 유골에서는 치아 모양으로 다듬어진 조개껍질이 아래턱에 심어진 채로 발굴되기도 했다. 고대인들은 또한 금속으로 띠를 만들어 중간에 빠진 치아를 다듬어서 묶어주고 이를 옆의 치아와 연결해주는 방법으로 상실된 치아를 수복하고자 했고, 중세기에는 뽑아버린 귀족의 치아를 원상회복시켜주기 위한 방법으로 많은 농노들이 자신의 건강한 치아를 뽑아서 팔았다. 그 치아를 비싼 값에 산 거리의 이발사들은 귀족의 망가진 치아를 뽑고 뽑은 자리에다 가난한 자의 건강한 치아를 심어 주었다. 그러나 세균에 의한 감염, 면역학적 거부 반응, 조잡한 재료, 일관되지 못한 작업성 등으로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무모한 시도가 대부분이었다. 기원전 280년경에
잘가! 차밍걸! 경주마의 마주로서 너와 함께 했던 시절 정말 행복했다. TV와 신문 한 면에 너에 대한 얘기가 크게 실렸을 때 나는 뿌듯했다. 한때 네가 나보다 훨씬 유명했었다. 101전 101패 경주마로서 최고기록을 남긴 채 이제 더이상 너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오호 哀哉라! 슬프도다. 노란 은행잎이 흩날리고 늦가을의 찬 기운이 나를 휩싸고 만추의 스산함과 축축한 천기가 내려앉은 11월 3일(이날은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이 아니더냐). 너는 한 많은 생을 뒤로하고 천상 마구간으로 영원한 여행을 떠났다. 초식동물에게 제일 무서운 산통(배앓이)을 앓게 되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고 해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전화가 궁평목장 유 사장으로부터 왔다. 안락사뿐 다른 방도가 없다니 할 수 없이 허락했다. 하늘이 무너지듯 앞이 캄캄했다. 弔針文 작가 兪씨 부인은 애지중지하던 바늘이 작근둥 부러졌을 때 그 슬픔을 구구절절 달래며 아파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살아 있던 너를 저세상으로 보내야 했으니 얼마나 처절한 일인가! 경주마로 은퇴 후 새로운 도전의 길로 장애물 비월, 마장 마술, 국가대표말이 되기 위한 꿈을 키우기 위해 훈련 하던 중 이 지경이 되
“빨강, 빨강 황톳길 저기 저 고개/ 언제나 하늘 붉은 저녁때이면/ 막대 잡은 할머니가 넘어갑니다.” 귀동냥으로 배워 제목도 모르는 노래다. 할머니는 무사히 집에 가셨을까? 소년은 넘어가 본 적 없는 저 먼 고개 너머가 얼마나 궁금했을까? 김동환 시 김규환 작곡 <남촌>은, 박재란이 <산 넘어 남촌애는>(김동현 곡) 이란 제목으로 다시 불러 가곡과 대중가요가 상생한 드문 경우다. 봄이면 따뜻한 남풍을 실어 오는 산 너머에는 진달래 향기와 보리 냄새를 만드는 ‘꿈의 공작소’가 있기에 하늘빛까지 저리 곱다는 시인…… 시인의 상상력이 파란 하늘보다 더욱 고와서 다투어 곡을 붙인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는 사시사철 왼 종일이 아름답기에, 이 항구는 영원한 세계 3대 미항이다. 그런데 자살자가 끊어지지를 않는다. 드넓은 북미대륙을 가로질러 몇 날 며칠을 달려왔더니, 이제 ‘그 길’은 끝이란다. “Death of the Road!” 더 이상 갈 곳을 잃은 나그네는 금문교 난간에 서서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다가 끝내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다. 미국의 극작가 오닐(Eugene O’Neal, 1888-1953)은 <지평선 넘어>(Beyond
도시는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곳을 스쳐간 사람들의 삶과 추억이 녹아 있고, 함께 살았던 동물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재개발에 밀려 사소한 것은 생각지도 않는다.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고 살아왔다. 분명 내 것이 아님에도 나누지 않고 내 것인 양 안하무인으로 살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하느님은 창조 때부터 인간은 모든 생물들과 더불어 살기를 원하셨다. 인간의 욕심과 잘못된 생각이 모든 걸 빼앗아간다. 그 욕심 때문에 많은 생명체가 사라지며 생명체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나는 위례 신도시 재개발 지역을 지날 때마다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지난 여름 장맛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남성대 아랫쪽 쌍둥이 골프장 수로와 늪지대에서 맹꽁이 소리를 들었다. 서울에서 듣기 힘든 반가운 소리였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 ‘맹꽁, 맹꽁’ 소리가 나는 쪽을 찾았다. 바로 수로에서 나는 소리였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장맛비가 쏟아지던 날 듣던 맹꽁이 소리 바로 그 소리였다. 서울 근교에서 이 소리를 듣다니 가슴이 뛰고 벅차 숨이 막히는 듯했다. 귀를 의심했다. 맹꽁이는 생체 크기가 3~4cm 정도이다. 땅속에 살
대전은 본시 식장ㆍ보문ㆍ계족(食藏 寶文 鷄足) 세 개의 산이 둘러싼 해발 100m의 아늑한 분지다. 계룡산 영험한 정기에 힘입어 홍수ㆍ태풍 등 자연 재해가 모두 비껴간다. 조선조 궁궐터 후보 영순위로 천하의 무당이 모여들어 치성을 드렸으며, 결국 삼군의 심장부 계룡대ㆍ자운대 및 정부종합청사가 옮겨왔다. 그래서 이제는 광역시로 훌쩍 컸다. 먹거리를 품었다는 남쪽 식장산은 가끔 검게 탄 쌀이 나오던 신라ㆍ백제의 경계로, ‘성재’라는 능선 이름(옛 백제)을 전한다. 가장 높은 598m의 수리봉에는 휴전 후에도 대전고에 주둔했던 미 통신대대와 태평양사령부를 잇는 중계 탑이 있었다. 신흥초등학교는 겨울방학에 상급반 학생을 불러내 식장산에 올랐다. 선생님은 몽둥이 들고 밑에서 기다리고 학생들은 위에 올라가, 일제히 와! 함성을 지르며 내리달리면, 앞다리 짧은 토끼가 놀라 뛰다가 나뒹굴어 선생님들 손에 잡힌다. 한겨울 극기 훈련이요 영양 보충이었다. 서쪽 보문산은 전망 좋은 보물이다. 제일 높은 시루봉(457m)에 오르려면 마지막 100m는 급경사 유격훈련장이다. 술과 담배를 배운 추억의 산, 공원도 많은 데이트코스다. 신라가 쌓은 동북쪽 계족산성(423m)은 야경이 일
은퇴를 하고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고파 옛날 일기를 들춰보다가 약간 누렇게 바랜 흑백사진 한 장이 일기장 갈피 사이에서 툭 떨어졌다. 무심코 들고 보니 차이나 의사 가운을 입은 삼십 대 인물과 스포츠머리에 어깨가 다부진 이십 대 청년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약간은 긴장되고 어색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좀 오래된 기억이긴 하지만, 육군치과군의관으로 오랫동안 주로 국군통합병원의 군의관으로 복무하다 소령으로 예편하였다. 그해 4월초에 서울 중구 퇴계로2가 남산동 입구, 덜그럭거리는 낡은 나무 계단이 있는 일본식 목조건물 2층에 치과의원을 개업했다. 개업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관계로 토ㆍ일요일에도 병원 문을 열고 진료를 했던 터였다. 오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조금 지났을까. 웬 수수한 초록색 티셔츠를 입은 약간 촌티나지만 순박해 보이는 청년이 오른손으로 오른쪽 턱을 감싸고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처음엔 못 알아보았으나 간호사가 차트를 기록하고 치료 의자에 그를 인도해 앉았을 때 비로소 그가 그 유명한 축구 스타 차범근 선수라는 것을 알았다. 첫인상은 얌전하고 마음씨 착한 평범한 시골 청년 같았다. 스포츠머리에 어깨가 떡 벌어진 다부진 체격이었다. “
금병산(錦屛山)은 이성계가 조선 창업의 큰 뜻을 품고 8도를 돌며 기도하다가 “비단 병풍을 갖추고 치성하라.”는 현몽을 얻어 찾은 곳이라고 한다. 최고봉이 372m로 대전 유성구와 세종 금남면에 걸쳐 열두 봉우리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다. 비단 병풍 아늑한 품 안에 대한민국 군사교육ㆍ훈련시설인 자운대가 둥지를 튼 지 어언 27년이다. 수운교 도솔천을 돌아 소하천을 거슬러 눈부신 억새밭을 지나면, 사방댐 위로 탄동천 맑은 물 7.4Km의 발원(發源)지를 만난다. 탄동교에서 물 따라 한국기계연구원과 애경ㆍ대림ㆍ쌍용ㆍ한국타이어ㆍ호남석유 및 화학연구소를 거쳐 신성교에 이른다. 여기서 탄동천과 갑천이 합류하는 2.94km가 ‘숲향기길’이다. 갑천은 다시 흘러 저 아래서 금강과 합류한다. 도룡동 집에서 출발 국립중앙과학관까지 남행하여 우회전한 뒤 만나는 매봉교에서 신성교까지가 바로 ‘선택 2호’의 하이라이트, ‘숲향기길’이다. 신성교에서 다시 우회전하면 연구단지 네거리를 넘어 집에 온다. 합계 9,000보로 건강을 위한 하루 권장량을 너끈히 넘긴다. ‘숲향기길’의 춘하추동은 벚꽃ㆍ녹음ㆍ단풍ㆍ갈대다. 그 사이로 탄동천이 흐른다. 물줄기가 완만한 곡선이 오선지라면, 드문드
대로변에 개원을 하고 있기에 아동 환자를 보는 일은 많지는 않다. 사실 어린이 환자를 보는 게 노인 환자나 장애인 환자를 보는 것보다 몇 배 진료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나에게는 다행스런 일인데 어린이 환자를 무턱대고 안 본다고 하면 어린이 환자 뒤에 숨겨진 잠재적 부모 환자도 놓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초등생 미만의 유아나 소아 환자의 경우 여간 치료하기가 힘든 건 다 아는 사실인데, 이때 진료 시 부모의 행동을 보면 다양하다. 아이가 진료 거부 시 주로 부모가 아이를 설득 후 진료를 하는데 휴대폰에 있는 동영상을 직접 보여주면서 진료하는 경우도 있고, 아이가 좋아하는 선물을 사 주겠다고 약속을 한 경우 아니면 뜸하긴 하지만 윽박지르 는 경우 등 다양하다. 과거 아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는 이제 찾아볼 수가 없는 것 같다. 술자 입장에서도 겁박을 주거나 물리력을 행사하다가는 곧바로 부모로부터 제지가 들어오므로 대화를 통한 아이 설득을 하되 실패할 경우라면 어린이만 전문적으로 보는 치과로 보내게 된다. 며칠 전 월요일 대기실에 환자가 북적거리는 소리가 들려 오늘도 힘든 하루가 되겠다 싶었는데 6세 어린이 환자가 아빠와 함께 내원하여 진료를
손에 익은 핸드피스를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자판을 두드리니 막상 글발이 더디다. 글발의 발이 디디는 그 발이 아니요, 글발의 본뜻은 ‘글월 또는 문맥’임을 익히 알지만, 말끝에 달린 ‘발’을 꼬투리 삼아 글짓기의 완급에 비유함도 이 또한 글쟁이의 특권이요, 무료함을 달래주는 심심파적(破寂)이다. 마감에 쫓겨 가며 회무(會務)와 진료 틈틈이 원고를 쓸 적에는 조금만 더 여유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는데, 정작 멍석을 깔아 놓으니 해찰을 부린다던가?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머릿속이 멍하고 생각이 멈추면 제 몸을 괴롭힌다. 궁지에 몰리면 머리를 쥐어뜯는 기사 조치훈의 심정을 짐작한다. 자해는 자위와도 통한다던가? 젊은이처럼 샌드백을 두들길 수도 없으니 일단 갑갑한 방을 탈출한다. 마련해둔 사랑방이 마침 엑스포 공원 부근의 오피스텔인 덕분에 산책 코스는 차고 넘친다. ‘선택 1호’는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한밭수목원이다. 엑스포 시민광장을 가운데 두고 동서로 나뉘는 한밭수목원은 갑천을 경계로 하여 북쪽은 무지개다리로 이어지는 엑스포 과학 공원과 남으로는 예술의 전당ㆍ시립미술관ㆍ고암미술관ㆍ연정국악원ㆍ평송 청소년문화센터 등 문화예술-콤플렉스의 허파 노릇을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경험을 하고 내가 가지 않는 길은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느끼지만 직접 경험한 것에 비하면 그 현실감이나 진면목을 알 수는 없는 것 같다. 젊은이는 열정과 패기가 있어 추진력이 좋지만 경험이 미숙하여 시행착오를 겪는 경우가 많은데, 연세가 드신 노인 분들의 인생 경험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 참으로 많고 또 그분들의 지혜를 받아들인다면 살아가는데 실수를 하지 않거나 적게 하리라고 본다. 지천명이 넘고 지금까지 살면서 “옛 선현이나 어른들의 말씀에 틀린 것이 없다”라는 것이 새삼 피부에 와 닿는다. 가령 나이를 먹으니 왜 이리 세월이 빨리 가나? 50대는 시속 50km, 60대는 60km로, 70대는 70km로 간다고 하는 말씀에 공감을 한다. 20대 대학 다닐 때는 그저 친구가 좋아 부모님은 안중에 없었다. 부모님께서 나를 걱정해서 하시는 말씀과 건강에 관한 얘기들은 하나의 잔소리로 들렸고 바라보는 관심사가 당연히 다르기에 세대차이로 치부해 버렸다. 며칠 전 대학생인 아들 녀석이 친구랑 3박 4일 동안 제주 여행을 간다는 얘기를 아내에게 듣기는 했으나 제주에서 며칠간 무얼하고 언제 돌아오며 누구랑 가는지 일언반구도 없이 새벽에 일찍
인간은 직립보행 덕분에 지구의 패자(霸者)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 눈에 익은 인류의 진화과정은 똑바로 설 때까지, 허리 펴기 운동의 매우 느린 슬로우 비디오였다. 먼저 땅바닥에서 해방된 앞발이 손으로 진화하자 엄지를 접어 연장을 쥐고 양손이 협력하여 정교한 물건을 만들어냈다. 둘째 인지능력 향상이다. 두 눈이 감시탑처럼 높아지니까 외적이나 먹이의 포착 능력이 향상된다. 셋째 운반 능력이 늘었다. 들고 메고 등에 지며 머리에 인다. 보자기와 괴나리 봇짐이 채반과 고리짝으로 바뀌는 동안, 서양에서 들여온 형형색색의 가방 이 수하물계를 평정하였다. 그중에 등에 메는 배낭은 등산처럼 험한 기후나 지형에서 요긴하게 쓰인다. 넷째 글 쓰고 악기를 다루며 각종 스포츠 등 문화의 발달도 손의 사용 덕분이다. 그러나 한편 인간의 욕망은 귀하게 얻은 두 손을 더 큰 이익을 위하여 악용한다. 무기를 들어 침략과 억압의 군대를 양성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고 상대방도 무장을 하여 인명살상 무기의 가공할 확장 경쟁이 시작되면 결국 전쟁으로 이어진다. 여성은 왜 명품 백에 열광하는가? 옷맵시에 둔감한 실전용의 남자 평상복에는 주머니가 주렁주렁하다. 오히려 신변잡화가 많고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