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치대 유학을 오기 전, 호주 골드코스트(Gold Coast, Queensland)에서 1년간 지낸 적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출발을 하고 싶었던 나는 졸업식이 있던 다음날 무작정 비행기 티켓을 끊고 호주로 건너갔다. 특별한 목표나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친한 고향 친구 J가 골드코스트에 살고 있었고 어릴 적 영국에서 학교를 다녔기에 영어권 나라가 아무래도 익숙했었다. 무엇보다 꽉꽉 막힌 것 같았던 내 청춘의 돌파구가 필요했었다. 골드코스트에 도착한 나는 J의 소개로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는데 홈스테이 가족은 친구 J가 호주에서 초중고를 다닐 때 줄곧 케어 해주신 분들이었다. 대단히 활동적인 가족이었는데, 그 덕분에 틈만 나면 야외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었다. 바베큐부터 시작하여 캠핑, 낚시, 해안 조깅, 야간등산, 각종 해양스포츠 등 안해본 것이 없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꼽으라면 도요타 미니밴에 트레일러를 연결해 짐을 한가득 싣고 골드코스트에서 울룰루까지 왕복 7200km가 넘는 거리를 자동차로 여행한 일이다. 사막을 가로질러 가는 여정이라 준비해야될 것이 상당히 많았다. 호주 땅덩어리가 워낙
지겹도록 내리던 장맛비가 시작된 7월 하순. 날이 습해서인지 그렇게 더운 날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습기를 머금은 날 칭얼대는 딸아이와 함께 대부도로 향했다. 곧 비가 쏟아질 거라는 처음 우려와는 달리 내리쬐는 햇빛이 맨 먼저 우리 일행을 반겨 준 그날은 2개월 동안 준비한 한국의료경영교육협회 워크숍이 있는 날이었다. 협회에 소속된 회원들은 대부분 치과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어 토요일 오후 진료를 마치고 오거나 전국 각지에서 오느라 시간이 좀 지체되긴 했지만 협회의 발전과 나아가 치과계의 발전을 위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한국의료경영교육협회는 지난해까지 덴탈위키 강사협회로 활동하다 좀 더 원대한 꿈을 가지고 2019년인 올해 비영리 법인으로 새롭게 출발한 교육단체로 법인 설립 후 첫 워크숍을 맞게 되어 모두들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7월 27일~28일 양일간 진행된 이번 워크숍은 욕구, 불만, 해소라는 주제를 통해 서로 간 의사소통의 기회와 강사의 성장을 위한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공유하는 시간을 갖고자 마련되었다. 20여명의 강사님들과 덴키컴퍼니에서 진행 중인 실장사관학교 출신의 실장님, 협회를 아껴주시는 원장
항공사에 입사해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 보겠다는 야무진 꿈은 남편이 치과를 개원하고 몇해 되지 않아 무너졌다. 둘째 낳고 육아 휴직중이었는데, 데스크 인력이 안 구해지니 와서 잡일이라도 도와 달라면서… 그렇게 나는 푸른 날개를 접고 치과에 안착하게 되었다. 항공사에서 10년 넘게 일했지만, 치과환경은 또 다른 새로운 세계인 것 같았다. 낙하산 타고 치과에 내려와서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허둥지둥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8년을 훌쩍 넘기고 있고, 이렇게 몇 해가 흘러도 계속되는 직원충원, 퇴사, 직원면담의 반복 직원관리가 제일로 힘든 것 같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면접시간에 올 선생님을 기다리며, 제발 우리와 인연이 되길 기도하고 있다. 비의료인이며, 가족으로 치과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보니, 처음에는 직원들의 곱지 않은 시선….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배워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진료 외에 나머지를 도와주면 된다는데 눈치 보며 우왕좌왕 하다가 출근한지 일주일만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 이후 실장님, 진료실 선생님 보이는 대로 물어보고 외부 세미나 따라다니고, 궂은일 도맡아 하게 되면서, 선생님들과 관계가 돈독해지게 되자 병원에서의 내 위치도 어
치의신보 제 2725호 1면과 3면에 걸쳐서 ‘치과의사가 아프다’라는 제목으로 환자 입만 보고 산 세월이 불러온 병, 일반인에 비해 근골격계 28배, 신장병 13배, 우울증 4배 등 높은 위험에 처해있다는 놀라운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거의 모든 질환에서 치과의사가 위험성이 더 높아서 근골격계 질환은 28.69배, 신장병은 13.07배라고 한다. 주요 암의 상대위험도 산출에서도 일반 국민에 비하여 1.86배 높다고 한다. 치과의사 사망원인 1위는 암으로서 47.9%, 심혈관질환 17.4%, 사고사 13.5%, 고의적 자해나 자살이 10.8%, 뇌혈관질환 5.8% 순인데, 일반 국민에 비하여 자살과 사고사의 비율이 더 높았다. 그리고 암으로 인한 치과의사 사망자 가운데에는 간암이 25.5%, 혈액암 16.3%, 폐암 14.3%의 순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의 임상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치과재료나 방사선 또는 바이러스 등 위험할 수 있는 화학적 물리학적 생물학적 환경에 노출되고, 날카로운 기구에 의한 부상이나 B형 간염, HIV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요인을 갖고 있다. 더욱이 심한 노동 강도와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위험 요인에 있어 다른 직종의
작년 초에 방영한 드라마이지만 종영한 지 한참이 지난 후 누군가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다. 이 드라마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사람 사는 법”에 대해 묻고 사는 어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주인공 동훈(극중 이선균)과 지안(극중 아이유)은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대변하는 캐릭터이다. 드라마에서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지만 ‘욕망과 양심 사이’에서 항상 양심을 선택한 중년의 회사원 동훈과 사채업자에 시달리고 살아가며 돈을 받고 24시간 동훈을 도청하는 지안을 통해 관찰되는 동훈과 그 주변인들의 평범한 일상들을 담아낸다. 여전히 나이만 들었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는 어른들을 위해, <나의 아저씨>는 이 시대의 격언을 남긴다. 자신이 애써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이지안 할머니의 장례식에 쏟아 붓고는 한없이 행복해 하는 동훈의 형처럼,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추운 아이를 알아버린 바람에 그 아이를 책임지고자 애쓴 동훈처럼, 비록 실수는 했지만 도망치지 않고 책임지려 했던 박동훈의 아내처럼, 그리고 기꺼이 ‘우리 사람’이라며 지안을 반기고 함께했던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필자는 2019년 4월 30일부터 5월 11일까지 11박12일 일정으로 ‘성 야고보의 길’이라 불리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를 다녀왔다. 보고, 느낀 것을 간단히 적어본다. 흔히 그리스도교의 3대 성지라고 하면 로마, 예루살렘, 스페인 북서부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는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분 야고보 사도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이 있다. 스페인을 포함해 유럽 각 나라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약 1000년 전부터 산티아고 대성당을 찾아오게 되어 산티아고 순례길이 생기게 되었고, 특히 1993년 유네스코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종교를 떠나 많은 세계인이 이곳을 찾아오고 있다. 매년 30만명 이상이 이곳을 찾고 있으며, 한국인도 5000명 이상 이곳을 찾아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지난 삶을 성찰하고, 새로운 삶 보다는 삶을 모색하고 설계한다. 산 티아고 순례길은 공식적으로 8개의 코스가 있는데 이중에 가장 길고 가장 아름다운 길은 프랑스 국경마을 생장 피에드 포트(Saint Jean Pied Port)에서 출발하여 피레
막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부활절이 옵니다. 저도 어떤 일로 죽었다가 다시 산 기분입니다. 부족한 사람이 한 해에 두서너 군데 문학상 심사를 하는 영광을 입습니다. 문예지, 문인단체, 그리고 일간신문 신춘문예 등 입니다. 최근에는 어느 일간지의 신춘문예 최종심 심사를 본 일이 있습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을 검토하였으나, 당선작을 뽑을 수 없었습니다. 심사위원 모두 의견이 같았습니다. 신춘문예는 아주 중요합니다.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수상자 작품을 체본으로 삼고 연습하는 유행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 신문 신춘문예출신들의 권위를 위해서는 신인들도 높은 수준을 맞춰 주어야할 책임이 심사위원에게 있습니다. 신문의 신춘문예로 등단한 사람은 문단에서 평생을 보장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당선작 없이 두 작품을 우수상(가작)으로 선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심사위원 두 분은 저보다 문단 선배이며, 대학에서 국문학 교수님으로 은퇴한 분이라서, 저는 몇 편을 고른 후 최종결정을 그 분에게 위임하였습니다. 그게 예의거든요. 그러나 보는 눈은 거의 비슷합니다. 이번에는 탈이 났습니다. 당선작 선정을 최종적으로 두 분에게 위임하였
요즈음은 고속버스나 기차를 타는 일이 많아졌다. 지방에 있는 회원치과를 방문하기 위해 KTX를 탔다. 앞자리에 초등학교 1학년, 2학년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두 명 앉았고 그 앞에 엄마가 앉았는데 동반석이 아니니 앞에 앉은 엄마는 계속 뒤를 돌아다보면 아이들을 살피고 있었다. 좌석을 자세히 보니 돌려서 마주 앉을 수 있는 좌석이었는데 엄마는 아마도 모르는 듯. 얘기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 일어서서 직접 좌석을 돌려주고 혹시 옆자리에 앉는 분이 역방향이라 싫다고 하시면 내가 자리를 바꿔 주겠노라고 얘기하고 자리에 앉는데 동생으로 보이는 녀석이 인사를 꾸벅하며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엄마도 기차를 처음 타서 몰랐다고 고마워하며 너무 좋아하며 아이들과 마주 보며 즐거운 여행길에 올랐다. 사소하지만 나의 조그만 관심과 배려가 처음 기차여행을 하는 가족에게 큰 기쁨을 준 것 같아 내 마음도 먼 길을 가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한번은 고속버스에서 내리는데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께서 화물칸에서 짐을 내려야 한다고 기사분께 얘기 했더니 그 기사 분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앞으로 당기면 열려요”라고 한다. 그 순간 자기 부모님이라고 한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런 행동을 하
제게는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있습니다. 작은 얼굴에 땡글하게 큰 눈, 오똑한 코, 두툼한 입술… 누가 봐도 딱 엄마인 저를 닮았다고 합니다. 제게는 아주 기분 좋은 말입니다. 아들은 딸보다 애교도 많고, 친절합니다. 그러나 이런 멋진 아들이 전화를 잘 안 해서 제 속을 까맣게 태우곤 합니다. 아들이 4학년 때 핸드폰을 사주었습니다. 아직 어리다는 생각에 늘 걱정되어서 학교 끝나면 전화해라, 학원 갈 때 전화해라, 친구들하고 놀 때 전화해라, 집에 도착하면 전화해라, 무슨 일 생기면 전화해라… 등등 일방적으로 전화하라고 사정하고, 부탁했습니다. 왜냐하면 엄마로서 걱정되니까요. 그러나 아들은 친구들하고 놀 다 잊어서 전화 안하고, 숙제하다 깜박했다 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아들은 전화를 잘 안했습니다. 아들에게는 전화 하라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가 싶어 이해하려 했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생각으로요. 그렇게 아들은 올해 6학년이 되었습니다. 아직 1학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 전화 한통 때문에 두 번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 달전 아들은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러 나갔습니다. 저와의 약속을 어기고 동네를 한참 벗어났습니다. 아들은 엄마와의 약속을
“당신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나요? 저요? 글쎄요~ 아마도… 그럴껄요?”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사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살면서 ‘가족’이란 무엇인지, 딱히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게 ‘가족’이란 물과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태어날 때부터 줄곧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그 울타리를 크게 벗어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때문에 가족이 된다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전 저는 제 인생에 다시없을 특별한 도전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바로 결혼이라는 것을 말이죠. 결혼하면서 저는 남편, 시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그렇게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가족’과 함께 살게 된 것이죠. 아니, 새로운 가족과 함께 살게 될 줄 알았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 것 같습니다. 아, 오해는 마세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지금은 그들과 함께 살고 있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여전히 저는 그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는 결혼을 하면 당연히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것이라 생각했고, 나 스스로가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은퇴했다. 1975년 9월 6일 시작하여 2019년 2월 28일 폐업신고를 하니, 근 44년을 당산동에서 개원 치과의사로 봉직했다. ‘벌써 은퇴하세요? 아직 정정 하신데.’ ‘은퇴라니 섭섭하지 않으세요?’ 막상 은퇴를 결심하니 섭섭했다.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가슴이 뻥 뚫린 듯 한 허전함. ‘은퇴라니요. 금퇴랍니다. 다시는 스트레스도 없고 자유만 만끽할 수 있는 생활로 들어가는데 銀퇴라기 보다 金퇴가 맞지 않나요?’ 하긴 교도소로 들어가거나, 부도를 내고 숨어 버리는 銅퇴도 있으니……, 은퇴도 행복이지요. - 하 하 - 그리고 보니, 은퇴에도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이 있네, 저절로 실소가 나온다. 그러나 사실 은퇴는 슬픈 것이다. 금, 은, 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은퇴는 한문으로 隱退이다. 숨을 隱자는 남이 찾지 모하는 곳에 가는 것이다. 흑석동 211번지에서 이 세상에 온 나는, 이제 코끼리처럼 죽을 때 숨어 버리는, 진짜 은퇴의 수순에 들어간 것이다. 코끼리는 죽을 때 제 자리로 간다. 모든 동물이 죽을 땐 제자리를 찾지만 특히 코끼리는 코끼리 무덤에 가서 자신의 주검을 숨긴다. 이런 코끼리의 최후가 진정한 隱退이다. 우리 나이로 75세이니, 친구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