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 <치과를 읽다>, <성공병원의 비밀노트> 저자 한때는 누군가가 책을 읽는 모습이 마치 봄날의 따스한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버스나 지하철, 혹은 공원 벤치 어디에서든 사람들은 주변을 잊고 책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독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고, 일상의 한 부분으로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 모습이 사라져 버린 듯합니다. 이제는 머리들이 스마트폰의 밝은 화면에 숙여져, 끝없는 스크롤에 몰두해 있습니다. 책을 읽는 조용한 모습은 오히려 찾아보기 어려운 특별한 장면이 되었습니다. 지하철에서 책을 들고 있는 사람, 혹은 길에서 소설을 손에 든 누군가를 마주치는 것은 마치 옛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낯설고도 그립습니다. 독서는 일상의 스크롤링보다 깊은 사고를 선사합니다. 그것은 공감, 상상력, 인내를 길러주며 우리의 마음을 넓게, 그리고 깊게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이 평범한 행위는 점점 멀어져 가고
9월 28, 29일 제20회 경기국제종합학술대회(GAMEX)는 7200여명의 치과인이 참석한 가운데 성공적으로 개최되었으며 매년 성장하고 있는 것에 타 단체의 귀감이 되고 있다. 학술강연과 핸즈온 등은 여타 대회와 대동소이하지만 GAMEX만의 유니크한 정책포럼은 개원가의 핵심 아젠다를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정리하고 토론하며 향후 방향성을 모색하는 GAMEX만의 특급 섹션이다. 학술대회에서 다루기에는 흥행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무거운 주제이며 단시일 내에 해결될 사안도 아니지만 치과계의 숙원이자 핵심 이슈에 대한 GAMEX의 지속적이며 참신한 기획과 진행은 큰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치과 급여진료 원가보전율이 66%로 진료할수록 손해인 건강보험 구조에서 한국, 일본, 대만의 #48의 발치수가를 절대 액수 및 각국의 물가를 고려한 빅맥지수로 환산해 한국의 저수가 현황을 객관적으로 나타냈다. 3국의 전문가들은 동일한 평가를 위해 동일한 파노라마를 제시하며 토론한 결과 물가 고려 시 한국은 대만의 3/7, 일본의 2/3수준에 불과한 것을 실증해 보였다. 향후 수가 협상이나 새 보험항목 개발 등에도 참고가 되며 향후 근관치료를 주제로 간담회를 갖는다 하니 기대가 된다
치협은 지난 7월 초고령화 사회를 맞이하여 ‘구강관리정책개발특위’를 구성했다. 이 특위에서는 노인 관련 정책개발, 노인요양시설 역할 확대 등을 찾아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에 발맞추어 치협의 치과의료정책연구원에서도 초고령화 사회를 맞이하여 치과계의 미래를 위한 정책 및 제도 개발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연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치과계에서 고령화 사회를 대비해 꾸준한 활동을 보인 곳은 대한노년치의학회일 것이다.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이 학회에서는 노인의 구강건강관리에 대한 연구를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연구해 왔다. 의과분야는 치과계 보다 훨씬 앞서고 있다. 대한의학회 정회원으로 있는 대한노인병학회와 대한노인정신의학회가 노인들의 전신건강과 정신건강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를 해 오고 있으며, 그 외에도 한국노년학회, 한국노화학회, 한국장기요양학회, 한국노인간호학회 등이 고령화 사회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 학회는 1997년 (사)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를 결성하고 공동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중이다. 의과분야는 이를 기반으로 대형병원에서는 노인전문 외래진료과 및 센터 및 클리닉을 설치 운영 중이다. 서울대병원 본원은 ‘평생건강관
필자와 동명이인이신 외과의사 선교사님과의 인연으로 올해도 작년에 이어서 아프리카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를 방문할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최빈국(GDP $900) 중 하나인 마다가스카르는 1960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지만 아직 국제화를 경험하지 못해 대부분의 학문분야에서 크게 낙후 되어있는 상태이다. 작년 방문 때 우리나라로 하면 부산격인 제2도시 마장가에 위치한 하나뿐인 치과대학에서 강연을 하며 이곳 치과의 실상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는 우리과 전공의들, 치과위생사와 함께 의료봉사를 다녀오게 되었다. 의료봉사지역은 수도인 안타나나리보에서 서북쪽으로 차로 6시간 떨어진 봉글라바라는 도시이고 이곳 병원과 선교사님과의 오랜 협력관계로 웰인터내셔날과 연세의료원 의료진으로 구성된 수술팀, 일반진료팀, 그리고 치과팀 약 35명이 방문하게 되었다. 치과의료 수준을 살펴보면 인구가 2500만 명이 넘는 이 나라에 치과대학은 한 곳뿐이고 매년 치과의사 졸업생이 20여명, 나라 전체의 치과의사 수도 800여명밖에 되질 않는다. 따라서 어디를 가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치과치료를 받기 힘든 상황이고 치과 수준 자체도 상당히 뒤쳐진 상태여서 인구의 대부분이 치과환자라는
인생은 고통입니다. 이가 하나 아프면 온통 모든 신경이 아픈 치아에 집중되어 다른 멀쩡한 27개 치아의 존재를 느끼지 못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치과의사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일단 평균보다 높은 지능을 가졌고, 전문직이라는 직업을 가졌고 이를 바탕으로 부와 명예를 이룬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분들은 그 어렵다는 결혼과 출산 육아를 하고 계시고, 이번 명절에도 어떤 분들은 해외로 어떤 분들은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개원 걱정, 환자 걱정, 건강 문제, 아이들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그래서 인생은 항상 고통이고 불행합니다. 저희가 마음속에 쥐고 있는 사념과 걱정들이 떠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이 풍족해도 그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40대가 되면 많은 것이 변합니다. 이제는 많은 것을 이루려 하기 보다는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나이입니다. 건강도 급격히 나빠지고 노화가 진행되고 갱년기 우울증이 생깁니다. 지난 젊고 기운 넘쳤던 자신과 비교가 되고, 같은 연배에 많은 것을 이룬 지인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초라함을 느끼게 됩니다. 젊을 때는 시
어느 대학교수가 흥미로운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사과를 한 상자씩 나누어 주고, 그들이 어떻게 사과를 먹는가를 관찰했다고 합니다. 어떤 학생들은 ‘큰 사과’만을 골라서 한 상자를 다 먹고 나서, ‘나는 큰 사과 한 상자를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어떤 학생들은 먼저 ‘작은 사과’만 골라 먹고 큰 사과는 남겨 두었습니다. 그러고는 ‘작은 사과 한 상자를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어떤 학생들은 상한 사과를 아예 골라 내다버리고 ‘맛있는 사과’만을 먹었는데, 한 상자를 다 먹고 난 후 ‘나는 맛있는 사과 한 상자를 먹었다’ 말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어떤 학생들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 주로 ‘상한 사과’를 먼저 먹었는데, 결과적으로 ‘상한 사과’만 먹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완샤’라는 저자가 쓴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완샤의 위 이야기를 읽고 근래에 들어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인생관’, ‘삶의 태도’와 직결되는 이야기였습니다. 학생들은 모두 똑같이 사과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사과를 먹는 방법은 각기 달랐습니다. 주어진 사과 한 상자는 모두 같았지만, 먹는 방법이 서로 달랐습니다. 주로 크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한 명이 치매일 정도로, 주변에 수많은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이 있습니다. 우리 치과에 당장이라도 치매 환자분이 방문하셔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오랜 기간 우리 치과를 잘 다니셨던 어르신이 어느 날 갑자기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말씀하시거나 행동하셔서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치매 환자에게 치과 진료를 하는 것은 많은 치과의사에게 큰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분명히 아프신 것 같은데, 무조건 괜찮다고 하십니다. 소리를 버럭 지르고 화를 내면서 밖으로 나가버리시기도 합니다. 침을 뱉거나 때리기도 하시죠. 치과에 오신 분이 입을 아예 벌리지도 않고 버티십니다. 억지로 벌려보려고 했다가 손가락이라도 깨물리는 날에는 정말 정신이 혼미해지고, 치매 환자 다시는 못 보겠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치매 환자가 보이는 이러한 반응은 사실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환자가 낯선 환경과 진료 과정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리를 지르거나 입을 벌리지 않고 손을 내젓는 등의 행동이 의료진이 보기에는 모두 ‘거부’이지만, 환자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김 원장은 수도권 외곽, 다문화 가정이 많은 지역에 개원하여 지역사회의 구강건강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치과의사다. 김 원장의 치과는 경기도에서 주관하는 지역사회 취약계층 치과 치료 보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레진 수복부터, 필요한 경우 심의를 거쳐 임플란트까지도 지원한다. 그러다 보니 예산 문제로 지원 대상자가 분기당 15
치과임플란트 시술 후 제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치의신보 2024. 9. 2). 대한치과의사협회(이하 치협) 치과의료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치과임플란트 합병증 환자관련 요인분석’에 의하면, 보고된 많은 자료 중 2014년에 비하여 2022년 임플란트 환자 수 33.6배, 시술건수 30.5배, 진료금액 43.7배 증가하였으며, 이와 함께 임플란트 제거건수도 가파르게 증가하여 환자 수 34.2배, 제거건수 35.3배, 진료금액 59.8배 증가하였다고 한다. 당뇨, 흡연, 음주, 유산소 활동 등이 많은 경우 임플란트 제거가 많았다고 하였다. 대처방안으로 위험요인을 가진 대상에 대한 집중교육과 적절한 시기에 처치를 시행할 수 있도록 근거에 기반한 임플란트 시술 전, 후 지침서가 필요한 시기라고 하였다. 또한 정부와 치과계가 협조해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고도 하였다. 발표된 내용에 조금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어 보인다. 임플란트 제거가 많은 이유로 환자 탓을 하였다. 임플란트 시술건수가 많아지니 실패건수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몇 년 동안 앞서 언급된 제거이유를 가진 환자가 35배나 늘었다는 말인가? 문제는 임플란트 재료도 좋아졌고, 치과의사의 실
추석을 큰 무리 없이 넘겼다는 보건복지부 장관 명의의 발표가 있었다. 하지만, 심지어 KBS에서도 이제는 환자들이 응급실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돌아가시고 있다는 기사 발표가 있었다. 이러한, 정부와 국민의 상황인식 차이에 대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사실, 필수의료의 몰락을 비롯한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한 원인은 대한응급의사회 이형민 회장님의 발언인 ‘High risk Law return’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의 원인을 변호사 숫자의 급증 혹은 법에서 의사에게 잘못이 없음을 증명하도록 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근무하던 의사 4분과 간호사 3분에 대하여 대법원에서는 무죄판결이 났지만, 그 때에 임산부이던 교수님 한 분을 비롯해 여러 교수님들께서 환자와 제자 앞에서 구속 수감되는 모습이 생중계 되었었다. 게다가, 응급실 전공의 1년차가 뇌동맥류 환자를 놓쳐서 대법원까지 가서 결국 면허취소가 되는 일까지 생겼으니 필수의료과에서 환자 보기가 두려울 수밖에 없어 보인다. 특히, 예전에는 119가 병원에 환자를 두고 가도 다른 병원으로의 전원이 쉽거나 사법적 리스크가 크지 않았으나, 현재는 환자를 받아서 치료하
지금으로부터 약 29년 전, 공중보건의 임기를 마치고 Non-Kim 티오(TO)로 모교 치과병원 소아치과에서 3년간의 수련을 마치고 향후 진로를 고민하던 1996년 1월에, 분당에서 예치과병원을 신규로 오픈하는 타교 출신의 원장님을 정말 아주 우연한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취업근무 조건은 소아환자만을 보면서 고정급으로 첫 6개월, 매출에 연동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으로 이후 6개월을 지내본 후에 서로 맞는다고 생각하면 병원에 지분을 투자할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지도교수님께 상의를 드려보아도 어차피 투자금액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몇 년 전인 1992년에 역삼동에 첫 예치과가 생긴 이후에 매우 열심히 활동하는 원장님들이어서(그 원장님들과 학교 동기) 배우면 배웠지 손해 볼 것은 없다고 결론이 나서 근무를 시작했고, 외국 학회 참석 및 외국 치과의사들과의 교류 등 기존의 치과들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앞서 나가는 콘셉트 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치과의사가 될 때에 꿈꾸었던 ‘동네 아저씨 같은 치과의사’ 개념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아 약 반년 후에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원장님은 이유를 알고 싶어하셨고, 말씀드리자 밖으로 보이는 ‘겉만 보아서는